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댄 애리얼리 교수 블로그에서 재미있는 포스트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얼마 전 열쇠를 집에 두고 나가 문을 열어주는 열쇠 수리공을 불렀던 경험담인데요, 먼저 애리얼리 교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대충 이런 얘기입니다. 초짜는 문을 여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더러 자물쇠를 부수기도 합니다. 베테랑이 되면 자연스레 깔끔하게 문을 열게 되죠. 그런데 사람들은 초짜한테는 팁도 많이 주고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는 반면 베테랑한테는 '요금이 너무 비싼 것 아니냐'며 불평하고 팁도 안 준다고 합니다.
애리얼리 교수는 사람이 느끼는 '노력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쩔 줄 몰라 헤매는 '초짜'한테는 그 노력에 걸맞은 보상을 해주고 싶어하지만, 베테랑은 별 노력도 안 하면서 돈을 너무 많이 받는다고 느낀다는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다만 초짜가 베테랑이 되기까지 투자한 '노력의 시간'이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것뿐입니다.
이 손수제작물(UCC)을 보는 동안 지난달 야구팬들이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에게 열불을 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축구 선수들이 '아주 간단하게' '쉽게~' 이긴 야구팀을 폄하했다는 논란이 벌어졌던 일이죠.
어쩌면 어린 축구 선수들 심리가 딱 저랬을 것 같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쉽게~' 이길 정도로 야구 선수들이 평생 노력한 시간의 눈앞에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요.
게다가 야구라는 종목은 속성 자체가 그렇죠. 인터넷에 '니시오카 츠요시(西岡剛)의 야구론'이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글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야구는 보기에 정말 쉬워 보여.
농구나 축구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 경기에 몇 번 타석에 서서 배트 몇 번 휘두르고 안타면 달리고, 수비할 때는 그냥 멍청하게 서 있다가 공이 오면 잡아서 타자를 아웃시키고…
어쩐지 이게 스포츠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 않아? 투수랑 포수를 빼면 나머지는 할 일이 없는 것 같고… 그나마 투수도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까지 던지는 적은 별로 없어.
그래서 다들 그러더군. 야구는 너무 지루하고 운동도 안 되고 스포츠도 아니라고…
그래, 겉으로 보기엔 그래.
TV속에서 경기장에서 보는 프로야구 선수들은 너무 나태한 것 같아. 술을 먹고 공을 던졌다는 전설이 있질 않나, 껌을 씹지 않나. 도대체가 말이야. 뭐 하자는 건지.
하지만 말이야.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재미 없게 한 이닝을 막는거야. 세 타자가 모두 초구땅볼을 쳐서 삼자범퇴. 이게 가장 좋은 경우지.
그런데 재미없잖아? 고교 야구를 보면 무슨 파인플레이가 메이저리그보다 더 많이 일어나는지. 아슬아슬 다이빙캐치 하면서 잡고… 그렇지?
그런데 프로에서는 수비수들도 재미없게 잡으려고 밤낮 노크볼만 잡아대고 있어. 그래서 정식경기에서는 절대로 실수가 없도록 가장 재미없게 잡는 거야.
한번 운동장에 서서 높이 날아오는 플라이볼을 잡으려 해봐. 의외로 힘들 걸? 공이 어디로 오는지, 언제 떨어질지, 판단이 잘 안 설 걸?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게 프로의 임무지.
야구라는 종목은 경기장에서 땀 흘리는 스포츠가 아니라 경기전에 땀을 흘리는 스포츠야.
평범한 2루수 땅볼을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몇 천 몇 만 번 땅볼을 잡으며 땀 흘리고, 외야플라이를 잡으면서 주자를 진루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수도 없이 하늘로 뜬 하얀 공을 쳐다 보지. 타자가 140㎞가 넘는 공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치기 위해 어릴적부터 계속 공을 보아 온거야.
야구란 건 힘들어.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해야 하니까. 프로야구 선수들이 TV에도 나오고, 옷도 멋지게 입고, 경기 때도 별로 힘들지 않은것 같으니까 야구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1군 무대에서 꾸준히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려면 엄청난 연습이 필요한 거지.
보이는 것과는 달라. 축구나 농구만큼 힘들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야구는 결코 놀면서 할 수 있는 스포츠는 분명히 아냐. 땀을 흘리는 것에만 가치를 부여한다면 세계 최고의 스포츠는 철인3종 경기가 될테니까. 근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
그러니까 이제 야구를 제대로 봐봐! 절대 야구가 쉽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줄 거야!
네, 베테랑 열쇠공이 수 없이 자물쇠를 망가뜨리고 결국 아무렇지 않게 자물쇠를 따는 것처럼 츠요시도 메이저리그 타자가 되려고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을 겁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그게 보이지 않는 게 야구의 속성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