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팀이 14연패에 빠지면서 자진사퇴를 선택한 한용덕 전 프로야구 한화 감독. 대전=뉴스1


자진사퇴하기 딱 좋은 경기였습니다.


프로야구 한화는 7일 대전 안방 경기에서 NC에 2-8로 패했습니다.


그러면서 1986년 1군 합류 이후 최다 타이기록인 14연패에 빠졌습니다.


그 전에는 2012년과 2013년에 걸쳐서 14연패를 당했기 때문에 한 시즌에 14연패를 당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시에는 2012년 10월 4일 시즌 마지막 경기가 1-1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15경기에 걸쳐 1무 14패를 기록했던 것.


반면 이번에는 무승부 없이 14경기에서 내리 패했습니다.


순위에서도 물론 끝자리. 어느새 9위 SK(10승 19패)와도 3.5경기 차이입니다. 


▌프로야구 팀 순위(이하 7일 현재)
 순위  팀  승  패 승률  승차  연속
 ①  NC  23  6  .793  -  5승
 ②  두산  19  10  .655  4  4승
 ③  LG  18  11  .621  5  1승
 ④  키움  17  13  .567  6.5  1패
 ⑤  KIA  15  15  .500  8.5  3패
 ⑥  롯데  14  15  .483  9  3승
 ⑦  삼성  13  17  .433  10.5  1승
 ⑧  KT  11  18  .379  12  4패
 ⑨  SK  10  19  .345  13  1패
 ⑩  한화  7  23  .233  16.5  14패


그러니 사실 감독이 자리를 지키는 게 더 이상했습니다.


한용덕 한화 감독은 이 경기가 끝난 뒤 (공식적으로는) 자진사퇴 형식으로 자리를 내놓았습니다.


한 감독은 2018년 구단과 3년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원래 올해가 계약 마지막 해였습니다.


시작은 좋았습니다. 한화는 2018년 77승 67패(승률 .535)를 기록하면서 3위로 정규리그를 마쳤습니다.


비록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현 키움)에 1승 3패로 업셋을 당하고 말았지만 11년 만에 '가을야구' 맛을 본 걸로도 한화 팬들은 '나는 행복합니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58승 86패(승률 .403)에 그치면서 9위로 주저 앉았고 올해는 위에서 보신 대로입니다.


2018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 당시 한화 더그아웃. 동아일보DB


그러면 2018년 한화는 정말 강팀이었을까요?


저는 당시 김정준 SBS스포츠 해설위원과 함께 진행하던 팟캐스트 '김정준의 야구수다'를 통해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주장한 근거는 팀 득·실점 기록을 토대로 추정하는 '피타고라스 승률'이었습니다.


당시 한화는 729점을 올리는 동안 761점을 내줬습니다.


피타고라스 승률은 지수로 어떤 숫자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살짝 달라집니다.


그래도 실점이 득점보다 많으면 기대 승률이 5할 밑으로 내려가는 건 달라지지 않습니다.


$$\begin{align}Exponent = 1.50 \log(\frac{R + RA}{G}) + 0.45\end{align}$$


제가 사용한 계산법에 따르면 당시 한화 피타고라스 승률은 .479였습니다.


실제 승률은 .535였으니까 .0559 차이가 났습니다.


연도에 따라 팀을 구분하면 '단일리그 + 계단식 포스트시즌' 제도를 도입한 1989년 이후 총 258개 팀이 프로야구에서 순위 다툼을 벌였습니다.


이 가운데 실제 승률이 피타고라스 승률보다 .0559 이상 높았던 건 7개 팀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2018년 한화는 3.1% 안에 속하는 예외였던 셈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온 제일 큰 이유는 1점차 승부에서 20승 13패(승률 .606)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이해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1점차 승부에서 가장 강했던 팀이 한화였습니다.


1점차 승부에서 강한 게 나쁘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일반적으로는 강팀이 1점차 승부에서도 강합니다. 그런데 1점차 승부에서만 강하다고 강팀은 아닙니다. 진짜 강팀은 상대를 큰 점수 차이로 물리치거든요.


그래서 1점차 승부에 유독 강할 때는 행운 그러니까 거품이 끼어 있다고 판단해야 합니다.


지난해 SK가 그랬습니다.


SK는 지난해 6월 24일까지 1점차 승부에서 승률 .947(18승 1패)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몇 승이 실력이고 몇 승이 행운지 모르지만 행운이 끼어있는 건 확실했습니다.


전반기에 64승 1무 31패(승률 .674)를 기록했던 SK가 후반기에 24승 24패(승률 .500)에 그친 데는 이런 행운이 '제자리'를 찾아간 것도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이날 이후 SK는 1점차 승부에서도 7승 7패를 기록한 채 시즌을 마쳤습니다.


