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타점 ; 기술인가? 기회인가?


"올해 목표는 타율 3할에 20홈런 80타점입니다."


시즌이 개막되면 곧잘 들을 수 있는 인터뷰 내용이다. 그리고 위에 열거된 타격 기록, 즉 타율 ․ 홈런 ․ 타점에서 모두 리그 1위를 차지한 선수를 가리켜 우리는 흔히 트리플 크라운 달성에 성공했다고 표현하고는 한다. 실제로 이 세 기록이 타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척도로 사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접근이다. 타점은 타율이나 홈런과는 다르다. 말하자면 타율과 홈런은 기술적인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타점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니까 타점은 자기 혼자 노력한다고 해서 갑자기 양이 크게 늘어나는 기록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기 혼자서 타점을 올릴 수 있는 건 솔로 홈런뿐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루상에, 특히 득점권에 주자가 나가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타점은 자신의 행한 타격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기회 역시 중요하다는 뜻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타격 실력을 뽐내는 타자라 하더라도 팀원들의 도움 없이 많은 타점을 올리기는 어렵다.



논의를 위해, '05 시즌 300 타석 이상을 기록한 타자를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의 타석을 각각 주자의 유무, 득점권 주자 유무 등으로 구분한 후, 누적 수치와 비율 수치로 나누어 각각 조사를 실시했다. 먼저 주자가 이미 루상에 나가 있는 상태에서 타석에 들어선 횟수를 나타낸 결과물부터 확인해 보자.


타자

타석

주자無

주자有

주자有%

타점

김태균

529

250

279

0.527

100

심정수

528

256

272

0.515

87

서튼

521

257

264

0.507

102

송지만

510

253

257

0.504

74

김재현

499

245

254

0.509

77


타점 순위와 일치하지는 않지만, 타점 상위 세 선수가 마찬가지 자리에 포진해 있다.  김재현, 송지만 역시 각각 타점 부분에서 6위, 8위 등 상위 랭커들이다. 기회가 많으면 그만큼 타점을 올리기가 수월하다는 명제에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타석에 많이 들어서면 많이 들어설수록 주자가 나가 있는 누적 수치 역시 많아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럼 비율로는 어떨까?  다음은 전체 타석과 대비해서 주자가 루상에 있던 비율을 알아보고, 그 비율 순으로 정렬한 결과물이다.


타자

타석

주자無

주자有

주자有%

타점

홍성흔

433

189

244

0.564

74

김동주

338

152

186

0.550

50

김태균

529

250

279

0.527

100

진갑용

406

196

210

0.517

41

김태균

390

189

201

0.515

55


상위 두 자리를 두산 선수들이 차지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밖에 표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손시헌(51.46%), 문희성(50.9%) 등 역시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그만큼 두산 타자들이  주자를 둔 상태에서 타석에 많이 들어섰다는 뜻이다. 두산은 팀 출루율 .351을 기록하며 리그 3위를 차지했다. 높은 순위인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로 많은 주자들이 꾸준히 루상에 출루해 있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게다가 타순 역시 고르게 포진 돼 있다. 따라서 어느 특정 선수의 높은 출루율에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장타율이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장타율이 '낮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특히 타율과 장타율을 비교해 보면 손쉽게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두산은 주자가 있는 경우에 .283의 팀 타율을 기록했다. 이는 리그 1위 기록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장타율은 .381에 그쳤다. 이는 롯데(.375)에 이은 7위 기록, 덕분에 IsoP를 알아보면 .098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꼴찌를 차지했다. 말하자면 두산은 소총부대였다. 끊임없던 1,3루 찬스를 두산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그 결과 주자가 꾸준히 루상에 나가 있었지만, 많은 점수를 올리지는 못했다. 싹쓸이는 대개 장타의 소산이다. 다시 말해, 타점은 기회와 장타력의 산물이다.


계속해서 알아보자. 이번엔 득점권이다.  1루에 있는 주자보다는 2루에 있는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기가 수월하다. 때문에 감독들은 희생번트를 대고, TV 해설자들은 진루타를 칭송한다. 다음은 득점권에 주자가 위치한 상황에서 맞이한 타석수를 정리한 결과물이다.


타자

타석

득점권

득점권%

타점

이대호

512

185

0.361

80

김태균

529

180

0.340

100

심정수

528

170

0.322

87

라이온

534

167

0.313

73

홍성흔

433

163

0.376

74


다시 한번 예상대로다. 타점 상위 랭커들이 역시나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표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타점 1위인 서튼 역시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161번 타석에 들어서며 공동 7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들보다 타점이 적으면서도 상위에 랭크된 라이온과 홍성흔 선수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를 한번 비율로 알아보자.


