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가장 팬들을 짜릿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물론 야구 팬 개개인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소위 Moon Shot, 바로 까만 밤하늘을 날아가던 하얀 공이 까마득히 멀리 날아 담장을 넘기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홈런왕 이만수, 김봉연, 장종훈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건 바로 그런 까닭이다. 홈런이야 말로 야구의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번 홈런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가지고 놀아보자!
로저 매리스가 가지고 있던 단일 시즌 홈런 기록(61개)을 깨뜨린 마크 맥과이어. 비록 최근에는 스테로이드 스캔들로 인해 구설수에 오른 게 사실이지만, 신기록을 세우던 '98 시즌만 해도 모든 홈런 타자들은 그를 추켜세우기에 바빴다. 홈런의 비거리가 다른 타자들과 격이 다르다는 이유였다. 그럼 이번 시즌 우리 리그에서 뛴 타자들 가운데 가장 비거리가 길었던 타자는 누구였을까?
정답은 SK에서 조기 퇴출된 외국인 선수 피커링이다. 모두 9개의 홈런을 때린 피커링의 평균 비거리는 121.7 미터. 커다란 덩치에서 느껴지는 중압감이 비거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 뒤를 LG의 유망주 박병호, 지난 해 홈런왕 서튼 그리고 '재주리게스' 이재주가 잇고 있다. 이들의 기록은 모두 120.0 미터다. 한편 2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홈런왕에 오른 이대호의 경우 총 홈런의 비거리를 합했을 때 3,086 미터를 기록하며 2,635를 기록한 팀 동료 호세를 제치고 1위 자리에 올랐다.
그럼 이런 건 어떨까? 물론 솔로 홈런이든 만루 홈런이든 모두가 똑같은 홈런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주자가 많이 출루해 있는 상황에서 터지는 홈런이야 말로 '영양가‘라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가 쉽다. 말하자면, 홈런 하나당 몇 타점이나 기록했는지를 알아보는 것 역시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 기록을 알아보면 1, 2위는 모두 현대 타자들의 차지로 드러난다. 서튼은 홈런 하나당 2.17타점을 기록하며 이 부분 1위에 올랐다. 김동수 역시 평균 2.00 타점으로, 정의윤/호세/홍성흔 등과 함께 공동 2위를 차지했다. 특히 호세의 경우 홈런이 이대호보다 4개나 적지만 홈런만으로 똑같이 44점을 올려 이 부분 공동 1위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칭찬해 줄만 하다. 나이 탓으로 예년만 못한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롯데 팬들이 호세의 재계약을 강력히 희망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곳에서 드러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것도 한번 알아보자. 2002년 한국 시리즈 5차전. 9대 6으로 이미 승부가 갈렸다고 생각했던 9회말 터진 이승엽의 동점포 그리고 마해영의 한국 시리즈 끝내기 홈런! 기왕이면 동점이나 역전 홈런을 때리는 편이 이미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나온 홈런보다 확실히 더 짜릿하다는 얘기다. 어떤 선수가 동점 혹은 역전 홈런을 가장 많이 때려냈을까?
정답은 한화의 이범호다. 총 20개의 홈런 가운데 13개가 동점 내지 역전을 이끌어 낸 홈런이었다. 비율로 따져봐도 65%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비율이다. 특히 이 가운데 6개는 6회 이후에 터진 것이라서 더더욱 의미가 깊다. '클러치'가 능력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확실히 이범호의 집중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이 두 영역에선 확실히 나머지 타자들에 비해 이범호의 이름이 유독 돋보인다.
물론 이런 기록들은 순전히 재미를 위한 것이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100% 신뢰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홈런의 비거리를 기계를 사용해 정확하게 측정하지 않는 이상 큰 구장을 사용하는 타자에게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루상에 나가 있는 주자수 역시 타자가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동점이나 역전 홈런을 때리기에 앞서 왜 진작 팀에 선취점을 안기는 홈런을 때려내지 못했는지 역시 의문을 품어볼 만한 점이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재미를 위해 알아보자면 확실히 흥미로운 점들이 발견되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처럼 유독 홈런이 적은 시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작은 야구가 주는 아기자기한 재미도 물론 재미지만, 내년에는 좀더 호쾌하고 화끈한 야구가 펼쳐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 홈런이 좀더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