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앞두고 "어차피 미국 메이저리그로 갈 것이니 나를 지명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니혼햄은 193㎝ 86㎏인 그를 1순위로 지명한 뒤 단장과 감독까지 나서 "꼭 우리 팀에서 뛰어 달라"고 구애를 펼쳤다.
구애는 이성과 감성 양동작전. 니혼햄은 2006년 이후 고교 졸업 뒤 곧바로 미국에 진출한 한국 선수 21명 중 단 한 명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다는 자료를 만들어 그를 설득했다. 이와 함께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다루빗슈 유의 등번호(11번)도 내줬다.
하지만 정작 그가 마음을 움직인 약속은 따로 있었다. 바로 투타겸업. 결국 그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 많다"며 미국 진출 꿈을 접었다.
이 이야기 주인공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19·사진)가 18일 히로시마 원정 경기에 선발투수 겸 5번 타자로 출장한다. 니혼햄은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퍼시픽리그 소속이지만 이날은 교류전(인터리그) 경기라 투수도 타격하는 센트럴리그 규칙을 따르기 때문에 이런 출장이 가능한 것.
우투좌타인 오타니는 이 경기 전까지 타자로 타율 .328을 기록 중이다. 아직 홈런은 없지만 전체 안타 22개 중 11개가 2루타일 정도로 중장거리 능력을 갖췄다는 평이다. 그는 하나마키히가시(花券東) 고교 재학 시절에는 3년 동안 통산 홈런 56개를 때려냈으며. 타격 후 1루까지 4.1초에 끊을 정도로 발도 빠른 발도 자랑했다.
프로 데뷔도 타자였다. 니혼햄에서 타자로는 즉시전력감이지만 투수로는 다듬을 부분이 많다고 판단했던 것. 오타니는 개막전에 8번 타자 겸 좌익수로 선발 출전했다. 일본에서 고졸 야수가 프로 첫 시즌 개막전에 나선 건 재일교포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張本勳) 이후 54년 만의 일이었다. 오타니는 이 경기에서 2안타 1타점을 올렸다.
투수로는 안방에서만 2경기에 선발 등판해 1승, 평균 자책 4.50이다. 첫 등판은 5월 23일 야쿠르트 경기였다. 오타니는 이날 5이닝 동안 안타 6개를 맞으며 2실점 한 뒤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승패는 없었지만 가장 빠른공이 시속 157㎞를 기록하는 등 인상적인 투구였다. 그리고 1일 주니치 경기에서 5이닝 동안 3실점했지만 팀이 7-3으로 이기면서 프로 첫 승을 거뒀다.
메이저리그에서 투타겸업의 대명사는 단연 베이브 루스. 그는 홈런 714개를 떄려낸 강타자이지만 투수로서도 통산 94승(46패)을 거뒀다. 루스는 풀타임 투수로 활약했던 1915~1917년에 평균 22승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해태 김성한이 1982년에 타자로 타율 .305 13홈런 69타점 10도루, 투수로는 10승 5패 1세이브 평균 자책 2.88을 기록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