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광주 무등야구장이 4일 넥센-KIA 경기를 마지막으로 프로야구 역사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무등구장은 옛 해태와 KIA가 10번 우승한 유서 깊은 곳. 물론 한국시리즈 4~7차전은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해태가 무등구장에서 실제로 우승기를 들어 올린 건 1987년밖에 없습니다.


타이거즈는 4일 경기 전까지 이 구장에서 1012승 45무 787패로 통산 승률 .563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구장에서 타이거즈는1017승 41무 1020패(승률 .499)로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지는 팀. 그러나 이 구장에서는 포스트시즌을 매번 노려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이겼던 겁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무등구장은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1980년 5·18 때 군부에 맞서 시위를 계획한 버스 택시 기사들은 이곳을 집결지로 삼아 전남도청까지 경적을 울리며 가두 행진을 벌였습니다. 현재까지도 광주시민들은 매해 5월 18일 이 행사를 재연하며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1980~90년대 광주 야구팬들이 이 구장에서 수훈 선수 대신 김대중 전 대통령 이름을 연호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KIA는 내년부터 이 구장 바로 옆에 새로 짓고 있는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안방 경기를 치릅니다. 무등구장은 일단 아마추어 야구 전용 구장으로 변신합니다. 앞으로 이 구장을 철거할지 아니면 어떤 형태로 남겨둘지는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가 끝난 뒤 판가름 날 예정입니다.

무등구장은 프로 원년을 함께 했던 야구장 가운데 프로 무대에서 사라지는 네 번째 구장입니다. 원년(1982년) 개막전이 열린 서울야구장(동대문구장)은 1985년 OB(현 두산) 안방 구장을 마지막으로 아마추어 전용 구장으로 사용하다 2007년 철거됐습니다. 롯데도 1985년까지 구덕구장을 쓰다 사직으로 옮겼죠. 인천 도원구장은 2002년 문학구장이 문을 열면서 SK가 사용하지 않게 됐고, 현재 그 자리에는 인천축구전용구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삼성도 2016년부터 새 구장에서 안방 경기를 치를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프로 원년에 6개 팀이 안방으로 썼던 구장 중에서는 대전 한밭구장만 남게 된다. 대전구장은 대대적으로 손을 본 상태라 당분간 더 쓸 예정. 어떤 의미로든 작별은 섭섭한 일이지만 역시 낡은 야구장하고 작별하는 건 아쉬움보다 기쁨이 더 일입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 지역 독자들께 죄송한 지방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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