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1 구장효과?

구장 효과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기록도 드물다. 어떤 이들은 세이버메트릭스 최고의 발견이라고 치켜세우는 반면, 한쪽에서는 의미 없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국내 리그의 경우 구장별 특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구장 효과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분명 야구 선수들은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한 시즌의 절반을 치른다. 그리고 꽤 오랜 기간 한 팀의 성적이 홈과 원정에서 일정한 경향을 보인다면 설사 특성 차이가 별로 없는 구장이라고 하더라도 이 숫자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이 많은 세이버메트리션들이 각종 기록에 구장 효과를 보정해 사용하는 까닭이다.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건 구장 효과를 구하는 공식이 단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는 엄청나게 복잡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고, 비교적 간단하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있다. 간략함과 정확성은 어느 정도 반비례한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주로 US 패트리어트(US Patriot)의 방식을 사용하되, 다른 공식이 사용된 경우에는 따로 그 방식을 밝히도록 하겠다.

구장효과를 보는 요령은 단순하다. 1.0이 넘어가면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투수 친화적인 구장이다. 만약 홈런 팩터가 1.10이라면 리그 평균에 비해 10% 정도 홈런이 더 나오는 구장이라고 보면 옳을 것이다. 한번 우리 프로 야구에서 홈구장으로 쓰이는 7개 구장(제 2구장 제외)의 구장 효과를 알아보도록 하자.


#2 이승엽이 떠난 대구는?

일반 야구팬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AT&T 파크는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이라는 얘기다. 거의 해마다 배리 본즈가 엄청난 홈런을 생산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소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실제로 숫자를 살펴보면 전혀 다른 결과를 알아볼 수 있다.

배리 본즈가 73개의 홈런을 날린 2001 시즌에도 ESPN 방식으로 알아 본 이 구장의 홈런 팩터는 0.624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MLB 전체 30개 구장 가운데 두 번째로 낮은 기록이다. 이보다 낮은 기록을 보인 구장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홈 구장 미닛 메이드 파크(0.620)가 유일했다. 배리 본즈는 그만큼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엄청난 수의 홈런을 생산했다는 얘기다.

그럼 이승엽이 53개의 홈런을 몰아친 2003 시즌의 대구는 어땠을까? 이 시즌 대구 구장의 홈런 팩터는 1.13이었다. 타자에게 13% 정도 유리한 구장이었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이 시즌 전체를 놓고 볼 때 가장 높은 기록이었다. 이승엽의 아시아 홈런 최다 기록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구장의 영향 역시 이승엽의 홈런 신기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 역시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승엽이 엄청나게 많은 홈런을 때려냈기에 구장 효과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반론 역시 가능하다. 그러나 이승엽이 일본으로 진출한 '04 시즌에도 대구 구장의 홈런 팩터는 1.11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05 시즌에는 오히려 1.12로 다시 소폭 상승하는 모양새였다. 분명 이승엽이 구장 효과에 영향을 끼친 건 맞지만 그래봤자 1% 내외라는 얘기다.

어째서 그럴까? 구장 효과는 말 그대로 구장에 의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타격이 좋은 선수가 여러 명 포진해 있다고 해서 구장 효과가 갑작스레 상승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그 선수가 빠진다고 해서 구장효과가 갑자기 엉뚱한 쪽으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어 보자. 1시즌에 홈런을 5개 때린 팀이 있다. 이 팀은 홈에서 3개 원정에서 2개의 홈런을 때렸다. 물론 실제 계산에서는 좀더 많은 사항이 고려되지만, 단순하게 계산하자면 이 팀 홈구장의 홈런 팩터는 1.5다. 반면 홈에서 30개, 원정에서 30개의 홈런을 때려낸 팀의 구장은 1.0의 홈런 팩터를 기록한다. 중요한 것은 홈과 원정에서의 성적 차이지 공격 스타일의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3 잔디 상태와 펜스 길이 어느 것의 영향이 더 클까?

