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동열이죠?"


25년 전 오늘 대구 안방 경기를 앞두고 있던 배대웅 삼성 코치(63)가 물었습니다. 경기 시작 1시간 전 선발 라인업(오더)을 교환하는 자리에서였습니다. 상대 팀 해태 선발이 오른손 투수 선동열(53)인지 확인했던 것. 당시 주심을 맡은 박찬황 심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배 코치는 서류철에서 오더 용지를 꺼내 박 심판에게 제출했습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김봉연 해태 코치(64)가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서류철 안에서 같은 날짜로 된 오더 용지 한장을 찾아냈습니다. 왼손 투수 김정수(54)에 대비한 오더였습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해태 김응용 감독(75)은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주범'이었던 김성근 삼성 감독(74·사진)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죠. 박 심판은 또 나름대로 왜 다른 팀 선발을 먼저 알려줬을까 속이 타들어가던 상황. 그래도 경기는 계속 되어야 하는 법. 박 심판이 김응용 감독에게 가서 빌었고 결국 예정 시각이 30분 지나서야 경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김응용 감독은 조건을 하나 내걸었습니다. '오더 두 개 중에 아무거나 삼성에서 마음대로 고르라'는 것. 김성근 감독은 김정수용 타순으로 경기를 치르겠다고 한 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으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습니다. 해태가 2회초에 먼저 1점을 뽑았지만 삼성은 선동열을 두들겨 6회말까지 7점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7회말 김응용 감독은 김정수를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박 심판은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김정수는 첫 타자였던 류중일(53)을 상대로 등 뒤로 날아가는 위협구를 던졌습니다. 박 심판이 경고를 주자 김응용 감독은 코치들을 대동하고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항의했습니다. 김정수는 4번 타자 이만수(58)를 상대로도 위협구를 던졌고 박 심판은 결국 김정수를 퇴장시켰습니다. 그다음 등판한 강태원(45)이 기어이 '빈볼' 미션에 성공하면서 양 팀 선수가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박기철 기록원은 7회말 상황을 기록지에 이렇게 적어 넣었습니다.


三星(삼성) 柳仲逸(류중일) 제3구 타자 등 뒤로 던지자 주심 경고. 金應龍(김응용) 감독 등 해태 코치들 어필. 약 4분간 중단(20:51~20:55). 李萬洙(이만수) 제1구 타자 등 뒤로. 金正洙(김정수) 퇴장(21:01~21:04) 구원투수 강태원 제3구 Dead Ball. 양팀 선수들 그라운드로 몰려나왔으나 육체적 충돌은 없었음(21:07~21:10)



당연히 이대로 끝날 일이 아니었습니다. 경기 후 김응용 감독은 "이중오더는 설사 선발 라인업을 결정하지 못해 빚어진 것을 감안하더라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심하게 말하자면 사기극으로 매도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경기 이틀 뒤 상벌위원회를 열어 김정수에게는 제재금 50만 원과 10경기 출장 정지, 박 심판에게는 제재금 20만 원을 부과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엄중 경고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여기서 일단 끝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곧잘 김성근 감독이 경기가 끝난 뒤 김응용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선발은 성준"이라고 알려주고 나서 다음날 1이닝도 채우기 전에 성준(54)을 내렸다는 글이 올라오곤 합니다. 왼손 투수 성준을 1회에 내리고 오른손 투수를 올렸다고 댓글을 다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1991년 7월 14일은 일요일이라 다음날 경기가 없었습니다. 삼성은 그달 16일부터 사직 방문 3연전을 치른 게 다음 일정이었습니다.


※이 글을 준비하던 도중 박 심판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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