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5월 4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당시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팀의 홈 구장이었던 클로슬리 필드. 이날 이 구장을 찾은 3만 관중은 한 목소리로 상대팀 브루클린 다저스 선수를 향해 야규를 보내고 있었다. 그 선수는
그때였다. 다저스 주장 피 위 리즈(1918~1999·사진)는 자기 수비 위치(유격수)를 벗어나 1루에 있던 로빈슨 곁으로 향했다. 그리고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로빈슨과 어깨동무를 했다. 경기장은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두 선수는 침묵 속에서 빙긋이 웃어 보였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리즈는 "당신이 누군가를 싫어하는 데는 수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게 피부색이어서는 안 된다(You can hate a man for many reasons. Color is not one of them)"고 말했다.
세월이 흘러 1999년 리즈의 장례식 때 역시 초창기 흑인 메이저리거였던 조 블랙은 "피 위가 로빈슨에게 어깨동무 했을 때 모든 흑인이 마음으로 피 위와 어깨동무를 했다(When you touched Jackie, you touched all of us)"며 "등번호처럼 그는 모든 흑인들 마음의 넘버 1이었다"고 추모했다.
리즈라고 성장기 때 유독 흑인들하고 어울릴 기회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리즈 역시 태어나서 처음 악수를 한 흑인이 로빈슨이었다고 한다. 모두가 메이저리그에 흑인이 진출하는 데 반대하고 있을 때, 피위는 다저스에서 로빈슨과 계약했다는 사실을 듣고 '(나보다 뛰어난 선수가 왔으니) 유격수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한 칼럼리스트는 이렇게 썼다. "베이브 루스는 야구를 바꿨고, 피 위 리즈는 미국을 바꿨다."
이 이야기를 꺼낸 건 한화 4번 타자 김태균(31·사진) 때문. 10일 방송된 네이버 라디오볼 진행자는 "김태균이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에 대해) 정말 독특한 대답을 했다"며 "(롯데 유먼) 얼굴이 너무 까매서 마운드에서 웃을 때 하얀 이와 공이 겹쳐 보여 치기 어렵다더라. 특별히 까다로운 선수가 없었는데 유먼 선수가 나오는 날에는 하얀 이빨에 말린다고 했다"고 전했다.
논란이 불거진 게 당연한 일. 한화에서 진화에 나섰다. 한화는 이날 저녁 보도자료를 내 김태균의 해명을 전했다. "유먼 선수의 투구폼이 타자 입장에서 공략하기 어려운 훌륭한 선수라는 뜻으로 말한 부분이 아쉽게 전달된 것 같습니다. 일본팀에서 용병 생활을 경험해 본 저로서 용병의 힘든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팀의 바티스타를 비롯한 용병들과도 각별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공인으로서 앞으로 좀 더 신중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김태균은 일본에서 뛰던 시절 니시오카 츠요시(西岡剛)가 재일동포 3세라는 사실을 밝힌 장본인이기도 하다. 리즈는 연일 상대 투수 빈볼에 시달리던 로빈슨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네게 빈볼을 던지는 투수들은 너를 싫어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못하는 순진한 바보들"이라고 말이다. 김태균이 아주 나쁜 사람이라 저런 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김태균 역시 팀 동료를 두고도 '우리'와 '남'으로 나누는 그저 순진한 바보가 아니었을까. 물론 몰라서 그랬다고 죄가 아닌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