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석에 들어선 타자의 운명은 크게 두 가지다. 살아서 1루를 밟거나 아니면 죽거나.
그래서 1루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홈런을 쳐도 1루부터 밟아야 하고, 2사에 3루 주자를 홈으로 들여 보내기 위해서도 1루에 공보다 먼저 도달해야 한다. 1루는 타자에게 '살았다'는 희망의 증거다.
1루에 살아나가는 방법은 몇 가지나 될까?
먼저 가장 일반적인 안타와 볼넷, 볼넷 가운데 고의사구를 따로 세면 3가지 방법이 나온다. 몸에 맞는 볼 역시 익숙한 장면. 여기까지는 타자가 '출루율'을 끌어올리며 1루를 밟는 방법이다. 하지만 1루를 밟았는데 출루율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먼저 상대 야수들이 도와주는 경우:
대표적인 게 실책이다. 포수 타격 방해도 공식 기록은 실책이지만, 확실히 다른 실책과는 성질이 다르다.
포수가 돕는 방법은 한 가지 더 있다.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 이 또한 공식 기록은 삼진이지만, 타자 주자는 살아서 1루를 밟는다. 삼진을 당하고도 1루에 살아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
야수가 선행 주자를 죽이려고 한 경우에도 살아서 1루에 나갈 수 있다. 선행 주자가 포스 아웃 되는 사이 재빨리 1루를 밟아도 사는 건 사는 것이고, 선행 주자가 협살에 걸렸다면 2루까지 진출하는 행운도 따를 수 있다. 상대 야수 판단 미스로 '야수 선택'이 나올 때도 당연히 1루를 밟을 수 있다.
도움을 주는 건 상대 야수만이 아니다. 심판이 페어 지역으로 날아온 타구에 맞아도 타자 주자는 1루 출루권을 얻는다. 선행 주자가 타구에 몸을 날리는 살신성인(?) 역시 타자 주자를 1루에서 살려준다. 거꾸로 희생에 실패한 번트 타구도 1루에 살아 나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야수가 주자의 진행을 방해한 경우 역시 타자 주자는 안전하게 1루에 살아 나간다.
여기까지 등장한 14가지 방법은 그래도 '그라운드' 안에서 벌어진 플레이로 1루에서 사는 법이다. 아무런 플레이 없이도 1루를 밟을 수 있다는 뜻.
투수가 20초 이상 투구를 지체한 경우에는 자동으로 볼이 선언된다. 3볼 상황이라면 역시 타자 주자는 1루 진루권을 얻는다. 보크도 마찬가지. 야수가 타석에 와서 타격을 방해한 경우, 관중 혹은 경기를 지켜보던 관계자들이 타격을 방해했을 때도 타자는 1루로 살아 나간다.
그런데 꼭 타자 주자로 1루에 나갈 필요는 없다. 대주자로 1루에 나가는 것도 1루를 밟는 방법이다. 주자가 심판에 어필하다 퇴장 당할 때도 덕아웃에서 1루로 직행할 수 있다.
지금까지 등장한 방법은 모두 21가지. 하지만 제목에서 1루에 살아나가는 방식은 23가지라고 했다. 마지막 두 가지는 무엇일까?
먼저 서스펜디드 게임을 들 수 있다. 어떤 이유로 경기가 중단됐는데 당시 1루에 있던 주자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됐다면 새로 재개된 경기에서는 트레이드 된 대신해 새로운 선수가 1루에 나갈 수 있다.
현재 규칙을 따르자면 이 22가지가 한계다. 그러나 야구 역사에는 이 스물 두 가지가 아닌 방법으로 1루에 도달한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2루 주자가 도루(?)를 통해 1루로 돌아간 적이 있던 것. 19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데이비 존스에 따르면 1908년경 저머니 쉐퍼라는 선수가 1루로 도루를 시도해 성공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현재 야구 규칙에는 2루 주자의 1루 도루를 금지하는 규정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런 내용이 규칙에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1루 도루'가 가능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라.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었겠는가.
사람들은 출루율이라는 낱말을 들으면 흔히 '볼넷'을 떠올린다. 하지만 '출루'를 하는 방법은 이렇게 다양하다. 또 1루를 밟는데 성공했다고 해서 언제나 출루율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출루율이 떨어지는 가짓수가 더 많다.
살면서 이 가운데 몇 가지나 실제로 지켜본 경험이 있는가? 이 23가지를 다 보기 전까지는 야구에 대해 '좀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건 아닐까?
+
KBO의 투구 제한 시간은 15초다.
참조: http://espn.go.com/magazine/vol4no10answerguy.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