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그립고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서정주 '국화 옆에서'>

ⓒ 연합뉴스

김시진 전 유니콘스 감독이 10일 히어로즈의 두 번째 감독으로 취임했다.

이날 이정석 대표는 "김 감독과 인연이 없었을 뿐"이라고 짤막하게 지난 일을 정리했다.

히어로즈는 유니콘스를 지워야했고 그래서 김 감독이 제일 먼저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유니콘스는 누가 뭐래도 '투수왕국'이었고 그 중심은 바로 '김시진 투수코치'였다.

감독으로서는 조금 달랐다.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이 야구판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양반 기질'이 문제였다.

스포츠맨십 차원에서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에티켓이지만 승리를 내주는 것은 매너가 아니다.

외부 여건이 너무도 열악했던 건 사실이지만, 2위 팀을 인수인계 받아 7위로 만든 감독의 책임 역시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

2번 타자 김일경, 단일 시즌 역대 최다 희생번트 2위 기록 등 '김재박 야구'와 별 다를 바 없는 소극적인 공격은 결국 김 감독의 장기인 투수 운영에서도 무리수를 두게 만들었다.

또 황재균을 제외하면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는 데도 실패했다. 황재균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 케이스에 가까웠다.

이광한 전 감독은 히어로즈 팬들로부터 "이길 줄 아는 선수들에게 지는 법을 가르친다"는 평을 들었다.

무엇보다 투수진 운영에서 팀 구성원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모양새였다.

송신영은 과다(過多) 평가를 받았고, 김수경은 과소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강병철 2군 감독과 함께 젊은 야수들을 성장시킨 공로는 분명 인정받아 마땅하다.

사실 유니콘스 코칭스태프는 야수 유망주를 키우는 능력이 가장 떨어졌다.

어떤 의미에서 이 전 감독은 김 감독이 가장 가려워하는 부분을 긁어주고 떠난 것이다.

내년에도 히어로즈를 둘러 싼 외부 환경이 그리 호락할 리는 없다.

하지만 노쇠화 대신 노련미를 보이는 선수들과 그들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유망주로 꾸려진 선수단은 분명 매력적이다.

김 감독은 취임식을 통해 "구단이 투자를 하는 것도 선수들이 하기 나름이다. 선수들이 어떤 비전을 보이고 팬이 열광할 때 많은 투자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선수들이 지저분하고 더러운 흙을 유니폼에 묻힐 수 있는 허슬 플레이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표현은 고스란히 김 감독에게도 적용된다.

"구단이 투자를 하는 것도 감독하기 나름이다. 감독이 어떤 비전을 보이고 팬이 열광할 때 많은 투자를 할 것이다."

"감독이 더러 ‘독종'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근성 있는 팀 운영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왜 히어로즈 팬들이 그토록 김 감독을 그리워했는지 이제 스스로 '히어로'가 되어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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