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이기지 못하면 잘릴 것이다. 이긴다면 잘릴 날을 좀 더 미룬 것뿐 – 레오 듀로셔


태풍이 불었다. 프로야구 감독이 잘렸다. 다시 태풍이 불었다. 또 감독이 잘렸다. 그렇게 한대화, 김시진 전 감독은 옷을 벗었다. 두 감독 모두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이 가장 중요한 경질 사유였다. 과연 성적 부진 제1 원흉이 감독이었던 걸까?


"박찬호, 김태균이 부족해?

지난 글에도 썼지만 한화가 지난해 막판 상승세를 선보인 건 '덤'이었다. 진짜 실력이 좋아진 게 아니었다. 선발투수, 셋업맨, 4번 타자를 영입한다고 갑자기 우승 경쟁을 할 수준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새로 바뀐 사장과 단장은 우승을 원했다. 팀이 4월 한 달 간 홈도 원정도 아닌 청주구장에서 홈경기를 치르는 건 그분들께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만큼 영입을 해줬으니 당연한 요구라는 자세였다.


한화는 5월 12일 코칭스태프 보직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이종두 수석코치는 존재도 하지 않던 3군(잔류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전 감독은 "수족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팠다"며 이때부터 경질을 예감했다고 했다. 어쩌면 프런트에서 의도했던 효과가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잠실 원정 경기가 열리던 어느 날 박찬호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시각 박찬호는 모기업 광고를 찍고 있었다. 프런트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선수들도 알았다. 한 전 감독만 몰랐다.


7월에는 정민철, 송진우 투수 코치가 1, 2군 자리를 맞바꿨다. 2군으로 내려간 정 코치는 새 외국인 투수를 구하러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물론 이번에도 한 전 감독만 몰랐다.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 어떤 감독이 자기 뜻을 제대로 펼 수 있을까. 또 선수들이 감독 말을 제대로 따를 수 있을까.


한 야구 관계자는 "야구계에는 우리나라에서 야구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은 (노재덕) 한화 단장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며 "해외에서 불펜 투수로 주로 활약한 선수도 선발로 나와 몰아서 던지고 충분히 휴식을 주면 된다는 접근법으로 외국인 투수를 뽑았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한화는 현재 군 입대 중인 선수가 21명이나 된다. 보통 팀 두 배 수준. 이유는? 프런트가 교통 정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화룡점정은 역시 송광민 해프닝. 시즌 중 입소-퇴소-재입소를 거치며 송광민은 3년 동안 리그에서 뛸 수 없게 됐다. 복귀 이후도 아직은 물음표다.


한 전 감독이 무조건 억울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을 한 전 감독에게 덮어씌우는 건 가혹하다. 경기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코칭스태프 및 선수단에게 '다음 감독은 누가 될까'라는 궁금증을 안긴 채 시즌을 마치게 하는 건 프런트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운용으로는 내년 4강도 힘들겠죠?"

김시진 전 감독이 떠난 자리도 비슷하다. 물론 김성갑 감독대행선수단 반응을 보면 넥센은 한화처럼 노골적인 '작업'을 진행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양반' 김 전 감독 입에서 "8월부터 분위기를 감지했다. 밖에서 안 좋은 소문을 접했다"는 말이 나온 건 심상찮은 징조다.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는 "이 대표는 넥센의 경기를 모두 챙겨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보는 만큼 아는 것도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 이 대표가 많은 경기를 보며 느낀 것이 이번 경질의 가장 큰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썼다. 이 기사 제목은 "넥센 '야구 아는 프런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이다.


그렇게 야구를 잘 아는 프런트가 팀을 인수한 뒤부터 그렇게 선수를 파는 데만 열을 올렸을까. 그래,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 사실까지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팬심을 빼면 이택근에게 50억 원을 안긴 건 솔직히 '비상식적인' 투자다. 3년 동안 운동을 안/못 한 김병현에게 기대를 거는 것도 그렇다.


대신 박병호가 놀라운 모습으로 성장했고, 시즌 초반 강정호도 여태 우리가 알던 강정호가 아니다. 서건창은 아무도 모르던 선수에서 이제 모르면 안 되는 선수가 됐다. 여전히 볼넷 때문에 속을 썩이기는 하지만 젊은 투수들에게 '성장'이라는 표현도 결코 과찬이 아니다.


그런데도 구단 관계자는 2주 전 정우영 MBC스포츠+ 아나운서에게 "이런 운용으로는 내년에도 4강 힘들겠죠?"라고 했다고 한다. 맞다. 넥센이 후반기에 무너진 건 맞다. 그러나 야구가 장기 레이스를 벌이는 이유는 실제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전반기에 잘 나가다 무너지나, 전반기에 죽을 쑤다 후반기에 치고 나가나 6위는 6위다. 세이버메트릭스 관점에서 전년도 후반기 성적이 이듬해 팀 성적 예측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올해 기회를 충분히 받은 선수가 내년에 터지면 성적이 올라갈 확률이 높을 뿐이다.


더 기가 막힌 건 이 기사. 구단 한 관계자는 “1군 코칭스태프가 늘 쓰던 베테랑 선수만 기용한 채 유망주와 2군에서 가능성을 보인 선수들은 외면한 감이 있다”며 “넥센 2군이 퓨처스리그 남부리그에서 2위를 달렸음에도 1군에서 유망주 효과를 별로 보지 못한 건 매우 아쉬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무슨 평행이론을 보는 듯 한화와 넥센 프런트가 야구를 이해하는 수준이 너무 닮은꼴이다.


"우린 이틀 걸려"

1군 무대서 더블헤더는 올해 2년 만에 부활했지만 선수들은 본의 아니게 더블헤더를 뛸 때가 있다. 오후 일찍 2군 경기를 뛰고 다시 1군 경기에 나설 때가 있는 것. 그러나 2군 구장이 강진에 있는 넥센 선수들에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시진 감독은 이를 한 마디로 요약했다.


우린 이틀 걸려.


한화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화 2군은 연습장이 따로 없다. 2군도 대전에서 연습해야 하는 것. 여기에 3군까지 생겼으니 서로 시차를 두고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연히 연습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올해 말 완공하는 서산구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롯데는 김해 상동구장을 지은 뒤 2, 3년이 지난 후부터 비밀번호 같은 성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삼성이 꾸준히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는 데는 삼성트레이닝센터(STC)의 힘이 크다. 하루를 쪼개서 쓰고 이틀 걸려 1, 2군을 왕복해서는 절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정신이 박힌 프런트라면 "선수 사줬는데 성적 못 낸다"는 말 대신 "변변찮은 2군 구장도 없는데 그래도 2군에서 선수들 틈틈이 올려 기회 주고, 부상 선수 관리 잘 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그게 현장에 대한 예의다.


야구는 원래 현장의 것

유독 야구에서만 감독도 선수들하고 똑같은 유니폼을 입는다. 왜일까? 원래는 감독도 선수였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선수 겸 감독(감독 겸 선수가 아니라)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 야구는 원래 현장의 것이다. 좋은 프런트도 우승의 충분조건인 건 맞다. 그렇다면 좋은 프런트란 무엇일까.


정답은 이 단락 안에 있다. '야구는 원래 현장의 것'임을 이해하는 프런트. 역사에 제갈량으로 이름을 남기는 게 꼭 유비만 못한 건 아니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