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선수들이 실전 상황에서 가져야 할 마음 가짐을 다룬 책 '공 하나 하나 고개를 들고 뛰어라(Heads-up baseball: playing the game one pitch at a time)'는 투수들의 나쁜 마음가짐을 △기도자(prayer) △원시인(primal) △완벽주의자(perfect) 등 세 부류로 나눠 설명합니다.
기도자는 자기 구위가 너무 좋아서 타자들이 못 칠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배짱도 누울 데를 봐 가면서 부리라는 뜻이죠. 원시인은 경기가 안 풀릴 때 세게, 더 세게 던지려 드는 타입입니다. 머리를 쓰라는 얘기죠. 원시인의 반대가 완벽주의자입니다. 공을 세게 던지는 대신 완벽한 제구력을 선보이려고 애쓰는 투수들.
이 책은 "완벽주의자형 투수들은 스트라이크 구석 쪽으로만 공을 던지려고 한다. 타깃이 좁으니 빗나가는 게 당연한 일. 당연히 볼넷이 늘어난다. 그러다 정신 차려 보면 갑자기 무사만루에 몰려 있는 것"이라고 이들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딱 6일 목동 경기에서 넥센 선발 투수 강윤구(23)가 보여준 모습이죠. 강윤구는 이날 안타를 두 개 맞았지만 모두 실점하고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5점 모두를 볼넷, 사구, 폭투로만 내줬다는 얘기. 그 덕에 5회에는 역대 한 이닝 최다 사사구(6개) 타이기록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볼이 엄청 안 좋았던 건 아닙니다. 연속해서 볼넷을 내주는 와중에도 스크라이크 콜을 받은 공 가운데는 존 구석을 파고든 게 적잖았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완벽한 공을 던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옭아매다 보니 나쁜 결과로 이어진 거죠. 이렇게 되면 실제 투구 때도 '쇼트 암(Short arm)' 증상 때문에 구위와 제구가 모두 나빠집니다.
이 책 저자들은 이런 유형 투수들에게 "타격 연습 장면을 떠올려 보라"고 조언합니다. 배팅볼을 던지는 투수들은 타자가 공을 잘 때리도록 공을 던져주려고 하지만 그래도 타자들이 정타를 때리는 비율이 더 적다는 겁니다. 타격이라는 건 그만큼 쉽지 않다는 얘기. "투수는 타자가 아니라 포수한테 공을 던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게 이들 조언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200승 150세이브를 동시에 기록한 존 스몰츠도 완벽주의자 증후군에 시달렸었습니다. 나중에 스몰츠는 포스트 시즌에 아주 강해 '스틸하트(steel heart)'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풋내기 시절에는 그 역시 새가슴 투수였을 뿐입니다. 1991년 제구력 난조로 2승 11패에 그치자 구단은 그에게 스포츠 심리학자를 만나보라고 권합니다.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 그는 나머지 경기를 12승 2패로 마쳤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재미있는 건 스몰츠 등판 경기에는 심리학자가 늘 경기를 관람했다는 겁니다. 그것도 포수 뒤쪽처럼 마운드에서 아주 잘 보이는 곳에 말이죠. 스몰츠는 자기 '의사 선생님'을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던 겁니다. 그리고 자기 구위가 얼마나 뛰어난지 확인하게 됐고 나중에는 마무리 투수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심장이 튼튼해졌습니다.
우리 국내 프로야구에서 류현진, 김광현을 이을 왼손 투수 재목이 잘 눈에 띄지 않는 게 사실. 그 중 가장 앞서 있는 선수를 꼽으라면 어쨌거나 강윤구가 틀림없습니다. 넥센 구단에서 그에게 이미 심리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강윤구의 구위를 생각하면 한번 치료를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구위만 보면 짐 애보트가 이야기한 이 말을 강윤구라고 못 하리라는 법 없을 테니 말입니다. "투수는 늘 자기 공을 믿어야 한다. 자신감은 안타를 땅볼로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