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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새 국기"라고 누리꾼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그림입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스페인 우승을 예상한 '점쟁이 문어' 파울을 왕실 문장 대신 넣은 그림이죠. 하지만 월드컵 우승에도 스페인 국민들 반응은 뜨겁지만은 않습니다. "차라리 네덜란드가 이기길 바랐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오늘자 동아일보 국제면에 월드컵 우승 이후 스페인 분위기를 전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 앞머리를 인용하면 ;

스페인 바르셀로나 주민들은 이번 월드컵 결승전에서 어느 팀을 응원했을까. 당연히 자국 팀을 응원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답은 세 갈래로 나뉜다. 모국인 스페인을 응원한 사람, 스페인 대표팀 중 자기 지역 프로축구팀인 FC바르셀로나 출신 선수들만 응원한 사람, 또 아예 네덜란드를 응원한 사람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들은 이번 결승전이 카탈루냐 지역의 오랜 분리독립 요구로 국민통합의 숙제를 안고 있던 스페인을 새로운 시험대에 서게 했다고 12일 보도했다.
 
물론 아르헨티나 경기를 앞두고 대한민국이 1-3으로 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야구선수도 있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초대형 스포츠 이벤트 때는 자국 팀(선수)을 응원하는 게 일반적이죠. 그런데도 스페인 바르셀로나 주민들은 외신에서 보도할 정도로 나뉜 걸까요?

기사를 읽고 대학 시절 쓴 교양과목 보고서 '스포츠와 민족주의'가 생각나 일부 옮겨 봅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이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우리 국가대표팀과 대결을 펼친 스페인은 축구 강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 기량은 물론이거니와 프로축구 리그인 ‘프리메라 리가(Primera Liga)’의 인기는 전 세계 프로 축구 리그 가운데에서 최고 수준이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와 FC 바로셀로나(FC Barcelona) 경기는 그 어느 A매치 못지않은 열기와 치열함 속에 진행된다. 이 두 팀은 단지 서로를 꺾기 위해 경쟁적으로 우수 선수를 영입함으로써 축구 선수들의 몸값을 천문학적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그 결과 프리메라 리가는 파산 위기에 놓여 있다.

어느 스포츠 종목이든 라이벌 팀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라이벌 팀이 경기 결과뿐만 아니라 선수 영입에서도 서로 경쟁하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두 팀은 자기 자신이 사라져 없어질망정 상대를 기필고 꺾고야 말겠다는 자세다. 이 정도 승부욕은 단순한 스포츠맨십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한 가지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축구 선수의 가장 큰 꿈은 국가 대표가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 축구 선수들은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을 그다지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대표보다는 자기 지역의 대표로 선발되어 스페인 내 다른 지역 선수들과 경쟁하고 승리하는 것을 더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스페인에는 뿌리 깊은 지역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스페인 사람들은 스스로를 스페인 국민이라고 일컫기보다 특정 지방 사람이라고 말하기를 즐긴다. 이 지방색은 우리 지역감정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리는 한 민족국가 안에서 지방에 따라 감정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만, 스페인의 국가 형태는 사실상 지역주의 국가 혹은 연방국가에 가까운 형태다.

이 차이 때문에 민족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기능하는 것과는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 민족주의는 사회의 불안정적인 요소들을 통제하고 사회를 통합할 적절한 기제로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스페인 사람들에게 민족주의는 지방 혹은 자기 자치 단체의 이권과 통합을 위한 기제로서 기능한다. 결국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지역주의와 민족주의가 동일한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실은 축구 경기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가 속해 있는 카탈로니아(Catalonia) 지방을 비롯한 각 지방의 독립 운동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사실 스페인은 수도 마드리드(Madrid)가 속한  카스티야(Castilla) 지방과는 언어, 문화, 풍습 등이 다른 지역이 많다. 법적 측면에서도 현재 스페인 헌법은 스페인이 지방주의 국가인지 아니면 통합적인 국가인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자치 정부 형성에 대해 법적 규칙이 적용된다기보다 역사적인 전통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바르셀로나에서 1992년 올림픽이 열렸을 때 세계 언론은 '독립 요구'에 주목했다. 카탈로니아 지방은 17세기 중반 스페인 제국 시절 포르투갈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지만 독립에 실패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스페인 국민'이라는 정체성은 여권 국적에만 해당할 뿐이다.

카탈로니아 사람들이 스페인과 자신을 이질화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언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카탈란(catalan)어를 사용한다. 카탈로니아 사람들은 이 언어를 '스페인어 방언의 하나'가 아니라 '라틴어에서 분화된 개별 언어'로 받아들인다. 두 언어의 차이는 음성적인 면에서 두드러진다. 'Jose'라는 이름은 카스티야어에서 /호세/로 소리 나지만, 카탈란어에서는 /조세/로 소리난다. 이 언어적 차이가 카탈로니아 사람들에게는 지역주의로서의 민족주의로, 그러니까 ‘배타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카탈로니아 사람들은 카스티야 지역과 '경쟁’'다. 프랑코 총통 독재 시절에는 카탈란어가 공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자연스럽게 이해 대항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노래 운동 '노바 칸소(Nova Canco)'가 대표적이다. 카탈로니아 사람들은 새롭다는 뜻의 카스티야어 'nueva' 대신 'nova'로 표기했다.

유럽 축구 클럽은 우리 프로 구단과는 기원이 다르다. 우리 프로 구단은 우선 대기업이 팀을 만들고 거기에 선수들이 모인 형태다. 팀이 선수보다 먼저 만들어지는 형태다. 반면 유럽 클럽은 조기 축구회처럼 우선 선수들이 모인다. 주민들끼리 축구를 즐기다가 결국 팀이 되고 유력 기업을 스폰서로 두면서 직업화된 것이다.

때문에 지금처럼 프리메라리그가 국제화되기 전에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경기는 정말 지역 대 지역의 경쟁이었다. 각 지역 출신의 선수가 팀을 이뤄 지역 명예를 걸고 승부를 벌였던 것이다. 스페인 국가 대표 선수 구성도 어느 지역 출신 감독이 대표팀을 맡느냐에 따라 달라질 정도였다.

처음엔 지역 출신끼리 팀을 이루어 경쟁하던 리그가 천문학적인 이적료가 오가는 거대 시장이 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프랑코 총통이다. 프랑크 총통은 레알 마드리드의 굉장한 팬이었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가 우수 선수를 영입할 수 있도록 금전적 편의를 제공했다. FC 바르셀로나도 이에 지지 않고 경쟁적으로 선수를 영입하게 된 결과가 오늘날 파산 위기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로셀로나의 라이벌리에는 민족주의의 한 변형인 지역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말하자면 ‘지방화’된 민족주의가 라이벌리의 근간인 셈이다. 스페인은 민족국가 개념의 근대 국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것은 결국 스페인 사람들이 스스로를 스페인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

우리도 정치적으로 지역별 온도차가 큰 나라죠. 그래도 월드컵 때는 모두 다함께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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