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178㎝라면서 왜 이렇게 커?"
"전 진짜 178㎝거든요."
엘리베이터에서 나란히 서게 된 한 후배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실제 키가 178㎝인 남자는 '키가 얼마냐'는 질문에 180㎝라고 말하는 게 보통이니까요.
한 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짤방. 인터넷 캡처
그러면 키 큰 이들이 득시글대는 미국프로농구(NBA)에서는 어떨까요?
NBA에서는 키를 줄이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케빈 듀랜트(31·브루클린)가 대표 케이스. 많은 매체에서 듀랜트를 6피트9인치(약 206㎝)라고 소개합니다.
바스켓볼 레퍼런스 케빈 듀랜트 페이지.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6피트11인치(약 211㎝)인 드마커스 커즌스(29)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보면 듀랜트가 커즌스보다 작다고 평가하기가 어렵습니다.
미국 대표팀 멤버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참가해 나란히 선 당시 드마커스 커즌스(왼쪽)와 케빈 듀랜트. 리우데자네이루=로이터 뉴스1
듀랜드토 자신이 키를 줄였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듀랜트는 2016년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여성에게 이야기할 때 내 키는 7피트(약 213㎝)다. 하지만 농구계에서는 6피트9인치가 맞다"고 말했습니다.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10인치가 아니라 12인치가 1피트입니다.)
듀랜트는 왜 키를 줄인 걸까요?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나는 6피트9인치 스몰 포워드라고 말하는 게 쿨하다고 생각해 왔다. 이 키가 딱 이상적인 스몰 포워드 사이즈다. 이보다 크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아, 그 정도면 파워 포워드를 봐야겠네'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케빈 가넷(왼쪽·공식 키 211㎝) 확실히 샤킬 오닐(216㎝)보다 작다? 동아일보DB
공식 신장이 6피트11인치(약 211㎝)인 케빈 가넷(43) 역시 키를 줄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센터를 봐야 하는 키인데 파워 포워드 기준에 맞췄다는 겁니다. 미네소타 감독을 맡은 첫 해 고졸이던 가넷을 1라운드에 지명했던 플립 손더스(1955~2015)는 생전에 "가넷은 6피트13인치(약 216㎝)"라고 농담하곤 했습니다.
물론 거꾸로 키를 늘이는 선수들도 많습니다.
골든스테이트에서 함께 뛰던 케빈 듀랜트, 드레이먼드 그린, 숀 리빙스턴(왼쪽부터). 동아일보DB
이번에는 지난 시즌까지 듀랜트와 골든스테이트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드레이먼드 그린(29)이 대표 케이스입니다. 그린은 6피트7인치(약 201㎝)로 나와 있는 일이 많은데 실제로는 이보다 2, 3인치 작을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올해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때 뉴올리언스로부터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자이언 윌리엄슨(19)도 공식 신장인 6피트7인치(약 201㎝)가 안 될 것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지 적지 않습니다.
이쪽은 사실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키가 커야 진학이나 프로 팀 입단에 유리할 테니까요.
공식 키가 6피트6인치로 똑같았던 마이클 조던(가운데)과 찰스 바클리. 사진 왼쪽에 보이는 스카티 피펜도 원래 이름은 'Scottie'가 아니라 'Scotty'. 동아일보DB
현역 시절 공식 신장 6피트6인치(약 198㎝)였던 찰스 바클리(56)는 2008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원래 키를 재면 6피트4¾인치(약 195㎝)나 6피트5인치(약 196㎝)나 정도가 나왔다. 그러나 대학에 갈 때부터 6피트6인치가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실제 키를 유추하는 재미(?)가 사라질 전망입니다. NBA 사무국에서 각 구단에 트레인이 기간 동안 선수들 실제 키를 측정해 제출하라고 지침을 내려보냈기 때문입니다.
NBA teams were notified this week that they must certify and submit the precise height and age for every player within the first week of training camp, league sources tell @NYTSports
— Marc Stein (@TheSteinLine) 2019년 9월 26일
그것도 신발을 신지 않고 잰 키(소위 맨발신장)를 내야 합니다. NBA는 드래프트 참가 선수 신체검사 과정에서 키를 두 번 잽니다. 한번은 신발을 벗고 재고 또 한 번은 신발을 신고 잽니다. 선수 프로필에 나오는 키는 신발을 신고 잰 키 그러니까 소위 착화(着靴)신장일 때가 많습니다.
NBA 사무국은 이와 함께 각 구단에 정확한 선수들 생년월일을 제출할 것도 요구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12월 17일 생일을 맞은 버디 힐드(27·새크라멘토)가 공식 프로필처럼 1993년생이 아니라 1992년생이라는 사실을 (엉겹결에) 털어놓은 데 따른 후속 조치입니다.
사실 운동선수 나이는 원래 고무줄 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각 나라 청소년 대표팀에는 참가 가능 연령보다 실제로는 나이가 많은 선수가 즐비하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앞으로 10년은 더 코치 생활이 가능하다는 훌리오 프랑코 코치. SPOTV 화면 캡처
거꾸로 나이가 많아서 진학 또는 입단에 손해를 볼까 봐 나이를 줄이는 일도 흔합니다. 예컨대 올해 프로야구 롯데 타격코치를 맡았던 훌리오 프랑코(61)는 공식 프로필상 1958년생이지만, 그래서 2007년 그가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 현역 생활을 보낼 때 한국 나이로 쉰 살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증언이 차고 넘치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선수 정보를 투명하게 밝히면 리그가 더 재미있어 질까요? 모든 걸 다 밝히는 게 꼭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가넷 키가 정말 얼마인지는 진짜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