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올림픽 통계 사이트 스포츠레퍼런스(www.sports-reference.com)에 따르면 2010년 밴쿠버 올림픽까지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는 모두 11만9938명(여름·겨울 중복 포함)입니다.

 

이 가운데 메달을 단 하나라도 딴 선수는 2만5247명. 참가 선수 5명 중 1명(21.1%)이 메달을 딴 셈입니다. 그럼 메달을 2개 이상 딴 선수는 몇 명일까요? 6123명(5.1%)입니다. 메달을 따는 것도 쉽다고 할 수 없지만 메달 2개 이상이 되면 정말 '고난도' 과정이 됩니다.

 

그럼 여러 종목에서 메달을 딴 선수는 몇 명일까요? 20명뿐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사이클에서 금메달, 2004년 아테네 대회 때는 조정에서 은메달을 딴 레베카 로메로가 가장 최근에 이 리스트에 자기 이름을 올렸습니다.

 

('펠피쉬' 마이클 펠프스는 수영에서, 1980~1990년대 육상 스타 칼 루이스는 단거리와 멀리뛰기에서 다관왕을 했지만 올림픽 종목 분류상 이는 같은 종목에서 메달을 딴 겁니다.)

 

이즈음 되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혹시 여름·겨울올림픽에서 모두 메달을 딴 선수는 없을까요? 없으면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을 터. 기준에 따라 4명 혹은 5명이 이 말도 안 되는 일에 성공했습니다.

 

 

에디 이건(미국)은 1920년 안트베르펀 여름 대회 때 권투에서, 1932년 레이크플래시드 겨울 대회 때는 봅슬레이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건은 미국 하버드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법을 공부했고 제2차 대전 참전 용사에 직업은 변호사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진정한 '엄친아'였다고 할까요?

 

 

야코브 툴린 탐스(노르웨이)는 1924년 샤모니 겨울올림픽 스키 점프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샤모니 대회가 첫 번째 겨울올림픽이기 때문에 탐스는 올림픽 스키 점프 초대 챔피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12년 뒤에는 베를린 여름 대회에서 요트 은메달을 땄습니다.

 

 

세 번째는 크리스타 루딩(동독·독일). 루딩은 1984년 사라예보, 1988년 캘거리, 1992년 알베르빌 대회까지 세 차례 겨울올림픽에 출전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차지했습니다. 1998년 (사실은 가을에 열렸지만) 여름 서울 대회 때는 사이클에서 은메달을 땄습니다. 같은 해 열린 여름·겨울 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딴 선수는 루딩이 유일합니다. (1992년 이후 올림픽은 여름·겨울 대회를 2년마다 번갈아 열리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규칙을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루딩이 유일할지도 모릅니다.)

 

 

가장 최근에 여름·겨울 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선수는 클라라 휴즈(캐나다)입니다. 휴즈는 1996년 애틀랜타 여름 대회에 출전 사이클에서 동메달 2개를 목에 걸었습니다. 그 다음 2002년 솔트레이크, 2006년 토리노, 2010년 밴쿠버 겨울 대회 때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차지했습니다. 여름·겨울 대회 모두 메달을 2개 이상 딴 선수는 휴즈뿐입니다.

 

이렇게 네 명이 여름·겨울 대회 때 서로 다른 종목에서 메달을 딴 기념비적인 인물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여름·겨울 때 같은 종목에서 메달을 딴 선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주인공은 스웨덴 출신 일리스 게로프스트롬입니다. 피겨스케이팅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게로프스트롬은 1920년 안트베르펀 '여름 대회' 때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이때까지는 겨울 대회를 분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어 첫 겨울 대회였던 1924년에는 프랑스 샤모니에서, 1928년에는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살면서 이런 선수를 몇 명이나 더 볼 수 있을까요? 특히 이건처럼 여름·겨울 대회에서 다른 종목에 출전 모두 금메달을 따내는 선수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스포츠팬 한 사람으로서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바보 같이 도전하는 이들이 계속 살아남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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