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야구팬처럼 논쟁을 좋아하는 부류도 드물 것이다. 특히 야구가 열리지 않는 겨울이면 어느 인터넷 게시판이건 뜨거운 논쟁으로 분위기가 가열되기 일쑤다. 하지만 대부분의 논쟁은 소모전 양상으로 전개되는 지루한 공방인 게 사실이다. 논객은 사라지고 '떡밥'만이 난무한 형국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참신한 이론을 도입해 대안을 제시하려는 창조적인 논쟁 역시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더러 그 이론은 세이버메트릭스를 지향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한 게시판을 시끄럽게 한 소위 '도루를 포함한 OPS' 역시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새 야구팬을 양분한 대세가 전통적 타율파와 OPS 지지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OPS는 간략하면서도 비교적 정확한 메트릭 가운데 하나다. 단지 출루율과 장타율을 더했을 뿐이지만 여기엔 야구에서 득점이 창출되는 기본 원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원리란 다름 아닌 야구의 득점은 출루와 진루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야구에서 득점이 이뤄지는 모든 과정의 핵심이 바로 이 둘이다.

출루는 달리 말해 아웃 카운트를 소모하지 않는 일이다. 야구의 한 이닝은 3아웃으로 구성돼 있다. 이 3 아웃을 다 써버리면 득점은 불가능하다. 진루는 주자를 홈 베이스로 보내기 위한 일련의 타격 과정을 의미한다. 장타율을 계산에 넣은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단타 보다는 2루타가, 2루타보다는 홈런이 주자를 홈 베이스로 보낼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OPS는 많은 문제점 역시 내포하고 있다. 특히 야구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벤트 가운데 하나인 도루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문제다. 도루 역시 분명한 진루 행위인데도 말이다. 도루자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출루 자체와는 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아웃 카운트를 늘린다는 측면에서 도루자는 출루의 반대 개념이다. 아웃 카운트를 늘리는 것은 물론, 진루의 대상인 주자를 없앤다는 점에서 도루자는 더욱 치명적이다.

따라서 타자의 능력을 보다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선 도루와 도루자를 계산에 반영시키는 편이 옳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메트릭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이미 비슷한 주제를 다룬 지표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고민이 올해 겨울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지표들 가운데서 오늘 우리가 알아볼 것은 바로 EqA다.

EqA는 Equivalent Average의 약자다. 빌 제임스가 고안한 SECA(SECondary Average)처럼 안타 이외의 타격 이벤트, 그러니까 볼넷이나 장타 또는 도루와 도루자 같은 개념을 포함한 일종의 타율 보정 지표다. 타율 보정 지표라 부르는 까닭은 기본적으로 이 메트릭의 범위가 타율과 유사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EqA는 중요한 역할을 한 가지 더 수행한다. 해당 선수가 뛴 시즌의 상대적인 차이를 반영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1999년에는 타격 20위 홍현우의 타율이 정확히 .300이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 .300의 타율은 전체 6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결국 이 두 값을 직접 비교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선수들의 뛴 득점 환경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EqA는 이 점을 무난히 반영한다.

결국 타석에서의 성적 더하기 도루 능력에 대해 리그 평균과 비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표가 바로 EqA다. 굳이 비유하자면, '도루를 포함한 OPS' 그리고 리그 평균 OPS와의 비교를 통해 타자의 위치를 가늠케 해주는 OPS+를 더해 놓은 형태가 바로 EqA인 것이다. 리그 평균은 언제나 .260으로 나타나며, 타율과 마찬가지로 .300 이상의 기록이면 칭찬받을 만한 시즌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야구팬이 좋아하는 '놀이' 하나를 더 해보자. 바로 '줄 세우기'가 그것이다. 질문은 간단하다. 원년부터 작년까지 우리 프로야구에서 가장 높은 EqA를 기록한 선수는 누구였을까? 게임에나 등장할 법한 캐릭터였던 '94년 이종범? 잠자리채 공장에 때 아닌 대박을 안겨줬던 '03 시즌의 이승엽?


<표> 단일 시즌 EqA 상위 10걸
 
정답은 모두 아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잊고 지내던 인물이 주인공이다. 바로 프로야구의 유일한 4할(타율 .412) 타자 백인천이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높은 EqA를 기록한 인물이다. 타율 역시 최고 기록이지만, 프로 원년이던 '82 시즌 백인천이 기록한 .352의 EqA 역시 역사상 가장 높은 기록이었다. 2위 역시 오랜 세월이 흐른 '83 시즌의 장효조(EqA .340).

잘 알려진 것처럼 백인천은 당시 국내 리그에서 뛰기엔 너무 대단한 선수였다. 불혹의 나이였다고는 하지만, 일본에서 타격왕을 차지할 정도로 국내 선수와의 기량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롯데 감독으로서 그리고 해설자로서의 자질에 관해서는 말이 많지만 확실히 선수로서의 백인천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두 수 정도 위였다.