이번 시즌 개막 전, 광주와 사직 두 구장은 각각 다른 종류의 구조 변경을 실시했다. 광주는 펜스 길이를 전체적으로 5m씩 뒤로 밀었고, 사직은 인조잔디를 걷어내고 천연잔디를 새로 깔았다. 어느 쪽이 구장 효과에 더 큰 영향을 끼쳤을까?

지난 해 광주 구장은 리그 최고의 홈런 공장이었다. 홈런 팩터가 1.23이나 됐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0.95로 낮아졌다. 이는 잠실(0.83)과 사직(0.91) 등 투수에게 유리한 기존 구장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기록이다. 이제 확실히 KIA 투수들은 피홈런의 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봐도 옳을 것이다.

반면 사직 구장은 지난 해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득점은 0.99에서 0.97로 소폭 하락했지만 홈런은 0.92에서 0.94로 소폭 상승했다. 이 정도 차이는 충분히 오차범위 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확실히 사직은 여전히 투수에게 유리한 구장이다.

눈썰미가 좋은 독자라면 위에서는 사직의 홈런 팩터를 0.91이라고 했는데 이번 단락에서는 수치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번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잔디 상태가 구장 효과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따라서 새로운 구장이라 볼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사직 구장은 기존의 자료를 사용해 5년 누적된 구장 효과를 사용해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구장 효과를 계산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득점이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구하자면 바로 홈런이다. 홈런만큼 득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벤트가 없기 때문이다. 홈런은 아무래도 잔디 상대보타 펜스 길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숫자도 이렇게 지지를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4 한 구장을 두 팀이 같이 쓴다면?

우리 리그에서 또 하나 특이한 건 두산과 LG가 잠실을 홈구장을 함께 사용한다는 점이다. 해마다 이 두 팀이 각각 다른 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한다는 가정 하에 구장 효과를 구해보면 사실 어느 정도 차이는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구장 효과가 정말 구장에 의한 효과라면 이 두 팀의 기록이 달라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두 팀의 기록만 놓고 볼 때는 비록 차이를 보인다 하더라도 두 팀의 기록이 거의 예외없이 리그에서 가장 투수 친화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 구장의 기록 역시 시즌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는 점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두 기록이 일정 수준의 범위 내에 있다면 단지 이 두 기록이 차이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용도 폐기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두 팀이 홈구장으로 사용하기에 구장 효과를 좀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구장 효과를 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표본의 양이다. 구장에 큰 변동이 없다면 3년 이상의 누적 기록을 사용하는 것이 구장이 갖는 효과를 측정하는 데 있어 좀더 효율적이다. 예외적인 상황이 많이 걸러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콜로라도 로키스 투수들이 어느 시즌 갑자기 원정에서 더 많은 실점을 허용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쿠어스 필드가 투수 친화적인 구장이 됐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경향이 계속된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가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다음 시즌 곧바로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면 그 시즌은 그저 예외라고 보는 편이 옳아 보인다. 표본이 늘수록 이런 예외가 걸러지기 때문에 좀더 정확한 구장 효과를 게산하기 위해서는 표본이 많은 쪽이 훨씬 유리하다.


#5 '06 시즌 구장 효과

이제 최종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됐다. 아래 표는 우리 프로리그 7개 구장의 구장 효과를 정리해 놓은 결과물이다. 모두 기본적으로 5년간의 기록을 토대로 계산했으나, 펜스 길이 변화를 겪은 광주 무등 경기장만 올 시즌의 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한 선수가 구장 효과에 미치는 영향은 1% 내외다. 그것도 이승엽 정도의 선수 정도가 되어야 그렇다. 하지만 투수에게 유리한 구장에서도 투수력 때문에 애를 먹는 팀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 존재한다. 이는 다만 구장의 특성일 뿐, 그 안에서 선수들이 흘리는 땀의 가치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기록이다.

구장효과를 믿는가? 그렇지 않은가? 여전히 그건 여러분의 몫이다. 하지만 선수들이 땀을 흘리는 공간을 이해하고, 그 공간에 맞는 좀더 효율적인 전술을 찾는 일. 야구를 이해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한번쯤 고민해 봐도 나쁘지 않은 주제라고 생각한다. 결국 구장은 선수들의 열정과 팬들의 응원으로 채워지는 공간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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