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단기전에서는 유독 수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는 한다. 국내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투수와 타자 모두 바짝 긴장한 상태로 대결을 치른다. 수비수 역시 몸이 굳기는 마찬가지다. 공격, 투구, 수비 가운데 가장 수동적인 것을 고르라면 역시 수비다. 따라서 자신의 의지와 다른 양상의 플레이가 속출하기 쉽다. 그래서 경험을 얘기하고, 수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05 한국시리즈 3차전 역시 수비에서 갈렸다. 하필 손시헌이었다.
8회초 삼성 공격, 이혜천 선수 선두 타자 김종훈 선수를 삼진으로 깔끔하게 돌려 세웠지만, 박한이 선수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이재우 선수로 교체됐다. 이재우 선수 역시 심정수 선수를 3구 삼진으로 돌려 세우며 위기를 넘어 가는 듯 했다. 김한수 선수가 때린 타구 역시 평범한 유격수 땅볼. 하지만 2루로 송구를 하던 손시헌 선수의 손에서 공이 빗나갔다. 그대로 1루쪽을 향해 날아간 공, 1루수 장원진 선수가 잡았더라면 김한수 선수가 아웃이 될 수도 있는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성질의 송구가 아니었다.
큰 경기 경험이 없는 이재우 선수로서는 충분히 흔들릴 만한 상황이었다. 결국 4구째, 양준혁 선수 우익수쪽 펜스를 넘기는 홈런을 날렸다. 비록 1:0으로 앞서고는 있었지만, 불안한 리드가 계속되던 삼성 쪽으로 승부의 추를 거의 완전히 가져오는 홈런이었다. 결국 이재우 선수, 마운드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운드에 오른 금민철 선수 역시 경험이 없기는 매한가지. 박진만 선수에게 안타, 그리고 이번엔 좌익수 뒤를 넘어가는 홈런이었다. 진갑용이었다. 이제 점수는 6:0, 따라가기 버거운 점수일 수밖에 없었다.
WP라는 관점에서 손시헌 선수의 에러는 -.021밖에 되지 않는다. 즉, 전체 승패에 있어, 2.1%p 정도의 손해다. 하지만 이 실책 하나로 인해 흐름은 완전히 삼성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WP는 과거의 통계에 의한 누적 데이터다.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된 수치기 때문에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 심리상태 등이 모두 제거된 상태, 하지만 현재엔 언제나 선수들의 심리, 그리고 그라운드의 분위기가 반영된다. 이후 삼성에게 얻어 맞은 2방의 홈런으로, WP는 -.265 감소했다. 승부 전체의 26.5%, 단 하나의 실책이 이 정도의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두산이 선취점을 내준 과정 또한 석연치 않았다. 내주지 않아도 좋을 점수였다. 양준혁 선수를 삼진으로 돌려 세우면서 선두 타자의 진루를 불허했다. 하지만 박진만 선수에게 볼넷을 내줬다. 진갑용 선수의 진루타로 박진만 선수 2루 안착. 그리고 다시 김재결 선수에게 볼넷. 3루에 공을 던져 보지도 못하고 박진만 선수에게 도루를 허용, 2사 주자 1, 3루. 여기서 박영환 선수 폭투를 던지며 선취점을 허용했다. 볼넷에 폭투,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투수의 잘못이다. 결국 박명환 선수, 피안타를 하나도 내주지 않은 경기 내용을 보이고도 패전으로 기록되게 됐다.
사실 박명환 선수의 이번 시즌 피안타율은 .202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출루율은 .362, 한 팀의 에이스라고 불리기엔 확실히 부족한 수치다. 역시나 많은 볼넷이 문제였다. 9이닝당 삼진수를 나타내는 K/9는 9.05, 1이닝당 삼진을 하나씩 잡아내는 셈이다. 하지만 9이닝 당 볼넷수를 나타내는 BB/9 역시 4.65로 결코 좋은 수치가 아니다. 덕분에 투수의 컨트롤을 측정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인 삼진 대 볼넷 비율, 즉 K/BB에 있어 1.95로 준수한 성적인 2에 조금 모자란다. 참고로 전반기에 박명환과 함께 빅3로 불렸던 손민한의 K/BB는 2.76, 배영수는 3.05다.
오늘 경기는 바로 이런 박명환 선수의 제구력 불안이 그대로 드러난 경기였다고 하겠다. 5이닝 동안 24타자나 상대했고, 투구수도 101개나 됐다. 이닝당 평균 투구수 20.2개.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은 62.5%로 비난 받을 수준은 아니엇지만, 스트라이크 대 볼 비율은 1.10밖에 되지 않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투구 내용을 보이려면 이 수치가 2 정도는 되어야 한다. 결국 박명환 선수는 볼과 스트라이크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던졌다는 뜻이다. 이는 그만큼 제구력에 문제를 드러냈다는 것, 삼진을 5개나 잡아냈지만, 볼넷 역시 5개나 내줬다. 결국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는 피칭 내용이었다.
