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희망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불가능이란 없다. 장애물은 포기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뛰어 넘으라고 있는 것이다. One must think that nothing is impossible until there is no hope. Obstacles are not more than a stage we must pass in order to succeed."

Find Your Greatness

TV에서 못 보던 나이키 광고 시리즈가 보이더군요. (찾아보니 방영을 시작한 지 꽤 된 듯한데 저는 오늘 처음 봤습니다.) 아래 에피소드를 보면서 여러분도 저처럼 짐 애보트를 떠올리셨나요?



동영상에서 꼬마 아이가 수비하는 장면, 애보트가 좌완이라 팔은 다르지만, 애보트의 현역 시절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애보트는 선천적으로 오른손 없이 태어났지만 투구는 물론 수비에서도 디스어드밴티지는 없었습니다. (통산 수비율 .976)

애보트는 어린 시절부터 매일 벽에 공을 던지고 막아내는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왼팔로 공을 던진 뒤 오른쪽 팔목에 올려놨던 글러브를 왼팔에 끼고 받아내는 연습이었죠. 물론 다시 공을 빼내 던지는 연습도 해야했습니다. 그 피 땀의 결과가 한 손이 없는 어린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주는'애보트 스위치'의 완성이었습니다. 위 동영상 속 바로 그 존재죠.

애보트가 마운드에 있을 때면 많은 상대 선수들이 번트를 시도했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애보트 스위치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죠. 애보트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포기하고 낙담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됐습니다.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노히트노런

운동 잘 하는 미국 학생들이 그렇듯 애보트도 야구와 풋볼을 병행하면서 고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야구에서는 투수, 풋볼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쿼터백이었죠.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1985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36라운드에 지명했지만 거부하고 미시건대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87년에는 전미 최우수 아마추어 선수가 받는 제임스 설리번 상(償)을 탔습니다. 야구 선수가 이 상을 탄 건 애보트가 처음이었습니다.

이듬해에는 서울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애보트는 결승전 승리투수가 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때 야구는 시범경기였기 때문에 공식 메달 수상자는 아닙니다.) 

대학 졸업 뒤 애보트는 1989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에 입단했습니다. 이번엔 1라운드픽(전체 8번)이었죠. 마이너리그를 생략하고 곧바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 12승 12패, 평균자책점 3.92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관중을 늘려줄 볼거리가 필요해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게 한 것"이라는 세간의 평을 무색하게 만드는 활약이었습니다.

1990시즌 10승에 이어 1991시즌에는 생애 최다인 18승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1993년 9월 4일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노히트노런 경기를 펼쳤습니다. 한 손이 없는 투수가 노히트노런에 성공한 건 1883년 휴 데일리 이후 110년 만의 일이었죠.

1999 시즌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내셔널리그 팀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뛰게 됩니다. 지명타자가 있는 아메리칸리그와 달리 내셔널리그에서는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야 하죠. 애보트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타격 성적은 21타수 2안타. 재미있는 건 애보트가 안타를 때려낸 투수 두 명이 존 리버, 마리아노 리베라라는 점입니다. 보통 타자들도 때려내기 힘든 투수들이죠.

전성기 때 기자가 물었습니다. "오른손이 완전했으면 어땠을까요?" 그가 답했습니다 ."사람들은 저의 오른손만 봅니다. 그러나 저는 제 꿈을 봅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이름을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이름을 떨치고 싶었고 편견없는 스포츠가 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애보트는 1999년까지 10시즌을 뛰면서 87승 108패, 평균자책점 4.25로 커리어를 마감하게 됩니다. 은퇴 이후 애보트는 전국을 돌며 사람들에게 힘과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뿐 아니라 기운이 필요한 모든 이들을 상대로 자기 자신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법을 일러주고 있는 셈입니다.


"I have a right to be in the Olympics"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자신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려 애쓴 또 한 사람,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남아프리카공화국). 피스토리우스는 두 다리 모두 종아리 뼈가 없이 태어났고 생후 11개월 때 무릎 아래를 잘라야 했습니다.

피스토리우스는 2004년 아테네 패럴럼픽(장애인 올림픽)에서 200m 금메달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자신을 차별하지 말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염원했지만 기록이 모자랐습니다. 그는 대신 패럴림픽에 출전 100, 200m, 400m에서 3관왕을 차지했습니다.

역시나 기자가 멍청하게 물었습니다. "혹시 다리가 정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그가 답합니다. "그런 질문은 기자님께 의족을 끼고 달리는 건 어떠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그냥 나입니다."

그는 지난해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 때 드디어 패럴럼픽에 출전하지 않는 선수들과 나란히 겨룰 기회를 얻었습니다. 400m 대표 선발 경기에서 개인 최고 기록 45초07을 달성하며 올림픽 출전 기준을 넘어선 겁니다. 그는 이 대회 1600m 릴레이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준결승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팀이 세운 2분 59초21은 남아공 최고 기록입니다.

올 여름 그는 꿈에도 그리던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됐습니다. 피스토리우스는 예선에서 45초44를 기록하며 조 2위로 준결선 무대에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열린 준결선에서는 45초54로 최하위에 그치며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피스토리우스는 장애등급 T44(한쪽 다리 무릎아래 절단 장애인) 100m, 200m, 400m 세계 최고 기록 보유자입니다. 그는 올 9월 런던 패럴럼픽 참가도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 대회에서 그는 메달을 딸 확률도 퍽 높습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과연 누가 그를 패배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피스토리우스는 어머니에게 받은 편지를 늘 가지고 다닌다고 합니다. "패배자는 결승선을 마지막으로 통과한 사람이 아니란다. 그냥 앉아서 지켜보기만 할 뿐 달려보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을 패배자라고 하는 거야."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 스스로 구경꾼이 되는 데 만족하지는 않으십니까? 최선을 다했는데 안 됐다고요? 최선을 다했을 때는 이제 그만 끝낼 때가 아니라 비로소 시작할 때가 된 건 아닐까요? 여러분 자신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주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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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쓰다 보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까먹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냥 써 놓은 게 아까워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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