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황금사자기 개막을 앞두고 특집 기사용으로 썼던 글입니다. 지시가 내려오는 과정에서 혼선이 생겨 쓰지 않아도 될 글을 썼습니다. 써 놓은 게 아까워 블로그에 남겨 놓습니다.


부임 첫 날인 9일 프로야구 사직 경기에서 선수단을 응원하고 있는 최원호 감독 대행(왼쪽)과 정경배 타격 코치. 둘은 인천고 동기생이기도 하다. 부산=뉴스1


한화에서 최원호(47) 퓨처스리그(2군) 감독에게 1군 감독 대행을 맡기면서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경험이 있는 프로야구 1군 감독은 총 네 명으로 늘었다.


최 대행 모교 인천고는 1989년 제43회 대회 때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를 4-2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인천고가 전국 대회 우승을 차지한 건 이때가 1954년 제8회 황금사자기 이후 35년 만에 처음이었다.


단, 당시 최 대행은 이 학교 1학년이었기 때문에 '우승 주역'이라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SK 염경엽(52) 감독은 1983년 제37회, 1984년 제38회 황금사자기 2연패에 빛나는 광주일고 멤버였지만 역시 우승 주역과는 거리가 있다.


당시 광주일고는 염 감독보다 1년 먼저 입학한 '야구 천재' 박준태(53)의 팀이었기 때문이다. 박준태는 내·외야 전포지션은 물론 투수와 포수까지 가능했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박준태는 황금사자기 역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최우수선수(MVP)로 뽑히기도 했다.


염 감독은 3학년 때 유급하면서 광주일고를 4년 다녔지만 황금사자기 우승과 한 번 더 인연을 맺지는 못했다.


반면 역시 염 감독의 광주일고 1년 선배인 KT 이강철(54) 감독은 당시 우승 주역으로 꼽을 수 있다. 적어도 우수투수상을 탄 1984년 황금사자기 때는 분명히 그렇다.


당시 광주일고는 에이스였던 문희수(55)가 해태(현 KIA)에 입단하면서 마운드가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감독이 1984년 대회 결승전에서 경남고 타선을 7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면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광주일고는 결국 4-0 승리를 거뒀다.


경북고 재학 시절 '초고교급 유격수'로 통했던 LG 류중일(57) 감독은 확실한 우승 주역이다.


류 감독 모교인 경북고는 1981년 제35회 대회 때 진흥고에 6-0 완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 때 경북고 1번 타자로 출전한 류 감독은 3회말 무사 주자 1루 상황에서 중전 안타로 1, 3루 찬스를 만들면서 선취점으로 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해냈다.


이어 4-0으로 앞선 8회말에도 2사 2, 3루 상황에 타석에 들어서 주자일소 적시타를 때렸다.


키움 손혁(47) 감독도 공주고 1학년이던 1989년 제43회 황금사자기에 고교 동기였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47)와 함께 출전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1회전에서 경남고에 1-7로 패하면서 서둘러 짐을 싸야 했다.


당시는 나중에 '꿈의 92학번'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각 고교 야구부에 포진 중었기 때문에 전국대회 우승도 그만큼 쉽지 않았다.


이 '꿈의 92학번' 가운데 황금사자기를 품은 건 신일고의 조성민(1973~2013)이었다.


조성민은 1991년 제45회 결승전 때 선발 투수 겸 4번 타자로 출전했다.


상대팀 광주일고의 1회초 공격을 삼자범퇴로 돌려세운 조성민은 1회말 무사 만루 상황에서 우전 적시타를 치면서 선취 타점을 올렸다.


결국 신일고가 14-2 승리를 거두면서 이 안타는 결승타가 됐다.


황금사자기는 1947년 '전국 중학 지구별 초청 야구대회'라는 이름으로 막을 올렸다.


1999년까지만 해도 대회 공식 대회 명칭이 '황금사자기 쟁탈 전국 지역별 초청 고교야구 쟁패전(爭敗戰)'이었다.


기본적으로 왕중왕 성격을 지닌 대회였던 것이다.


프로야구 1군 감독 역시 한번에 10명만 차지할 수 있는 야구인들의 왕중왕 자리다.


그런 점에서 이 둘을 모두 경험한 이들은 진짜 성공한 야구 인생을 살았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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