장효조 또한 '너무 신인답지 않다'는 이유로 신인왕 투표에서 고배를 마실 정도로 이미 국내의 여타 선수와 차별화된 완성형 타자였다. 정교한 방망이 솜씨는 물론이거니와 최근 강조되는 참을성까지 이미 갖춘 타자였다. 그러니까 이 두 선수가 당시의 평균적인 수준과 보인 격차를 EqA가 반영해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 뒤를 이종범과 심정수가 나란히 잇고 있다. 이종범의 '94 시즌은 '03년 심정수와 같은 .337이다. 엄밀히 말해 심정수의 기록은 .3372, 이종범의 기록은 .3367로 심정수가 5모 앞선다. 그러니까 굳이 순위를 정하자면 이종범의 성적은 역대 4위인 셈이다. 팬들의 뇌리에 각인된 엄청난 폭발력에 비하면 사실 다소 아쉬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여전히 대단한 기록이긴 하지만 말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56홈런을 기록한 이승엽의 '03 시즌 성적(EqA .328)이 개인 최고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03년 성적 역시 역대 12위에 해당하는 훌륭한 기록이다. 하지만 팀에 첫 한국 시리즈 우승을 안겼던 '02 시즌 기록은 1리 높은 .329(역대 6위)였고, 아시아 홈런 기록 달성을 아깝게 놓쳤던 '99년도엔 .332(역대 10위)였다. 팬들은 홈런에 열광하지만 그것이 야구의 전부는 아니라는 얘기다.

'01 시즌 호세가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 역시 그런 맥락이다. '01 시즌 호세의 EqA는 .334,  역대 5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기록이다. 이 시즌 호세는 .503의 출루율을 기록하며 역대 출루율 신기록을 세웠다. 이 해 호세는 127개의 볼넷을 얻어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리그 최다 기록이다. 이 가운데는 28개의 고의사구가 포함돼 있는데 이보다 많은 고의사구를 얻어낸 선수는 '97년 이종범(30개)밖에 없다. 투수들이 승부 자체를 회피할 정도로 호세의 위압감이 대단했다는 것이다.

이들 이외에 역대 10위안에 든 선수는 '91 시즌의 장종훈(.330)과 '96 시즌의 양준혁(.330)뿐이다. 장종훈이 등번호 35번을 선택한 건 홈런 35개를 날리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모두가 헛된 꿈이라며 비웃었지만 '91 시즌 장종훈은 이 장담을 현실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는 기어이 41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40홈런 시대의 개막을 알리기도 했다. '92 시즌 장종훈의 EqA는 .327, 역대 1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96 양준혁 역시 삼성의 '암흑기'를 굳건히 버틴 삼성 타선의 군계일학이었다. 양준혁은 프로에서 14 시즌을 뛰는 동안 모두 9차례나 .300 이상의 EqA를 기록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꾸준함은 물론이거니와 실력 역시 최고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이만수가 8회, 이승엽 7회, 장효조 6회 등 삼성 출신 타자들이 이 기록 상위권에 대거 포진해 있다. 역시 삼성의 상징은 강력한 타선의 힘이었다.

한때 삼성에 몸담았던 김기태 또한 EqA .300을 넘긴 경우가 6회나 된다. 왼손 타자 최초로 홈런왕을 차지한 그의 이름이 빠질 리 없는 것이다. 쌍방울에서 뛰던 '97 시즌의 EqA .328은 역대 11위로 아깝게 10위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비인기 팀의 4번 타자였다는 이유로 더러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김기태 역시 '90년대 최고 타자 가운데 한명이었다. EqA 역시 김기태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도루를 포함한 OPS'라는 개념이 올 겨울 등장하게 된 건 '94 이종범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의 유사한 개념인 EqA를 통해 봐도 '94 이종범은 역대 최고가 아니다. 그러나 EqA는 오직 타자로서의 능력과 도루라는 측면에서의 주루 능력만을 평가할 뿐이다. 그리고 이종범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한 세 명의 타자는 모두 수비 부담이 훨씬 적은 포지션에서 뛰었다는 점 역시 분명 고려대상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94 이종범의 포스를 자랑한 야구 선수는 없었다. 그건 비단 그에게 내준 볼넷이 3루타와 같은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같은 해 200 안타를 놓고 일본의 이치로!와 끝없이 비교됐기 때문도 아니다. 스포츠 신문 1면에 이종범의 개인 기록이 따로 실리는 꼭지가 존재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1번 타자에 더 어울리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94 시즌 곧잘 4번 타자로 경기에 나섰기 때문 역시 아니다.


차라리 이 모든 것을 종합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당시 야구팬은 이종범을 응원하는 팬과 이종범의 상대팀을 응원하는 팬으로 나뉘어 있던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 많은 논란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94 이종범은 확실히 우리프로야구에 있어 진정한 '괴물'이다. 논쟁을 종식시키는 괴물이 아니라 논쟁을 시작하게 만드는 괴물 말이다. 사람들은 대개 누가 더 잘했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지 누가 더 못했느냐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는다. 자, 당신의 기억 속에 프로야구 최고의 '괴물'은 누구였습니까? '94 이종범입니까? 아니면 다른 누구입니까?

EqA 계산법

EqA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먼저 Raw EqA를 구해야 한다. 그 공식은 아래와 같다.

              H + TB + 1.5 × (BB + HBP) + SB
EqA = ──────────────────
               AB + BB + HBP + CS + SB/3

1) 위의 공식을 토대로 나온 Raw Eqa는 OPS와 유사한 범위의 값을 갖는다.
2) 이 값을 타석 수에 맞춰 득점의 크기로 환산(EqR)한다.
3) 득점의 양을 가지고 리그 수준의 차이를 고려해, 해당 선수의 피타고리안 승률을 계산한다.
4) 이렇게 나온 승률 값을 토대로, 평균으로 정해진 .260에 맞춰 보정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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