2018년 5월 2일 경기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뒤 축하를 받고 있는 당시 한화 지성준(왼쪽에서 두 번째). 끝내기 안타는 대부분 1점차 승부를 만들어냅니다. 동아일보DB


2018년 한화 역시 전반기에는 1점차 승부 때 14승 6패(승률 .700)였지만 후반기에는 6승 7패(승률 .462)가 됐습니다.


그리고 전반기에 .580(51승 37패)였던 전체 승률도 후반기에는 .464(26승 30패)로 내려갔습니다.


행운을 다시 불러올 수 없다면 팀 전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방안이라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한 감독은 '가을야구'를 앞두고 베테랑 송광민(37)과 갈등을 노출했고 지난해에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이용규(35)에게 전력 외 통보를 내리면서 또 한 번 파찰음이 들렸습니다.


또 전임 김성근 감독 시절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영입했던 권혁(37), 배영수(39) 그리고 정근우(38)까지 모두 여러 이유로 팀에서 내보내고 말았습니다.


가만히 기록을 뜯어 보면 성공이 진짜 성공이 아니었는데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던 셈입니다.


게다가 이용규를 다시 쓰기로 한 것도 모자라 주장 감투까지 씌워주면서 스스로 자기 선택을 부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니 팀이 잘 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지켜보고 있는 장종훈(왼쪽) 전 한화 수석코치와 한용덕 전 감독. 대전=뉴스1  


그렇다고 프런트가 잘했냐?


역시 물론 아닙니다.


한화는 6일 경기를 앞두고 장종훈(52) 수석코치, 정민태(50) 투수코치, 김성래(59) 메인 타격코치, 정현석(36) 보조 타격코치 등 코칭스태프 4명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했습니다.


정식 엔트리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만 1군 선수단과 동행하던 박정진(44) 불펜코치에게도 '퇴거' 명령을 내렸습니다.


당시 한화는 12연패에 빠져 있던 상황.


이럴 때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1군 코치를 물갈이하는 건 드물지 않은 일입니다.


문제는 이들을 대신할 코치 명단을 이날 경기가 끝난 다음에 발표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화는 1군 코치 네 명이 빠진 상태로 이날 경기를 치러야 했습니다.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코치진에게 명확하게 지시를 했던 것도 아닙니다.


코치진은 이날 오전 경기장에 정상 출근했다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 짐을 싸야 했습니다.


어디로 가라는 지시도 없이 그저 '귀가 조치'했을 뿐입니다.


이에 대해 한화 구단에서는 "이날(6일) 오전 (한 전) 감독님이 직접 결정한 사항"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한 전 감독은 이튿날(7일) "결정은 5일 저녁에 났다. (결정 주체에 대해서는) 다른 할 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화 구단 로고. 동아일보DB


그래도 이런 일은 '충격 요법'이라고 칩시다.


인사권자가 인사권을 행사했을 뿐이라고 넘어갑시다.


그러면 한화 프런트는 팀이 이 모양이 될 때까지 어떤 일을 했을까요?


한화는 지난해 11월 20일 실시한 2차 드래프트이해창(33·포수) 정진호(32·외야수) 이현호(28·투수)를 데려왔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지성준(26·포수)과 김주현(27·내야수)을 롯데로 보내고 장시환(33·투수)과 김현우(20·포수)를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에는 롯데에서 방출당한 김문호(33)를 영입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1군에서 타격 기록을 남긴 타자 세 명 현재 성적을 OPS(출루율+장타력) 순서로 정렬하면 이렇습니다.


 이름  타율    출루율  장타력  OPS  홈런  타점
 김문호  .217  .308  .370  .677  2  5
 정진호  .282  .324  .291  .616  0  4
 이해창  .161  .257  .355  .612  2  5


예, 원래 2차 드래프트에서 데려온 선수나 방출 경험이 있는 선수에게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이를 제외하면 도대체 한화 프런트는 전력 강화 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요?


한화는 이날까지 팀 OPS .640으로 10개 구단 가운데 최하위입니다.


한화 구단 고교 팜(farm)이라고 할 수 있는 북일고를 졸업한 장시환. 동아일보DB


그렇다고 투수 쪽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팀 평균자책점 5.96 역시 최하위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장시환은 평균자책점 7.48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40명 가운데 두 번째로 나쁜 기록을 올리고  있습니다.


팔꿈치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을 접게 된 두산 이용찬 한 명만 8.44로 장시환보다 평균자책점이 높습니다.


