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대구 경기, 8회말 삼성의 공격이 시작되자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7회말 수비 때 투수로 나섰던 조웅천이 좌익수로 기용됐기 때문이다. 대신 마운드에는 좌완 투수 가득염이 올라 있었다. 좌타자 양준혁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양준혁은 초구를 때려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났고, 조웅천이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투수가 야수로 포지션을 잠시 변경한 뒤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 사실 지난 '92 시즌 정삼흠을 제외하자면 지난 15년간 같은 경험을 한 투수는 아무도 없다. 말 그대로 10년에 한번 벌어질까 말까한 광경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 특유의 '데이터 야구‘에 비춰보자면, 이런 기용 패턴은 상당히 유의미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조웅천은 좌타자를 상대로 OPS .955나 허용한 데 비해, 가득염은 .534로 좌타자를 철저하게 틀어막았다. 반면 우타자를 상대로 한 피OPS는 조웅천(.740)이 가득염(.855)에 비해 뛰어났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비단 조웅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이드암 및 언더핸드 투수(이하 사이드암)는 일반적으로 좌타자에 약하다. 지난 2년간 이들이 좌타를 상대로 허용한 OPS는 .764로 리그 평균 .734보다 30포인트 가량 높은 데 비해, 우타자들은 이들을 상대로 .688밖에 때려내지 못했다. 변칙 투구폼은 확실히 오른쪽 타자에게 엄청난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자연스레 한 가지 궁금증이 더 생긴다. 좌투수는 좌타자에 강할까? 유감스럽게도 지난 2년간의 데이터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인다. 좌투수들은 좌타자에게 OPS .738을 허용했다. 우타자 상대 기록은 .733, 무시할 만한 차이긴 하지만, 좌투수들은 오히려 우타자에게 더 강하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왜 감독들은 좌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좌투수를 마운드에 올리는 것일까?
<표 1> 상대 투타별 OPS (2005-2006)
해답은 단순하다. 좌투수가 좌타자에게 얻어맞을 확률이 더 적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좌타자들은 좌투수를 상대로 OPS .738을 때렸다. 우투수가 마운드에 있을 경우엔 이 기록이 .754로 올라간다. 사이드암의 경우 .764로 상황이 더 악화된다. 그러니까 좌투수가 좌타자를 압도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감독으로선 미봉책이라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조사 표본¹에 포함된 타자는 모두 84명이다. 이 가운데 29% 정도에 해당하는 24명이 좌타자였다. 이 24명의 좌타자 가운데 리그 평균인 .734보다 높은 OPS를 기록한 타자는 50%인 12명, 반면 우타자의 경우 같은 기록을 올린 선수의 비율은 37%에 그쳤다. 평균 기록을 비교해 봐도 좌타자(.751)들의 기록이 우타자(.727)보다 뛰어났다.
<표 2> 투타 유형별 OPS 및 피OPS (2005-2006)
그런데 좌투수의 경우 전체 상대 타석 대비 좌타자의 비율이 36.1%나 된다. 우완 투수의 경우 30.7%, 사이드암의 경우는 24.8%다. 그러니까 상대 타자의 질(質)을 고려할 경우 좌완 투수들이 좀 더 힘든 타자를 상대로 마운드에 자주 올랐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리그 평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738로 막았다면 오히려 칭찬해 줄 만한 게 아닐까? 닭과 달걀 같은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더욱 이번 시즌에 좌투수들은 좌타자를 상대하는 요령을 더욱 터득한 듯한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오늘 현재까지 좌투수를 상대로 한 좌타자의 OPS는 .701, 좌타자 전체 평균은 .715다. 한편, 우타자들은 사이드암 투수에게 .615밖에 때려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양준혁이 좌익수 쪽으로 타구를 날릴 확률 역시 23.4%로 그리 높은 편이 못 됐다. 그러니까 김성근 감독의 깜짝 기용이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재미에 관한 취향이야 각자 다른 판단이라 해도 말이다.
1) 2005~2006 시즌 도합 390 타석 (규정타석의 50%) 이상 들어선 타자의 타석
2) 고의사구 및 희생번트가 나온 타석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