하지만 WPA에 있어서 박명환은 .113의 수치를 보이며 두산 선수 가운데 1위다. 비록 볼넷 남발 등으로 위기를 자초하기는 했지만 실점은 결국 1점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 인정받은 것이다. 반면, 타자들은 찬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경기를 중계한 SBS 박노준 해설위원은 계속해서 진루타, 진루타를 강조했지만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지 못하는 진루타는 큰 의미가 없다. 공격의 가장 큰 목적은 선행 주자의 단순 진루가 아닌,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행위의 타격이기 때문이다. 선두 타자, 혹은 1사 후 주자를 득점권에 가져다 놓고도 번번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은 충분히 두산 타선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삼성에선 6회와 7회에 걸쳐 1 2/3 이닝을 볼넷 1, 삼진 3개로 틀어막은 권오준이 WPA .291을 기록 1위에 올랐다. 팀 승리의 29.1%를 책임진 셈이다. 대체로 별명 그대로 '마구돌이'의 모습이었다. 싱커성 체인지업, 바깥쪽으로 꿈틀대는 직구, 거꾸로 몸쪽으로 파고드는 투심까지 모든 공이 위력적이었다. 게다가 두산 타자들 역시 승부를 서둔 감이 있었다. 삼성은 권오준 이후 전병호, 안지만, 박석진 등을 마운드에 올렸지만 모두 큰 의미는 없는 등판이었다. 이미 승부가 그만큼 기운 상황이었다. 대신 오늘 경기의 선발 투수였던 바르가스 선수가 .243을 기록 WPA 부분 2위에 올랐다. 5이닝 무실점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경기 내용이 아니다. 3위는 쐐기 홈런의 주인공 양준혁 선수, .131의 WPA를 기록했다. 비록 앞선 타석에서의 영향으로 전체적으로 WPA가 감소하기는 했지만, 양준혁 선수가 때린 그 홈런으로 삼성의 WP는 .215 증가했다. 이는 이번 경기 단일 플레이 가운데 최고 기록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두산에서 홍성흔 포수를 그대로 내세웠던 게 패착이 됐다고 본다. 결국 6실점이나 허용한 투수 리드에 있어서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박명환 선수는 8월 16일 이후 두 달 만에 마운드에 오른 투수였다. 따라서 파이팅보다 경기 감각을 조율할 수 있는 안정적인 리드가 필요했다. 많이 양보해서 박명환 선수와의 호흡은 결국 1실점, 그것도 폭투로 인한 실점이었다고 치자.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불펜진, 특히 수비진의 실책으로 흔들리고 있을 때 좀더 안정적인 리드가 아쉬웠다. 반면, 진갑용 선수는 무실점 리드는 물론이거니와 타석에서도 쐐기에 쐐기를 박는 투런 홈런을 터뜨리며 한껏 사기가 올랐다. 상대 포수의 기분을 좋게 하지 말라던 말, 두산으로서는 완전히 실패한 셈이다. 9회에 강인권으로 포수를 교체한 것 역시 너무 뒤늦은 타이밍이었다.
한마디로 다시 한번 삼성의 무시무시한 힘을 느낄 수 있는 경기였다. 양준혁 선수의 홈런은 경기를 승리로 이끈 공로도 크지만, 오승환 선수를 아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을 볼 때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김동주 선수의 타구도 아주 잘 맞은 타구였다. 대구였더라면 충분히 넘어갔을 만큼 잘 뻗어나갔다. 하지만 양준혁 선수의 홈런은 대구였더라도 넘어갔을 타구다. 진갑용 선수의 타구도 마찬가지다. 그게 두산과 삼성의 현대 모습이다.
하지만 두산은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당시 압도적인 승률로 1위를 차지한 현대와 대결했다. 3차전까지 졸전을 펼치다 시피 패했으면서도 연달아 3연승을 기록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 갔던 전례가 있다. 그들은 시즌 최종일까지도 희망을 잃지 않고 뚝심을 발휘 플레이오프 직행을 이뤄냈던 끈기 있는 팀이다. 한국 시리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끝가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끝난 게 아니다. 최종전이 될지, 아니면 두산이 다시 살아나는 경기가 될지, 내일 4차전을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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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만 선수 비록 WPA에서 수비로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그의 유격수 수비는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