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이숭용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고교 시절 자기보다 못한 프로 선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어쩌면 틀린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전문 수비수 이미지가 굳어진 김재걸도 아마 시절엔 대단한 강타자. 프로 구단에 지명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릴 때부터 공수 모두 안정된 면모를 과시했다는 뜻일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프로 선수 가운데서도 고교 시절 '천재' 소리를 들었던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고교 시절의 '천재' 소리가 프로에서 '슈퍼 스타' 지위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박노준의 프로 성적은 고교 시절의 임팩트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김건덕, 박재성을 여전히 기억하는 야구팬이 얼마나 될까? 요즘 강혁은 정말 그 강혁이 맞는 것일까?
맞다. 프로 세계는 잔혹하리만큼 혹독하다. 과거의 화려한 명성도, 심지어 '천재'라는 찬사도 지금, 당장,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주지 못하면 모두 옛 추억이 되고 마는 곳이 프로 무대다. 팬들은 이름값이 기대를 버리지 못하지만 그것도 잠시, 격려와 응원은 애증으로 변하고, 다시 그것이 무관심으로 변한다. 해마다 신인 선수가 새로 들어오고, 자리 잡지 못한 그 시절의 천재들은 그렇게 하릴 없이 나이만 먹는다.
경남고 재학 시절 '천재 소년' 소리를 듣던 한 선수가 있었다. 우수 투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투수이기도 했고, 팀을 전국 대회 결승으로 이끈 방망이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승운이 따르지 않았다. '92년 대통령배 준우승을 시작으로 '93년에도 봉황기, 화랑기, 청룡기 모두 경남고는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혹독한 '준우승 징크스'였다.
하지만 고려대 진학 후 더 이상 '준우승 징크스' 같은 건 그를 따라다니지 않았다. 그 시절 대학 야구는 '고려대 천하'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조성민, 손민한이 던지는 공을 진갑용이 받는다. 그리고 여전히 국가대표급 4번 타자인 김동주가 이끄는 타선. 이런 팀이라면 쉽게 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분명 그 시절의 천재 소년 역시 지금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 천재 소년의 이름은 손인호였다.
대학 졸업 후 손인호는 계약금 1억 8천만 원, 연봉 2천만 원에 고향팀 롯데와 계약한다. 1억원이 넘는 계약금을 받은 2차 지명자는 손인호가 처음, 연봉 2천만 원 역시 당시 신인 연봉 상한선이었다. 그만큼 손인호에게 차세대 거포로서 거는 기대가 컸다는 뜻이다. 하지만 프로 10년차를 맞이한 현재, 손인호는 그저 한때의 '유망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뿐이다. 또 다른 '천재 소년'의 불운이 손인호에게도 드리운 것이다.
이번 시즌 성적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다. 타율 1할 3푼(23타수 3안타)에 홈런은 0, 타점은 겨우 2개를 올리는 데 그쳤다. 그리고 결국, 강병철 감독은 트레이드 명단에 손인호의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그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군 생활을 제외하고 7시즌 반을 보낸 롯데를 떠나 LG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롯데 팬들 역시 큰 아쉬움 없이 덤덤히 그의 트레이드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사실 LG의 외야진은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주축이다. 그래서 손인호에게 그리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손인호가 프로 무대에서 최고의 성적을 냈던 '04 시즌 롯데는 양상문 감독 체제였다. 현재 LG의 투수 코치 그 양상문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트레이드는 손인호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확실히 이번 트레이드가 손인호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팬들은 손인호의 타석을 가리켜 '니노 타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물론 부정적인 뉘앙스가 더 많이 들어가 있는 표현이다. 과연 LG에서 손인호의 '니노 타임'은 팬들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게으른 천재가 노력을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향수에 젖는 대신, 미래를 향해 뛰어들 '천재의 열정'이 그에게 남아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