장시환은 9이닝당 삼진(K/9)이 리그에서 가장 많은 선발 투수인 동시에 9이닝당 볼넷 허용(BB/9)도 가장 많은 선발 투수입니다.


9이닝당 홈런 허용(HR/9) 역시 나쁜 쪽으로 8위입니다.


그러면서 장시환은 상대 타자에게 OPS .982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화 간판 타자 김태균(38)이 지난해까지 17년 동안 뛰면서 기록한 통산 OPS가 .947입니다. 


이현호는 아직까지만 놓고 보면 영입 성공인 게 맞습니다.


 이름  이닝  K/9  BB/9  HR/9  OPS 허용  평균자책점
 장시환  27⅔  11.1  6.9  1.3  .982  7.48
 이현호  9⅔  7.5  1.9  0.9  .606  2.79


그러나 지금 한화에 이렇게 짧게 던지고 내려가는 왼손 투수가 꼭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예, 지난해 이현호를 데려올 때는 올해 이렇게 못할 줄 몰랐을 겁니다.


그리고 이 팀은 사실 항상 그게 문제입니다.


그리고 한화 팬들 마음은 정말 까맣게 타버리고… 한화 제공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한화는 네 차례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프로야구에서는 전년도 순위가 낮을수록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때 우선권을 줍니다.


그런데도 2010년 이후 '한화에서 키웠다'고 할 수 있는 건 이태양(30) 박상원(25·이상 투수) 정은원(20) 하주석(26·이상 내야수) 정도밖에 없습니다.


지역 연고 선수를 선발하는 1차 지명도 처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차 지명 제도가 부활한 뒤 한화는 2014년 황영국(25·투수), 2014년 김범수(25·투수), 2016년 김주현(27), 2017년 김병현(22·투수), 2018년 성시헌(21), 2019년 변우혁(20), 2020년 신지후(19)를 뽑았습니다.


이 가운데 1군 무대에서 (어느 정도) 통하는 선수는 김범수 하나뿐입니다.


심지어 성시헌은 지명 후 1년도 되지 않아 '기량미달'을 이유로 방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화는 "(시즌 후) 현역으로 군입대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난 뒤 야구에 의지가 있다면 구단에서 테스트 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팀은 몰라도 한화는 북일고가 사실상 고교 팜(farm)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뽑을 선수가  없었다'는 핑계는 궁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4년 뉴스 인터뷰에 응한 한화 팬 허대행 씨. JTBC 화면 캡처


한화가 2018년에만 실제 승률과 피타고라스 승률 사이에 차이가 컸던 게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일곱 팀 가운데 두 팀도 2010년대 한화였습니다.


▌1989년 이후 '실제 승률 - 피타고라스 승률' 차이가 제일 컸던 팀 톱 10
 팀  실제 승률  피타고라스 승률  차이
 1991 태평양  .433  .357  .076
 1993 해태  .659  .587  .072
 1996 한화  .560  .491  .069
 2011 한화   .450   .383   .067 
 2014 한화   .389   .322   .067 
 1999 삼성  .562  .500  .062
 2002 KIA  .605  .549  .056
 2018 한화   .535   .479   .056 
 1999 두산  .598  .546  .053
 1994 롯데  .455  .403  .052


2011년 한화 팬들은 응원팀 감독을 '야왕'이라고 불렀고, 2014년 한화는 '마리한화'라는 신조어를 만든 팀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좀 슬펐습니다.


한대화(60) 감독이 2012년 시즌 도중 물러났을 때 쓴 포스트와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도 감독 성(姓)은 한(韓)이었고, 끝내기 승리에 취해 있었고, 실제 승률과 피타고라스 승률 사이에 괴리가 (2018년보다 더) 컸으며, 외국인 선수는 엉망이었고, 약을 먹고 큰 최진행(33)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신인급 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썼던 마무리를 다시 가져와 이 글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선수들뿐 아니라 감독도 (프런트도) 기본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영어로 기본을 뜻하는 Fundamental은 Fun으로 시작해 Mental로 끝난다.


한 전 감독은 꼼수로 재미를 보려고 했고 결국 스스로 무너졌다.


한화 선수들에게는 기본기가 Fun으로 시작한다는 걸 알려줄 지도자가 필요하다.


당장 성적을 내달라는 프런트를 종종 좇아갈 감독하고 시간을 축내서는 큰 곳도 급한 곳도 막지 못할 확률이 높다.


한화가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일립이전(一立二展), 이립삼전(二立三展)하며 한 돌 한 돌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다시 8년이 지나 한화를 돌아본다면 그때는 정말 '아, 이 팀이 이렇게 바뀌었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될까요?


그렇겠죠? 한화는 미래를 보는 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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