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소위 세이버메트리션(야구 통계학자)이 등장하면서 가장 많은 비난에 직면하게 된 공격 전술은 바로 '희생번트'다. 출루, 즉 아웃 당하지 않는 것을 타자의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희생번트는 상대에게 너무도 손쉽게 아웃 카운트 하나를 헌납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자를 한 베이스 더 진루시키는 행위는 아웃 카운트 하나와 바꿀 만한 교환가치가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미 엄청나게 많은 통계 자료가 '희생번트 무용론'을 지지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통계는 물론 국내 자료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일요일(10일) 경기까지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나온 희생번트는 모두 700개. 이 가운데 무사 1루에서 총 499개가 나왔는데 공격 팀은 희생번트 이후 총 377점을 뽑아냈다. 이닝당 평균 0.76점 꼴이다. 반면 희생번트를 대지 않은 나머지 2,136번에선 2,053점이 나와 평균 0.96점을 올렸다. 다득점을 원한다면 확실히 희생번트는 피해야 할 전략인 셈이다.

단 한점만 필요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언급한 총 희생번트 499회 가운데 단 한점이라도 뽑아낸 경우는 모두 216번이다. 비율로 따지면 43.3%다. 강공을 지시한 경우(2,136회)엔 50.3%인 1,074번 득점에 성공했다. 다득점이 필요한 상황이든 승부를 뒤집을 단 한점이 필요한 상황이든 모두 무사 1루에서 번트를 대는 건 득점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확실히 도움이 되지 못하는 선택인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번트는 빈번한 것일까?

범위를 이번 시즌 전체 희생번트 숫자인 700개로 확대해서 알아보자. 이 700번 기회에서 득점과 연결된 경우는 모두 373번에 달한다. 비율로 따지면 53.3%에 달하는 수치다. 희생번트를 대면 2번에 한번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유는 무엇일까? 희생번트가 꼭 무사 1루에서만 발생하는 이벤트는 아니기 때문이다. 무사 1·2루에서도 감독들은 번트 사인을 낸다. 게다가 직접 한 점과 연결되는 스퀴즈 역시 기록상 희생번트다. 이런 점을 두루 고려해 보면 이 결과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팀 득점과 가장 관련이 높은 지표는 OPS다. 현대는 팀 OPS .737을 기록하며 리그에서 가장 높은 기록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평균 득점 1위는 4.43점을 기록한 삼성 차지다. 삼성의 팀 OPS는 .706으로 리그 4위권이다. 그렇다고 득점권에서 삼성 타자들이 유독 더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하기도 어렵다. 득점권에서 삼성 타자들은 OPS .750을 쳤다. 하지만 현대는 이 상황에서 .791이고, 롯데는 .800이나 된다. 유독 삼성 타자들만 득점권 상황에서 '날랐던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실마리는 바로 희생번트에서 찾을 수 있다. 삼성의 희생번트는 76개로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기회 가운데 46번이나 득점으로 연결시켰다. 60.5%에 달하는 확률이다. 이 부분 2위인 KIA의 성공률이 55.4%라고 한다면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팬들은 재미없는 야구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승리에 필요한 만큼만 접수를 뽑고 이후 수비력을 총 가동해 '지키는 야구'를 하는 데 있어 희생번트는 선동열 감독에게 매우 유익한 작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번트라면 김재박 감독도 뒤지지 않는다. 희생번트 139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수치다. 이 가운데 득점과 연결시킨 것은 70번(50.4%)으로 사실 롯데(49.5%)가 아니었다면 꼴찌를 차지할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득점 총량을 알아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김재박 감독은 이 70번을 통해 무려 146점이나 뽑아냈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기록이다. 번트 1회 성공당 득점 역시 2.09점으로 롯데(2.12)에 이어 2위다. 김재박 감독에게 번트는 효율은 떨어지지만, 효과는 확실한 무기였던 것이다.


이처럼 두 감독 희생번트 스타일에는 차이가 난다. 선동열 감독은 번트를 남용하지 않지만 언제 어느 때 번트를 사용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놀라운 성공률이 이를 증명한다. 반면 김재박 감독은 번트를 남용한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확실함을 보장하는 스타일이다. 실제로 현대는 전체 득점 30%가 번트로부터 비롯된 결과다. 두 팀 모두 평균 득점에서 나란히 1, 2위를 달리고 있으니 적어도 번트 무용론에 대해서 이 두 감독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고 하겠다.


사실 '번트 = 재미없는 야구'라는 인식이 야구팬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게다가 통계적 분석 역시 희생번트는 다득점은 물론, 단 한점을 뽑는 데에도 그리 좋은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감독들은 여전히 번트를 댄다. 야구 감독들은 매순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장점을 최대화하는 대신 위험을 최소화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마 그것이 감독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하도록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면피지만, 좋게 보자면 팀이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위험을 줄이고 있다는 얘기다.

야구 팬들이 아무리 번트는 재미없다고 얘기해도 감독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번트가 실제 득점과 맺는 상관관계를 떠나서 근본적으로 '병살타'가 주는 부담으로부터 감독들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한번 번트를 보는 관점을 바꿔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적어도 두 감독의 희생 번트 지시에 어떤 스타일 차이가 있는지 한번 짚어나 보자는 얘기다. 확실히 리그 1~2위 팀 감독인 선동열, 김재박 감독의 번트 스타일에는 확연한 차이가 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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