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 타자를 볼넷이나 실책으로 내보내면, 70% 이상이 실점이죠."8월 22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현대와 한화의 경기를 중계하던 중, 이용철 해설위원이 꺼낸 이야기다. 13구까지 가는 질긴 승부 끝에 이숭용이 볼넷으로 걸어 나갔고, 병살 연결이 실패한 이후 송지만의 홈런이 터진 상황이었다. 정말 저 말은 사실일까?
지난 일요일(20일) 경기까지 모두 6,732 명의 타자가 매 이닝 팀의 첫 번째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이 가운데 어떤 형태로든 출루에 성공한 경우는 모두 2,205번이다. 그리고 이 중 1,041번이 득점으로 연결됐다. 비율로 따졌을 때 47.2%에 해당되는 수치다. 반대로 선두 타자가 출루에 실패한 4,527번 가운데 득점을 올린 경우는 678번, 즉 15.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선두 타자를 잡으면 이닝의 절반을 끝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는 확실히 틀린 소리가 아니었다.
그럼 안타를 맞는 것과 볼넷을 허용하는 것도 이 정도 차이가 날까?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고 루상에 나간 경우는 모두 1,565번이다. 이 가운데 득점으로 연결된 경우는 49.5%(774회)다. 볼넷이나 사사구의 경우는 556번 가운데 41.7%(232회)였다. 실책의 경우 역시 이 비율이 42.3%(78번 가운데 33회)로 그리 큰 차이가 없다. 볼넷, 사사구와 실책을 합친 전체 비율을 알아봐도 41.8%다. 이용철 위원이 70% 이상이라고 이야기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안타를 맞았을 때보다 오히려 실점 확률이 낮은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물론 실책의 경우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볼넷이나 몸에 맞는 볼 등은 주자에게 1루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안타에는 바로 실점으로 연결되는 홈런이 포함돼 있다. 그밖에 장타도 얼마든 나올 수 있는 일이다. 똑같이 한 베이스만 허용하는 단타의 경우 실점 확률은 42.2%로 근소한 차이로 더 낮다. 따라서 위의 이벤트들이 비록 투수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게 만들지는 몰라도, 실제 실점으로 곧장 연결되는 경우가 유독 많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해설위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맞는 것보다 볼넷을 내주는 일이 더 나쁘다는 멘트를 곧잘 듣게 된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오히려 반대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물론 대개 해설위원들은 선수 출신이다. 그리고 이들이 선수 시절 쌓은 경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기억이나 느낌처럼 주관적이고, 왜곡이 심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확실한 사실 두 가지를 깨달았다. 1) 선두 타자는 반드시 잡고 이닝을 시작해라. 2) 선두 타자라 하더라도 안타를 맞는 것보다 볼넷을 허용하는 편이 실점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물론 1)이 충족되는 편이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아울러 자신의 경험에만 100%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많은 해설위원들이 야구팬들의 눈과 귀를 좀더 즐겁게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