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30일 세상을 떠난 조혜정 전 프로배구 여자부 GS칼텍스 감독. 동아일보DB

'나는 작은 새' 조혜정 전 프로배구 여자부 GS칼텍스 감독이 영면에 들었습니다. 향년 71세.

 

조 전 감독 큰딸로 프로골프 선수였던 조윤희(42)는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오늘 오전 눈을 감으셨다"고 30일 전했습니다.

 

조 전 감독은 지난해 12월 췌장암 진단을 받고 분당서울대병원에 투병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 21일 치료를 중단하고 경기 화성시 동탄 집으로 돌아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기뻐하는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 동아일보DB

조 전 감독은 한국 여자 배구가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차지할 때 대표팀 에이스로 통하던 선수였습니다.

 

한국 대표팀이 올림픽 구기 종목에서 메달을 따낸 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조 전 감독은 164cm로 배구 선수치고는 작은 키였지만 제자리에서 68cm를 뛰어오를 정도로 점프력이 좋았습니다.

 

조 전 감독이 180cm가 넘는 상대 '블로킹 숲'을 뚫고 스파이크를 상대 코트에 내려꽂자 외신에서 붙여준 별명이 'flying little bird'였습니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코트 위를 날고 있는 조혜정 전 감독. 동아일보DB

부산이 고향인 조 전 감독은 서울 숭의여고 3학년이던 1970 방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조 전 감독이 서울로 유학(遊學)을 오게 된 건 부산여중 시절부터 크지 않는 키 때문에 받아주겠다는 팀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조 전 감독은 대신 날마다 줄넘기를 하면서 육상선수 출신인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탄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습니다.

 

조 전 감독이 자기 배구 실력에 확신을 갖게 된 건 1972 뮌헨 올림픽 때였습니다.

 

1972 뮌헨 올림픽 배구 경기장에서 한국을 응원 중인 팬. 동아일보DB

한국 여자 배구는 뮌헨 올림픽 때도 4강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일본에 무릎을 꿇은 뒤 3, 4위 결정전에서는 하필 북한에 0-3으로 완패하면서 메달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대표팀은 '초상집 분위기'가 됐지만 조 전 감독은 달랐습니다.

 

조 전 감독은 "남들이 다 고개를 떨굴 때 나는 '이 작은 키로도 세계 무대에서 통한다는 걸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1974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는 조혜정 전 감독. 대한배구협회 제공

조 전 감독은 이듬해(1973년) 처음 열린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컵에서 한국을 3위로 이끌면서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혔습니다.

 

한국은 1974 테헤란 아시안게임 때는 북한을 3-0으로 꺾었고 결국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차지하게 된 겁니다.

 

이 기간 조 전 감독은 1977 월드컵 때 수비상을 받을 정도로 공수 양면에 걸쳐 한국 간판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수비 중인 조혜정 전 감독. 동아일보DB

1977 월드컵은 조 전 감독이 마지막으로 출전한 국제대회이기도 했습니다.

 

조 전 감독은 이 대회에서도 끝내 일본을 넘지 못한 뒤 "후배들이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는 일본을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태극마크를 반납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대통령배를 마지막으로 만 24세에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숭의여고 졸업 후 국세청에 입단한 조 전 감독은 1973년 대농그룹에서 국세청 팀을 인수하면서 대농(미도파 전신) 소속으로 활동하던 중이었습니다.

 

조혜정 전 감독 은퇴 인터뷰를 전한 1977년 11월 21일자 동아일보

조 전 감독은 은퇴 후 현대 배구단(현 현대건설)으로 옮겨 트레이너와 코치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1979년 이탈리아 피네토 볼리에서 뛰던 박기원(73) 현 태국 남자 배구 대표팀 감독 권유를 받아 이탈리아 무대로 건너가게 됩니다.

 

조 전 감독은 앙코나에 연고를 둔 2부 리그 팀 라이언스 베이비에서 2년 동안 플레잉 코치를 맡은 뒤 1981년 유니폼을 완전히 벗었습니다.

 

조 전 감독은 비시즌 기간인 1980년 10월 25일 조창수(75) 당시 광주일고 야구부 감독과 약혼식을 올린 뒤 이듬해 5월 30일 화촉을 밝혔습니다.

 

남편 조창수 전 프로야구 삼성 감독대행, 딸 조윤지, 조윤희, 조혜정 전 감독. 동아일보DB

남편 일터인 광주에 신접살림을 차린 조 전 감독은 송원여고 코치로 다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조 전 감독 부부는 결혼 이듬해 큰딸 조윤희 그리고 이로부터 9년 뒤에 작은딸 조윤지(33)를 얻었습니다.

 

조윤지도 2010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신인상을 차지한 프로골퍼 출신입니다.

 

둘째 딸이 KLPGA 투어 신인상을 차지하던 그해 조 전 감독은 '감독'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조혜정 전 프로배구 여자부 GS칼텍스 감독. 동아일보DB

GS칼텍스는 2010년 4월 15일 조 전 감독 선임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4대 프로 스포츠(농구 배구 야구 축구) 역사상 최초로 여성 감독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조 전 감독은 GS칼텍스와 3년 계약을 맺었지만 2010~2022시즌 4승 20패로 최하위에 그치며 시즌 종료 후 지휘봉을 내려놓았습니다.

 

조 전 감독은 GS칼텍스를 맡았던 이 한 시즌을 '내 인생 최고의 데이트'라고 평했습니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당시 조혜정 전 감독(12번). 동아일보DB

대한배구협회는 "조 전 감독은 한국 배구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전설적인 선수였다"고 추모사를 냈습니다.

 

그러면서 "걸음마 단계인 한국 비치발리볼 활성화를 위한 고인의 헌신을 잊을 수 없다"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조 전 감독은 한국비치발리볼연맹 사무국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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