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KBO

김태균에 화가 난 이유


저녁에 잠깐 외출할 일이 있었는데, 스포츠 뉴스를 보고 나가려고 기다렸습니다. 홍명보 씨가 (정말 어색한 호칭이로군요 ^^;) 축구 국가 대표팀에 코치로 합류한다는 소식도 있었고, 허재 씨(정말 어색한 호칭이로군요 ^^;(2)) 감독 부임 첫해 구상을 다룬 꼭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로야구 주간 명장명 같은 꼭지도 있었습니다.

그걸 보다가 뜨악했던 장면이 하나 나왔습니다. 김태균 선수가 친 타구가 마운드 위에 아주 높게 떴습니다. 하지만 수비수들이 타구 방향을 잃고 그대로 그라운드에 떨어지는 야구공. 저는 운좋게 안타 하나 건졌다고 나오는 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1루에서 그대로 죽어버리는 괴수두목.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내릴 때까지,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던 약속 장소에 가는 내내, 입에서 욕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러고도 프로냐, 그러고도 프로야? 하는 소리만 계속 내뱉었습니다. 제겐 정말 부아가 치밀 만한 광경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야구는 분명 ‘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꽤 많은 돈이 오고가는 놀이고, 덕분에 그 놀이를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고, 안타까워하고 화를 내는, 그 사람들 팬입니다. 어떤 분들은 야구가 좋아서 야구 선수 팬이 됐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분들은 야구 선수가 좋아서 야구팬이 되셨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팀에 있을 땐 정말 싫었던 선수가 우리 팀으로 와서 정말 소중한 보물로 자리매김한 경우도 있고, 우리 팀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다른 팀으로 가서 부진한 모습에 안타까워하고 속상해 할 수도 있고, 물론 또 고소해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거기서 잘하는 모습에 화가 날 수도 있고, 아니면 계속되는 격려와 응원 메시지를 마음속에 간직할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여러분은 야구장에 왜 가십니까? 야구를 왜 보십니까?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고 싶어서 봅니다. 재미있고 싶어서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동을 받고 싶어서 봅니다. 시원하게 밤하늘을 가르는 타구를 보며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고, 투수 손을 떠난 투구가 눈 깜짝할 새에 포수 미트에 꽂히는 소리에 희열을 느낍니다. 우리 팀 감독이 구사한 작전을 멋들어지게 선수들이 소화해 찬스를 만들고, 그 찬스를 살리고, 또 경기를 뒤집을 때 정말 그건 이 세상 무엇보다도 제게 재미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로 쉽사리 감동을 받지는 않습니다.

양준혁 선수가 해태에서 뛰던 시절,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합석하게 된 아저씨 한 분이 계셨습니다. 우연찮게 야구 얘기가 나왔고, 아저씨가 제게 물으셨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타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양준혁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기록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를 떠나보내 마음 아팠을 많은 삼성 팬들 마음을 헤아릴 권리도 제게는 없었습니다. 제가 그 선수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제가 야구장에서 두 눈으로 본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평범한 땅볼 타구를 치고도 정말 헬멧이 벗겨질 정도로 1루를 향해 전력 질주 하는 모습. 그리고 지명타자라 수비에 출전하지 않을 때, 늘 덕아웃 바깥에서 경기 중에도 쉬지 않고 스윙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던 그 모습.

최근 AL MVP와 관련해 현지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논란이 뜨겁습니다. 슈렉이 DH라서 불리한 건,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치, 에이로드 선수가 열심히 수비를 하고 있을 때, 슈렉 선수는 덕아웃에서 농담 따먹기나 하고 앉아 있는 것처럼 표현하시는 분들의 글을 볼 때는 속이 상합니다. 그때마다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우리 팀이 수비하고 있을 때, 정말 쉬지 않고 배트를 휘두르던 양신이었습니다.

아니, 저렇게 열심히 휘두르면 타석에서 힘 빠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타격 연습에 열심이었습니다. 아마도 전 타석에서 깊숙한 유격수 땅볼로 물러난 게 정말 아쉬웠나 봅니다. 2사 후였지만 득점권에 주자가 있었는데 그대로 물러난 게 너무도 아쉬웠나 봅니다. 정말 안쓰러울 정도로 방망이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습니다. 역시나 헬멧이 벗겨질 정도로 그렇게 열심히 뛰어간 그 모습과 배팅 연습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양준혁 선수를 너무도 멋지게 느꼈습니다. 아, 정말 최고라 불리는 사람들은 다르구나. 저래서 저 사람이 최고가 된 거구나. 그리고 제 기억이 맞다면, 다음 타석에서 양준혁 선수 승부에 쐐기를 박는 적시타를 때려냈습니다.

슈렉 선수가 정말 팀이 수비할 때 놀까요? 비디오 분석실에 들어가 상대 투수 분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1루수로 출전했을 때 인터뷰를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명타자로 나와서 5타수 무안타에 그치면 정말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1루수로 나왔다면 그래도 뭔가 팀에 도움이 됐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자기가 수비에서 팀에 공헌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아는 겁니다. 그래서 타격에서 더 도움이 되고자, 자기가 특화된 부분에서 팀에 공헌을 극대화하고자, 쉬지 않고 연구하고 분석하는 겁니다. 절대로 덕아웃 한 구석에 앉아서 떠버리 아저씨랑 수다만 떨고 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이럴 때 감동 받습니다.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플레이 하나 하나까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때 감동 받습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자기가 팀에 공헌할 방식을 찾고 있을 때 감동 받습니다. 그 타구에 절대 죽어서는 안 됐습니다. 아웃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아웃된 게 아닙니다. 경기가 끝나지 전까지는 끝나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 순간까지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선수들에게 기대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서, 우리는 경기장을 찾고 선수들을 응원하는 게 아닐까요?

저는 양키 캡틴 데릭 지터 선수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건 순전히 그 선수가 양키 캡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구 선수 데릭 지터는 정말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즌 보스턴전, 8-1로 보스턴이 이기고 있던 9회였을 겁니다. 데릭 지터 선수 정말 평범한 투수앞 땅볼을 쳤습니다. 투수는 부머 영감이었습니다. 부머 영감이 공을 잡아 여유 있게 1루로 송구. 하지만 지터 선수 발이 공보다 빨랐습니다. 스피커도 없는 컴퓨터로 경기를 보고 있었으면서도, 마치 만화 속처럼, 1루를 향해 뛰어가는 그 발소리가 제 고막을 마구 뒤흔들어 놓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아, 그래서 당신이 제국의 주장이구나. 정말 당신은 너무도 멋진 적의 선봉장이구나. 그만한 자격이 있구나.

김태균 선수 정말 좋은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를 장종훈 선수에 견준다면, 그리고 계속 지금 같은 모습이라면 저는 고개를 설레 흔들어 버리고 말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강타자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 비록 제가 한화 팬은 아니지만, 야구팬으로서 가슴에 품고 가는 희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진정한 괴수 두목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당당한 ‘두목’이 되기 위해서는, 그 타구엔 살아 나가야 합니다.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태균 선수, 실력뿐만 아니라, 야구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까지, 진정 한국을 대표하는 강타자로 거듭나길 바라봅니다. 양준혁 선수처럼, 박정태 선수처럼 말입니다. 정말 당신에게 진한 감동을 받아 보고 싶습니다. 그럼 당신으로 인해 우리팀이 패하더라도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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