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방망이를 휘둘러야 할까? 혹은 언제 승부구를 던져야 할까? 이 물음은 승부에 임하고 있는 모든 선수들이 항상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것이다. 포수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각 팀 벤치에서도 바쁘게 사인이 오간다.
하지만 결국 승부를 내는 것은 투수와 타자다. 먼저 투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투수들은 초구는 반드시 스트라이크를 던질 것을 요구 받는다. 그 편이 카운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끄는 데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볼 카운트에 몰리면 결국 무리하게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 타자가 초구를 노리고 들어선다면 이는 손쉬운 먹잇감을 주는 자살행위가 되고 만다. 따라서 투수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스트라이크는 투수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완벽히 제구가 되지 않은 공이라면, 타자로서도 때려내기 좋은 공이 바로 스트라이크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볼 카운트 승부를 끌고 나가는 데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딜레마다. 그러니까 방망이를 휘두를 것인가, 스트라이크를 던질 것인가 하는 점 말이다.
한번 실제 자료를 가지고 이 딜레마를 풀어보도록 하자. 아래 표는 2005~2006 두 시즌에 걸쳐 타자들이 각 카운트별로 스윙을 시도한 비율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스윙을 시도했다는 말은 1) 볼을 인플레이 시켰거나, 2) 파울로 볼을 걷어냈거나, 3) 헛스윙에 그치고 만 세 가지 경우를 포함한다. 분명 방망이를 휘둘러야만 얻어낼 수 있는 결과물은 바로 이 셋뿐이기 때문이다.
<표1> 볼카운트별 스윙 시도 비율
흥미로운 건 스크라이크 하나가 가장 중요한 타이밍, 즉 2 스트라이크 이후에 타자들이 스윙을 시도하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사실 스트라이크가 많아질수록 타자들은 스윙에 좀더 공격성을 띤다. 스트라이크 하나 정도는 타자들이 아직 여유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꾸로 투수들 시각에서는 스트라이크를 던지기 위해, 달리 말해 타자들이 때리기 좋은 공을 던지기 위해 노력을 할 텐데도 말이다.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0-3 카운트다. 볼 하나면 자동 출루인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공격을 시도하는 경우를 보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극도로 낮은 비율(5.6%)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도 1-3가 되면 스윙 비율은 46.1%로 수직 상승한다. 여전히 볼 하나면 자동 출루인 상황은 달라지지 않지만 스트라이크 하나에 타자가 쫓기게 됐다는 심리의 방증인 셈이다.
2스트라이크 상황과 관련해 이 점을 한번 생각해 볼 만하다. 혹시 2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타자들이 스트라이크 존을 보호하기 위해 투구를 커트해 내기 때문에 스윙 시도 비율이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그 결과가 바로 아래 표에 정리돼 있다.
<표2> 볼카운트별 파울 타구 발생 비율
표에서 보는 것처럼 2 스트라이크 이후라고 해서 극단적으로 파울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2-0에서 조금 높은 비율을 보이기는 하지만 대단한 차이는 못 된다. 결국 타자의 선택은 카운트의 유 · 불리에 따른 심리적인 결과물이라는 쪽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높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럼 타자가 스윙을 시도하지 않은 경우에 투수들은 어떤 공을 던질까? 아래는 타자가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은 경우, 심판이 어떤 콜을 내렸는지를 정리한 결과다. 표에 나타는 수치는 타자가 흘려보낸 공이 스트라이크로 판정받은 비율이다.
<표3> 볼카운트별 스트라이크 판정 비율
결과적으로 투수는 타자의 심리를 역이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볼 카운트 0-3다. 이 경우에 스트라이크 비율이 가장 높지만 타자들은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는다.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던져야만 하고, 실제로도 스트라이크를 던지지만 타자들은 멈춰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 스트라이크 이후 상황도 마찬가지 양상이다. 유리한 볼 카운트를 점한 상황에서 투수들은 실제로 스트라이크를 그리 많이 던지지 않는다. 하지만 타자들은 방망이를 돌리기 바쁘다. 혹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 공은 모조리 방망이에 맞아 나가기 때문에 이 비율이 낮은 것은 아닐까? 헛스윙 비율을 통해 이를 알아보도록 하자.
