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20년 전 오늘 부산 사직구장. 홈팀 롯데 선발은 김시진이었고 상대팀은 OB 베어스였다.

김시진은 6회까지 2안타 무실점으로 버텼지만 7회 볼넷 3개를 연달아 내주며 1대 1 동점을 허용했다. 9회까지 양 팀 타선 모두 안타를 3개 때려내는 데 그치며 1대 1로 연장전에 돌입했다. 김시진은 4이닝을 더 던졌지만 점수를 내주지는 않았다.

14회말 장효조가 안타를 터뜨리며 승기를 잡았다. 볼넷 2개로 1사 만루가 된 상황에서 조성옥이 끝내기 안타를 터뜨리며 5시간 2분만에 경기가 끝났다.

경기가 끝난 뒤 김시진의 투구수는 219개. 김시진은 이날 투구로 아직도 깨지지 않은 프로야구 최다 투구 승리투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날은 김시진이 롯데 유니폼을 입고 처음 정식 경기에 데뷔한 날이었다. 1988 시즌까지 김시진은 삼성에서 6시즌 동안 111승을 거둔 에이스였다.

삼성은 1988 시즌이 끝난 뒤 박영길 감독을 해임하고 정동진 수석코치에 감독 자리를 맡겼다. 정 신임감독은 취임 이후 "한국시리즈 같은 큰 경기에 약한 팀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며 "큰 경기에 강한 선동열, 최동원 같은 투수가 필요하다"고 팀에 요구했다.

선동열은 '그림의 떡'이었지만 최동원은 노려볼 만했다. 해마다 연봉 계약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던 최동원이 이 시즌 출범한 '프로야구 선수회' 회장 자리를 맡으면서 완전히 구단 눈 밖에 났기 때문.

삼성은 김성래와 이종두를 첫 카드로 제시했지만 롯데가 거부했다. 김시진+김성래+오대석↔최동원+오명록 이야기도 나왔다.

최종적으로 삼성은 김시진, 전용권, 오대석, 허규옥을 내주는 대신 최동원, 오명록, 신성현을 받기로 했다.

두 구단이 트레이드에 합의하자 김시진과 최동원, 둘 모두 반발했다.

특히 최동원은 "롯데를 떠날지언정 부산은 떠날 수 없다"고 버텼다. 최동원이 삼성과 계약에 합의한 것은 반년도 더 지난 1989년 6월 23일이었다.

어우홍 감독이 만 32세 투수에게 219구나 강요했던 이유가 바로 이 트레이드였다.

경기에 나설 때면 늘 '자신을 불사르던' 에이스를 잃은 감독은 이제 김시진이 우리 팀 에이스라는 믿음을 줄 필요가 있었다. 그건 김시진 역시 그랬다.

하지만 결국 이 14이닝 완투가 무리였을까? 전년도에 11승을 거둔 김시진은 1989 시즌 4승 9패에 그쳤다. 롯데에서 4시즌 동안 기록한 승수도 13승이 전부였다.

삼성 최동원은 더 심했다. 2시즌 동안 7승에 그친 채 그는 미련없이 삼성 유니폼을 벗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된 둘의 라이벌리는 메가톤급 트레이드와 함께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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