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올 시즌 프로야구는 9개 팀이 100경기를 치른 1일에서야 100만 관중을 돌파했습니다. 지난해보다 35경기나 늦은 페이스죠. 이 때문에 프로야구 인기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해 최다 관중(715만6157명) 기록을 세운 야구 인기가 한 해만에 이렇게 몰락한 이유는 뭘까요? 아니, 지난해보다 야구 인기가 떨어진 건 맞을까요?

하늘이여, 야구를 버리시나이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날씨 탓에 관중이 줄었다고 봅니다. KBO는 지난 달 30일 100만 관중 돌파를 예상하고 보도자료를 냈는데요, 그 자료에서 "올 시즌 일주일 이상 빠른 개막과 이상기온, 강풍 등으로 체감온도가 상당히 낮았던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많은 관객이 야구장을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기온 자료도 KBO 주장이 사실이라고 증명합니다. 공식 기록원들은 매 경기에서 앞서 기상청 자료를 토대로 기록지에 경기장 기온을 적습니다. 1일까지 100경기 평균 기온은 14℃로 지난해 100경기 19.5℃보다 4.5℃나 낮습니다. 지난해는 최근 30년 서울 지역 5월 평균 기온(17.8℃)보다 높은 기온에서 100경기를 치른 셈이죠. 지난해 100경기를 치른 건 5월 11일이었습니다.
그래프 보는 법: 옅은 회색은 역대 당일 서울 지역 최고, 최저 기온. 진한 회색은 평년(최근 30년) 최고, 최저 기온. 주황색은 올해 최고, 최저 기온. 5일은 확실하게 1일을 포함하면 최대 6일만 평년 기온 수준이었고 나머지는 확실히 추웠습니다. 

올 시즌도 기온에 따라 관중 숫자가 변했습니다. 1일까지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25일 중 관중 입장율(경기 입장 관객÷구장 만원 좌석수)이 가장 적은 5일 평균 기온은 11.7℃로 가장 높은 5일 15℃보다 낮습니다. 기온에 따라 야구장을 찾는 발길이 달라진다는 말은 단순한 핑계보다는 사실에 가까운 셈이죠.


TV 시청률은 올랐다. 모바일 시청도 그렇다.

그럼 TV 시청률은 어떨까요? 소폭이지만 시청률도 올랐습니다. 시청률 조사 기관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프로야구 중계하는 4개 채널(KBSN·MBC스포츠플러스·SBS-ESPN·XTM)의 평일 오후 6시~11시(야구 중계 시간) 평균 시청률(수도권 유료 가구 기준)은 올 4월 0.609%로 지난해 4월 0.587%보다 높습니다. (도대체 박동희 씨는 어떤 자료를 보고 이렇게 쓰셨을까요? 이에 대한 제 반론은 여기.)
 
게다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모바일 기기로 야구 중계를 보는 야구팬도 늘었죠. 프로야구 온라인·모바일 중계를 맡고 있는 NHN(네이버) 관계자는 "영업 기밀이라 숫자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모바일 기기로 프로야구 중계 페이지를 찾은 이용자는 지난해 4월보다 올 4월에 27%늘었다"며 "지난해까지는 와이파이(Wi-Fi)로만 접속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3세대(3G) 이동통신망, 롱텀레볼로션(LTE)로도 접속할 수 있게 된 영향 덕이라고 본다"고 전했습니다.

순위 날짜 원정팀 홈팀 결과 동시접속자(명) 비고
1
4-10

3-4 19만7461  나지완 연장 12회 끝내기 2루타
2
4-18
13-12 19만0781  역대 9이닝 최장 시간 타이(5시간)
3
4-24
5-5 18만7471  12회 무승부
4
4-16
4-6 18만6859  한화 시즌 첫 승
5
4-07
3-1 16만7260  KIA-롯데 첫 대결
자료: NHN

표에서 보시는 것처럼 온라인 인기 상승은 KIA 타이거즈가 주도했습니다. KIA는 지난해(9535명)보다 올해(9991명) 평균 관중 숫자가 늘어난 유일한 구단이기도 합니다.


바보야, 문제는 마케팅이야!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프로야구 인기 자체가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관중이 줄어든 건 분명한 사실이죠. 무엇이 문제일까요? 간단합니다. 야구라는 콘텐츠를 즐기기에 야구장이 그리 적합하지 못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인프라도 문제지만 마케팅 전략이 더 큰 문제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는 1일 경기를 앞두고 팬들에게 주전 유격수 핸리 라미레스 버블 헤드 인형을 나눠줬습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당한 부상 이후 이날 팀에 복귀한 라미레스는 홈런 1개, 2루타 1개를 터뜨리며 팀의 6-2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날 지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다저스 마케팅 부서에 더 큰 의미를 안긴 승리"라고 평했습니다. 우리 야구장엔 이런 재미가 있을까요?


넥센 히어로즈 '비공식' 응원단장을 자처하는 테드 스미스 씨는 자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삼성 라이온즈 구단을 성통하고 나섰습니다. 삼성에서 스미스 씨가 공식 응원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구구장 응원단상에 올라가려는 걸 막았다는 겁니다. 안전 문제로 그랬으리라 짐작하지만 스미스 씨 말처럼 그렇다면 다른 이들도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게 맞았다고 봅니다.


재미있게 놀고 싶어서 왔는데, 더 잘 놀라고는 못해줄망정 놀지 말라고 하는 건 해서 안 되는 일이라고 봅니다. 안전하게 잘 놀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었을까요? 


순간에서 영원으로

넥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서비스에 걸맞지 않은 입장권 가격도 문제입니다. 목동은 1일 경기까지 홈에서 10경기를 치르면서 5억6893만 원 정도를 벌었습니다. 지난해 10경기 때는 7억5993만 원이었으니 25% 정도가 줄어든 셈입니다. 관중 숫자는 평균 8831명에서 3842명으로 56%가 빠졌습니다. 8605원이던 객단가는 1만4809원으로 올랐지만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야구팬은 충성도가 아주 높은 평생 고객입니다. 아니라면 이렇게 낙후된 야구장도 기꺼이 찾지 않을 겁니다. 객단가도 물론 중요하지만 생애가치(LTV·Life Time Value)가 훨씬 중요한 고객이라는 뜻입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우리 프로야구 팀들이 이런 가치에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은 받기 어렵습니다.

지난해 프로야구 8개 팀은 관중 입장 수익으로 평균 79억1951만 원을 벌었습니다. 프로야구 중계권료로 받은 돈 31억2500만 원보다 2.5배 넘게 많은 돈입니다. 그렇다면 TV로 보는 것보다 야구장을 찾는 게 최소한 2.5배 이상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세심한 마케팅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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