<표4> 볼카운트별 헛스윙 비율
헛스윙 비율이 전체적으로 높아지는 시기가 바로 2 스트라이크 상황이다. 확실히 타자들은 쫓기면 쫓길수록 서두르게 되고, 타석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가 어려워지는 셈이다. 그러니까 스트라이크 존을 확실히 지배할 수만 있다면 볼 카운트 싸움은 확실히 투수가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스트라이크를 던져서 타자를 요리할 수도 있고, 유인구로도 얼마든지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가 복잡하게 얽힌 가장 완벽한 상황이 바로 풀 카운트다. 3볼이라는 얘기는 볼 하나면 자동 출루라는 얘기지만, 동시에 2스트라이크라는 상황은 정반대의 양상을 제공한다. 덕분에 타자들은 전체 투구의 72.3%라는 어마어마한 비율에 방망이를 휘두른다. 스트라이크든 볼이든 모두 가만히 지켜보기가 곤란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투수들 역시 마음 놓고 스트라이크를 던지지도 못하고, 타자들 역시 그리 높은 비율로 속아주지 않는다. 그럼 풀카운트에서 승부의 열쇠는 누가 쥐고 있는 걸까?
풀 카운트의 경우에 승부가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따라 흥미로운 결과가 관찰된다. 그래프의 X축에 적힌 숫자는 이미 타자가 지켜본 공의 개수를 뜻한다. 타자의 경우 승부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스윙 시도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 일관적으로 계속 상승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승부가 길어질수록 타자가 쫓기고 있다는 점을 이 그래프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프 1> 풀카운트시 스윙 시도 비율 추이
한편 투수들 역시 승부가 계속될수록 스트라이크를 집어넣는 데 애를 먹는다. 이미 공을 던질만한 지점에 모두 공을 던졌기에 더 이상 던질 곳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타자와 투수 모두 물러날 곳이 없는 승부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 결과만으로는 승부를 밝히기가 어렵다.
<그래프 2> 풀카운트시 스트라이크 판정 비율 추이
그래서 한번 우회적으로 한번 다시 승부를 가려보도록 하자.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건 풀 카운트가 되는 과정에 따른 차이다. 물론 풀카운트까지 가는 길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여기서는 극단적인 두 가지 경우만을 놓고 알아보도록 하자. 1) 스트라이크 두 개 이후에 볼이 세 개 연거푸 들어온 경우와 2) 그 반대의 경우 말이다.
1)의 경우 타자들은 70.1%의 스윙 시도율을 보인다. 2)의 경우에는 71.1%다.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승부가 어떤 식으로 전개됐는지와는 무관하게 타자들은 풀 카운트에서 쫓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투수의 경우에는 다르다. 스트라이크 2개를 나중에 넣었을 때, 즉 2)의 경우 투수들은 세 번째 공의 22.1%를 스트라이크로 꽂아 넣었다. 반면 1)처럼 볼 세 개를 연속으로 던지고 나서 새로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비율은 17.2%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타격 결과에서는 별다른 차이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달리 말해, 풀 카운트 이후에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않고도 타자를 처리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타자는 과정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심리적으로 쫓기는 상황에서 타격에 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흔히들 야구를 멘털 게임이라고 한다. 그리고 상대의 수를 누가 더 잘 읽어내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고도 한다. 야구 경기를 보다 보면, 10구가 넘어가는 기나긴 풀카운트 승부 하나가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는 경우를 곧잘 목격할 수 있다. 결국 누가 더 집중력을 발휘했느냐 하는 점이 승부의 물꼬를 완전히 다른 쪽으로 돌려놓는 셈이다.
하지만 지금껏 알아본 것처럼 볼 카운트 싸움은 투수에게 유리한 모양새로 펼쳐지는 게 사실이다. 물론 공격수는 타자지만 실제로 선공을 시도하는 쪽은 오히려 투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렇듯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도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에 무너지는 경우 역시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올해 플레이오프에서 보크 두 개를 연속으로 범한 황두성의 사례가 단적인 예다.
과연 내년에는 어떤 투수가 이런 부담감을 극복하고 영리한 경기 운영을 선보여줄 수 있을까? 반대로 타자는 어떻게 투수의 심리를 역으로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흐름을 가져올 수 있을까? 이 수 싸움이 너무도 그리운 건 필자 혼자만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