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아사코(朝子)와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피천득 '인연'


네, 테일러(26·미국)하고도 세 번째는 확실히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겁니다. 프로배구 여자부 한국도로공사가 결국 외국인 선수 테일러를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이 "구단과 상의해서 내보내겠다"고 밝힌 지 이틀 만입니다. 단, 흥국생명처럼 곱게 떠나 보내지는 않겠다는 방침입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9일 "(테일러가) 경기에 출전할 의지 자체가 없다고 판단해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남은 월급을 동결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테일러는 계속해 '허리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못 뛰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의 진단 결과 이 통증은 '척추전방전위증' 때문이라고 한다. 척추전방전위증은 운동 선수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질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선수 본인이 아프다니까 4주 동안 휴식을 보장했다. 그런데도 '남은 기간 컨디션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계속해 "그래서 올림픽 대륙별 예선 기간을 포함해 총 8주 동안 휴식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랬는데도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출전하게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선수와 계약을 지속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테일러는 팀이 치른 13경기 가운데 6경기에만 나섰으며 그마저 지난달 20일 이후 다섯 경기 연속으로 경기에서 빠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경기에 나설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라는 경고 서한을 지난 주말 테일러에게 전달했다. 이에 대해 돌아온 답변은 '구단 측 경고는 무효'라는 주장뿐이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두 달치 월급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약 과정에서 흥국생명 시절 전력(前歷)을 감안해 '태업하는 경우에는 전체 연봉 50%를 위약금으로 지급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이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도로공사 심정은 100% 이해가 가지만 실제로 위약금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겁니다. 


제일 큰 이유는 일단 병이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 테일러는 국내 한 유명 병원에서 디스크 증세가 있다는 진단까지 받은 상태입니다.


만약 테일러가 국제배구연맹(FIVB)에 '부상이 맞는데 구단에서 연봉을 주지 않는다'고 제소라고 하게 되면 도로공사 쪽이 더 피곤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확률은 낮지만 FIVB에서 테일러 손을 들어주는 날에는 도로공사가 외국인 선수 세계에서 '월급 주기 싫어서 거짓말한 구단'이라는 낙인이 찍힐 우려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처음부터 인연을 맺지 않는 게 중요했는데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일입니다.



테일러는 2015~2016 시즌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때 3순위로 흥국생명에서 지명받으면서 한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시즌 개막 이후 테일러는 21경기에 출전해 공격성공률 36%를 기록하면서 총 506점(경기당 평균 24.1점)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오른발 발바닥 근육막에 염증이 생겨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습니다.


당시에도 구단에서는 테일러가 뛸 수 있는 상태라고 판단했지만 아프다는 선수를 억지로 출전시킬 방법은 없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연봉 전액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을 딱 채우자마자 테일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는 것. 


여기서 인연이 끝났으면 그나마 서로에게 좋았을 텐데 흥국생명은 2017~2018 시즌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여섯 번째 지명권을 차지하는 데 그치자 또 한 번 테일러를 선택했습니다.


이번에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2017년 8월 4일 팀에 합류했지만 12일 만에 휴가를 신청했습니다. 다시 팀에 합류했지만 7경기 만에 허리와 고관절 통증을 호소하면서 흥국생명을 떠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두 차례 한국을 떠났으니 다시 돌아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테일러는 열심히 V리그를 '씹고' 다녔다고 합니다.


최근 테일러가 V리그와 관련해 부정적인 얘기를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테일러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얘기하는 와중에 V리그에서의 힘든 점을 다른 외국인선수들에게 들려준 모양이다.


테일러에 따르면 V리그는 외국인선수를 엄청 혹사시키는 곳이다. 맞는 말이다. 다른 어느 리그보다 외국인선수 의존비율이 높다. 몰빵 배구를 한다. 또 하나는 오직 배구에만 몰두시키는 환경의 부담이었다. 배구 이외의 다른 생활, 인생도 생각하는 외국인선수의 눈에는 시즌 내내 배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V리그의 훈련과 생활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테일러는 토종 선수들과의 몸값을 비교했다. 많은 토종 선수들이 자신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데 힘든 것은 다 자신이 했다. 경기결과가 나쁘면 그 책임도 졌다는 내용이다. 테일러뿐만 아니라 지금 리그에서 뛰는 다른 외국인선수도 속으로 이런 생각을 많이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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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것도 '계산한 행동'인지 모릅니다. 본인 이야기를 듣고 트라이아웃(공개 선수 평가) 참가 선수가 줄어든 사이 테일러는 당연히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으니까요. 참가 선수 가운데 실력은 최고라는 평을 들었지만 흥국생명 시절을 다들 알고 있기에 테일러를 선택한 구단은 없었습니다. 


이대로 인연이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세상사 알 수 없는 법. 도로공사에서 이번 시즌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뽑은 앳킨슨(24·미국)이 시즌 개막을 앞두고 오른쪽 무릎 인대를 다쳐 전치 4주 진단을 받자 도로공사는 테일러를 데려왔습니다.


도로공사 김 감독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 때 "1, 2라운드를 버리고 다른 선수를 영입할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같이 갈 수 있는 선수를 선택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 처음부터 함께 할 수 있는 선수가 테일러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사석에서 김 감독이 '테일러 어떠냐'고 물었다. 그래서 '설마'했는데 진짜 택할 줄은 몰랐다"면서 "(테일러 때문에 신경을 쓰던) 그때를 생각하면 힘들다. 도로공사 선택을 존중하지만 테일러 때문이라도 도로공사에 이기고 싶은 마음이 더 든다"고 말했습니다.


설마 같은 이유로 도로공사가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팀이 다시 나오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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