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얀니크 신네르(24·이탈리아)가 3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15일(이하 현지시간)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건 합의를 봤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남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인 신네르는 지난해 3월 인디언웰스 마스터스 기간 WADA 금지 약물인 '클로스테볼' 양성 반응을 보였습니다.
신네르는 이에 대해 '물리치료사가 자기 손가락 치료에 쓴 스프레이에 클로스테볼이 들어 있었고, 마사지 과정에서 내 몸에 들어온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국제테니스건전성기구(ITIA)는 이 해명을 인정하며 인디언웰스 마스터스 4강 진출로 받은 상금과 랭킹 포인트를 박탈하는 선에서 징계를 마무리했습니다.
ITIA는 국제테니스연맹(ITF), 남자프로테니스(ATP), 여자프로테니스(WTA)가 공동 설립한 '상벌위원회'라고 풀이할 수 있는 조직입니다.
그러자 WADA에서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WADA는 "신네르에게 1, 2년 출전 정지 징계가 필요하다"면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로 이 문제를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WADA와 신네르가 3개월 출전 정지로 합의를 보면서 CAS 판결을 구할 이유도 사라지게 됐습니다.
다만 WADA가 헛수고를 한 건 아닙니다.
3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이끌어냈으니 일단 명분은 찾은 셈입니다.
호주 오픈 2연패 주인공 신네르에게도 나쁘지 않은 결과입니다.
이번 징계는 9일부터 소급해 적용하며 5월 4일에 끝이 납니다.
이러면 신네르는 같은 달 7일 자국에서 막을 올리는 이탈리아 오픈에 정상 출전할 수 있습니다.
같은 달 25일 시작하는 프랑스 오픈에 나서는 데도 당연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4월에 CAS 판결이 나왔다면 신네르는 프랑스 오픈은 물론 윔블던(6월 30일 개막)에도 참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I don’t believe in a clean sport anymore …
— Stanislas Wawrinka (@stanwawrinka) February 15, 2025
그렇다고 동료들 마음까지 되돌리는 데 성공한 건 아닙니다.
스나티슬라브 바브링카(40·스위스)는 "깨끗한 스포츠라는 말을 더는 못 믿게 됐다"고 X(옛 트위터)에 남겼습니다.
닉 키리오스(30·호주)도 "(신네르는) 우승 기록과 상금 모두 그대로 인정받게 됐다. 이건 유죄인가 아닌가"라면서 "(오늘은) 테니스에 슬픈 날"이라고 했습니다.
WADA는 순수한 의도에서 문제를 거론했겠지만 결과적으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