타자

타석

득점권

득점권%

타점

김동주

338

132

0.391

50

홍성흔

433

163

0.376

74

이대호

512

185

0.361

80

김한수

465

161

0.346

73

김태균

529

180

0.340

100


홍성흔은 사실 다른 타자들과 비교할 때 100 타석 가까이 차이가 난다. 따라서 누적된 기회가 적게 느껴졌을 뿐, 사실 타석을 대비해 보면 굉장히 많은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김동주 선수 역시 비율로 보면 득점권에 주자가 있는 상태에서 타석에 많이 들어섰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선수가 주로 두산에서 4, 5번을 쳤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앞선 타자들이 이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했고, 또 이 두 선수는 이런 기회를 잘 살렸다고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부상만 아니라면 김동주 역시 충분히 많은 타점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있다는 뜻이다.


화제를 돌려, 위에서 알아보기로 했던 라이온 얘기를 해보자. 라이온은 득점권 전체에서 맞이한 기회가 상당히 많았다. 기회로만 보자면 타점 1위 서튼이나, 4위 데이비스보다도 많은 수치였다. 하지만 73개의 타점은 공동 12위 수준일 뿐이다. 이는 무엇 때문일까? 흔히들 말하는 대로, 득점권 타율이 낮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라이온은 득점권에서 .326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는 시즌 평균 .268보다 58 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장타율 역시 시즌 전체 .429보다 92포인트 높은 .521을 기록했다. 총루타수 역시 75루타에 달한다. 타율과 장타율은 모두 5위, 루타는 전체 2위에 해당하는 뛰어난 성적이다. 기회와 장타력이 타점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라 했을 때 라이온은 이보다 높은 타점을 올려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한번 이런 결과를 표로 정리해 보자. 다음은 득점권 상황에서 올린 총루타수를 기준으로 정렬한 결과물이다.


타자

타석

타점

득점권

타수

루타

장타율

김태균

529

100

147

77

0.524

라이온

534

73

144

75

0.521

박용택

523

71

119

70

0.588

서튼

521

102

114

69

0.605

심정수

528

87

133

66

0.496


박용택의 이름 또한 주목할 만하다. 사실 그는 득점권에서 .353의 타율을 기록하며 리그에서 가장 높은 정확도를 선보였다. 장타율 역시 시즌 평균(.432)을 156 포인트 상회하는 .588을 기록하며 서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 역시 71타점에 그치며 생각만큼 많은 타점을 올리지는 못했다. 원인은 간단하다. 두 선수 모두 루상에 나가 있는 총주자수가 부족했다. 라이온 선수 앞에 있던 주자는 모두 339명으로 리그 15위권이며, 박용택 역시 325명으로 18위에 그쳤다. 그러니까 기회는 잦았지만, 양적인 측면에서는 그리 많은 지원을 받지 못한 셈이다.


한화 팬이라면, 또는 관찰력이 뛰어난 독자라면 이 즈음에서 살짝 궁금증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86타점으로 타점 랭킹 4위에 오른 데이비스 선수의 이름이 아직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밝히고 싶은 건 데이비스가 타석에 들어설 때 루상에 있었던 주자는 모두 344명으로 라이온보다 한 단계 높은 14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득점권에서 48루타밖에 때려내지 못했다. 득점권에서 타율 .284, 장타율 .414를 기록하며 시즌 전체 평균인 타율 .323, 장타율 .545에 비해 떨어지는 기록을 올린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타점은 이렇게 많았을까?


이유는 이렇다. 그는 주자가 1루에 있을 때 유독 강했다. 주자가 1루에 있던 91타석에서 86타수 34안타를 기록했다. 타율은 .395에 달했고, 59루타를 기록하며 장타율 역시 .686으로 무시무시했다. 즉, 남들이 타점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괴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만루 상황에서는 더더욱 강했다. 총 20타석에서 15타수 7안타(2루타 4)를 때려내며 타율 .467, 장타율 .733을 기록했다. 희생플라이는 세 개였고, 밀어내기 타점 역시 두 번이나 있었다. 많은 타점을 한번에 올릴 수 있는 기회는 어떻게든 물고 늘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없는 기회는 만들고, 있는 기회는 놓치지 않았으니 타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데이비스의 경우는 어찌 보면 예외적인 사례다. 하지만 데이비스 역시 만루라는 가장 많은 타점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기에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타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소위 말하는 클러치 타자가 실제로 있는지 어쩐지는 의견이 분분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클러치 상황이라는 것 역시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구는 9명이 하는 운동이다. 더욱이 득점을 창출하는 과정은 라인업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과정이다.


'05 시즌 타자들이 기록한 타점은 모두 4346 타점이다. 이 가운데 타자 혼자만의 역량으로, 그러니까 솔로 홈런으로 올린 타점은 876 타점밖에 되지 않는다. 이 수치의 거의 네 배에 달하는 3470 타점이 바로 다른 팀원들의 도움으로 얻어진 기록이다. 많은 타점을 기록한 타자일수록 팀 동료들을 고마워해야 하는 까닭이다.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기회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 그래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것, 어쩌면 그래서 야구는 더더욱 인생을 닮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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