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은퇴를 결정한 현대모비스 양동근. 동아일보DB


'현대모비스의 심장' 양동근(39)이 코트를 떠납니다.


31일 현대모비스 구단 소식에 밝은 소식통에 따르면 양동근은 최근 유재학 감독 등 구단 수뇌부와 만나 유니폼을 벗기로 결정했습니다.


양동근은 2019~2020 시즌에도 40경기에 출전해 경기당 평균 10.0 득점, 4.55 도움, 3점슛 1.93개(성공률 36.8%)를 기록하면서 녹슬지 않은 기량을 자랑했습니다.


아직 은퇴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그러나 이 소식통은 "양동근이 시즌 도중에도 이번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겠다는 뜻을 이미 여러 차례 구단에 밝힌 상태였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좀 아쉬운 모양새로 코트를 떠나게 됐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원래 등번호 6번을 달고 뛰던 양동근은 이번 시즌 마지막 6라운드 때는 33번으로 등번호를 바꿀 예정이었습니다.


이 번호를 쓰던 옛 동료 크리스 윌리엄스(1980~2017)를 추모하는 뜻이었습니다.


현대모비스 시절 크리스 윌리엄스. 한국농구연맹(KBL) 제공


양동근과 2006~2007 시즌 우승을 합작했던 윌리엄스는 2017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당시 양동근은 "(숨지기) 이틀 전에도 '꼭 회복하겠다'며 재활 중인 영상을 보냈는데 믿기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이후 양동근은 유니폼 밑단에 항상 'CW33'이라고 적고 경기에 나섰습니다.


하늘이 아니라 코로나19가 두 사람 우정을 갈라놓은 셈입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코로나19 때문에 은퇴식 및 영구걸번식은 2020~2021 시즌 안방 개막전 때 진행하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양동근은 은퇴 후 해외로 코치 연수를 떠났다가 다시 팀에 합류할 계획입니다.


물론 연수 비용은 현대모비스 구단에서 지원한다는 방침입니다.


2004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당시 양동근과 KCC 신선우 감독. 한국농구연맹(KBL) 제공


한양대를 졸업한 양동근은 2004 신인 선수 지명회의(드래프트) 때 전체 1순위로 KCC에서 지명을 받았습니다.


KCC는 2003~2004 시즌 막바지 바셋(43)을 현대모비스에서 빌려오는(?) 대가로 신인 지명권을 내준 상태였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양동근은 현대모비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농구 무대에 데뷔하게 됩니다.


2004~2005 시즌 신인 선수상을 차지한 양동근은 이후 상무에서 뛴 두 시즌 제외하고 이번 시즌까지 14년 동안 현대모비스에서만 뛰었습니다. 


이 기간 현대모비스는 여섯 차례(2006~2007, 2009~2010, 2012~2013, 2013~2014, 2014~2015, 2018~2019)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프로농구 명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양동근도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네 번(2005~2006, 2006~2007, 2014~2015, 2015~2016), 플레이오프 MVP를 세 번(2006~2007, 2012~2013, 2014~2015) 차지하면서 현대모비스는 물론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레전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양동근은 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2014 인천 아시아경기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습니다.


당시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건 현대모비스 유 감독이었습니다.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과 양동근. 동아일보DB


한양대 시절 양동근은 등번호 10번을 달았습니다. 상무에서도 10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프로에서 6번을 달고 뛴 건 유 감독 현역 시절 등번호가 6번이었기 때문입니다.


유 감독은 "양동근을 꼭 최고 선수로 키우겠다는 뜻을 담아 6번을 추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바깥에서도 보는 평가도 비슷합니다. 


한 농구계 관계자는 "유 감독이 있었기에 양동근이 있었고, 양동근이 있었기에 유 감독이 있을 수 있었다"고 평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KCC를 이끌던) 신선우 감독은 신산(神算)이라는 별명처럼 본인이 미리 경기 전체를 계산해 끌고 나가는 편이다. 대신 경기가 계산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허둥대는 면이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반면 유 감독은 만수(萬手) 그러니까 수가 많은 타입이다. 경기 상황에 따라 유기적인 작전을 구사하는 능력이 있다"면서 "이런 스타일 덕에 상대적으로 코트 비전이 좁은 양동근이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다양한 작전이 모두 양동근 없이는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


그 탓에 양동근은 2017~2018 시즌까지 12시즌 연속으로 30분 이상 코트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양동근이 없으면 더욱 팀이 돌아가지 않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유 감독은 "양동근을 쓰자니 선수가 힘들어 하고 쓰지 않자니 경기가 풀리지 않아 나도 고민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후배에게 공을 넘기기로 한 양동근. 동아일보DB


현대모비스는 이번 시즌 18승 24패(승률 0.429)를 기록하면서 8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시즌 중반 2018~2019 시즌 통합 우승 주역인 라건아(31)와 이대성(30)을 KCC로 보내면서 리빌딩을 선언한 상태. 


이런 팀 시장도 양동근이 은퇴 결심을 굳히는 이유가 됐을 겁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 된 양동근은 현대모비스와 1년 4억 원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2018~2019 시즌 연봉(6억5000만 원)보다 38.5%가 깎인 금액이었습니다.


이제 샐러리캡(연봉상한선)에서 이 4억 원마저 빠지기 때문에 현대모비스는 더욱 적극적으로 전력보강에 나설 수 있게 됐습니다.


유 감독은 "이제 동근이가 코트에 없다고 생각하면 벌 써 내 몸 어디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허전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요즘 내 최고 고민은 지도자로 새로 발걸음을 내딛는 동근이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유 감독 장점은 빼닮고 단점은 닮지 않은 지도자 양동근을 기대해 봅니다.


그 동안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