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리그에서 가장 투수 친화적이라는 잠실을 홈 구장으로 쓰면서도 올 시즌 현재까지 팀 OPS(출루율+장타력) 1위(.782)를 달리고 있습니다. 출루율(0.383) 1위에 장타율은 넥센(.411)에 이어 2위(.399) 기록. 당연히 팀 득점(5.45점)도 리그 1위입니다.
문제는 투수진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 두산은 올 시즌 경기당 5.23점을 내주면서 한화(6.02)에 이어 두 번째로 점수를 많이 내주고 있습니다. 이러면 당연히 성적이 좋을 리가 없죠. 최근 3연패에 빠지면서 22승 1무 22패로 리그 5위에 처져 있습니다. 이게 겉보기 성적으로 두산이 최근 침체에 빠진 이유입니다.
이 기사로 살펴 본 것처럼 두산은 불펜 부하가 심각하기로 손꼽히는 팀입니다. 사실 이는 이용찬(24·왼쪽 사진)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로 뽑였다가 대회가 열리기도 전에 부상으로 이탈했고, 외국인 투수 올슨(30·오른쪽 사진)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는 점 등을 고민하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두산의 포지션 중복을 감한해 보면 과연 이런 선수단 구성이 최선이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명타자는 물론 1루수로도 쓸 수 있는 최준석(30)은 올 시즌 81타석에서 .318/.432/.470을 치고 있습니다. 지명타자로만 쓸 수 있는 홍성흔(36)은 192타석 .296/.361/.414입니다. OPS .775를 치는 홍성흔한테 밀려서 OPS .902인 최준석이 경기에 못 나오는 겁니다. 역시 1루를 볼 수 있는 오재원(28)은 .283/.425/.425입니다. 방망이만 보더라도 세 선수 중 두 명을 써야 한다면 최준석, 오재원을 쓰는 게 맞습니다.
롯데 시절이던 2009년 6월 28일 대전 한화 경기에서 1루수로 출전한 홍성흔이 평범한 번트 타구를 지루해 하는 팬들에게 짜릿함을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홍성흔은 김진욱 두산 감독이 자유계약선수(FA)로 모셔온 4번 타자. 함부로 라인업에서 뺄 수가 없는 노릇. 그 덕에 역시나 올 시즌 FA를 앞둔 최준석은 제대로 기회를 못 잡고 있습니다. 그나마 김진욱 감독에게 다행스러운(?) 건 김동주(37)가 .256/.356/.317로 부진한 채 2군으로 내려갔다는 겁니다. 아니, 김동주가 지명타자로 출전할 기회가 있었다면 이리 부진했을까요?
두산 내야수 오재일이 "중학교 때부터 지켜봐준 (김진욱) 감독님께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다"며 투구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화수분 야구'는 계속 됩니다. 2, 3루가 가능한 김동한(25)은 2군에서 .371/.452/.562를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허경민(23), 윤석민(28)한테도 제대로 기회를 안 준 구단이 대졸 군미필자인 김동한에게 얼마나 기회를 줄까요? 뇌진탕 후유증이 우려되는 양의지를 포수 자리에 계속 고집하면서 "이제 해줄 때가 됐다"고 말하는 게 김 감독입니다. 제가 최재훈(24), 박세혁(23)이었다면 정말 야구하기 싫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야수들 다 안고 있는 동안 투수 김성배(32), 김승회(32), 고창성(29), 이재학(23)이 여러 경로로 팀을 떠났습니다. 김성배, 이재학, 고창성은 그렇다 칩시다. 제도가 불합리한 측면도 있었고, 이들이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고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김승회는 홍성흔을 영입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두산 마운드를 지키고 있을 선수. 그 대신 이혜천(34), 서동환(27), 김강률(25), 안규영(25)이 팀에 남았습니다.
결국 1루·지명타자 자리에 선수들을 차곡차곡 쌓아두느라 투수들을 다 날린 모양새입니다. '안고 죽자'는 생각이었다면 차라리 투수를 보호했어야 하는 게 맞았습니다. 누가 뭐래도 이 팀 야수들은 쑥쑥 키우는 팀이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들 다 풀어주고 투수 없다고 수술 경력 있는 노경은(29)은 선발 두 번 연속 128구를 던져야 했습니다.
프로야구 한 시즌은 128경기. 주전만큼이나 백업이 중요하고, 선발 투수 못잖게 구원진 구성도 중요합니다. 제 아무리 주전 전력이 강해도 한 쪽으로 치우친 선수 구성으로는 장기 레이스를 치르기 쉽지 않은 게 당연한 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쌓인 야수들 내주고 투수 받아 오면 됩니다. '안고 죽지' 말고 '같이 살자'고요. 아, 그런데 트레이드 활발하게 해도, 감독이 계속 이 모양이면 소용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