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오른쪽 모자에 K 대신 N이 보이는 것 같다면 착시입니다…


결국 2019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는 '키엘라시코'로 치르게 됐습니다.


정규리그 4위 LG는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 5위 NC를 3-1로 물리치고 준PO 진출 티켓을 차지했습니다.


정규리그 3위 키움과 와일드카드 결정전 승리 팀 LG는 6일 오후 2시부터 키움 안방 구장 고척스카이돔에서 준PO 1차전을 치르게 됩니다. 


포스트시즌 경기가 두 팀 맞대결로 열리는 건 키움이 넥센이라는 이름을 쓰던 2016년 준PO 이후 이번이 3년 만입니다. 당시에는 염경엽 넥센 감독이 태업을 벌인 끝에 LG가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올해는 다릅니다. 정규리그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 키움은 LG에 7경기 앞선 채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 전체적인 전력 면에서는 키움이 압도적입니다. 게다가 득점과 실점을 토대로 계산하는 피타고라스 승률을 살펴 보면 차이가 더 벌어집니다.


 구단  승  패  무  승률  득점  실점  피타고라스 승률
 LG  79  64  1  .552  641  633  .506
 키움  86  57  1  .601  780  572  .644


그런 이유로 플레이오프에서는 2년 연속으로 키움(넥센)과 SK가 맞대결을 벌일 확률이 높습니다. '몬테카를로 방법'으로 올해 준PO를 예상해 보면 키움이 승리할 확률이 75%가 넘습니다.



그러나 페넌트레이스가 마라톤이라면 '가을야구'는 100m 달리기이고 단기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정규리그 때는 썩 괜찮은 성적을 올리는 오클랜드가 플레이오프만 되면 힘을 못 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 단기전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은 뭘까요?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 사이트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prospectus·'안내서'라는 뜻)'는 2006년 △투수진 삼진 능력 △훌륭한 마무리 투수 △뛰어난 수비력을 플레이오프에서 승리를 부르는 '비밀 소스'로 꼽았습니다.



삼진 능력은 키움 승!

2019 준PO 1차전 선발이 유력한 키움 외국인 투수 브리검. 동아일보DB


올 시즌 정규리그 맞대결에서 키움 투수진은 LG 타자 603명을 맞아 이 중 99명(16.4%)을 삼진으로 돌려세웠습니다. LG는 이 비율이 14.6%로 키움보다 11% 정도 낮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시즌 전체 삼진율도 키움이 18.1%로 LG(17.2%)에 앞섭니다. 일단 첫 번째 포인트는 키움이 가져갑니다.


이 지점에서 키움이 고무적인 건 1차전 선발이 유력한 브리검(31)이 LG 타자 99명 중 21명(21.2%)을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시즌 평균(19.4%)보다 10% 가까이 높은 기록을 남겼다는 점입니다. 단기전에서 1차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 일. 브리검이 이 기록대로만 던진다면 1차전에 실점 때문에 고민할 일은 없을지 모릅니다.


반면 상대 타자 가운데 18.9%로부터 삼진을 빼앗던 요키시(30)는 LG를 상대로는 삼진율 11.1%를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게다가 전담포수 박동원(29)마저 오른쪽 무릎 인대 부상으로 정상 출전이 어려운 상황. LG에서 키움 타자 17.2%를 삼진으로 잡아낸 차우찬(32)에게 선발 마운드를 맡긴다고 예상하면 2차전은 쉽지 않은 승부가 될 수 있습니다.


2차전에서 밀리면 3차전은 더 어렵습니다. 키움에서는 최원태(22) 또는 이승호(20) 카드를 꺼낼 텐데 어느 쪽이 됐든 LG 켈리(30)를 상대하기는 버거운 게 사실. 5월 28일 고척 경기에서 켈리는 비록 패전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6이닝 동안 2실점밖에 하지 않았고 삼진은 5개를 잡았습니다. 전체 기록에서는 최원태가 앞섰지만 이승호가 LG를 상대로 강한 면모(평균자책점 1.93)를 선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3차전 선발로 이승호가 나선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4차전이 열리게 된다면 이번에는 키움이 6 대 4 정도로 유리합니다. 키움에서는 최원태와 이승호 가운데 3차전에 쓰지 않은 카드를 쓸 수 있는 반면 LG는 윌슨-차우찬-켈리를 제외하면 믿을 만한 선발 자원이 부족합니다. 제일 유력한 4차전 선발 후보는 정규리그 때 3승 5패 평균자책점 4.97을 기록한 임찬규(27). 그렇다면 LG는 소위 '불펜 데이'로 경기를 치를 확률이 높습니다. 이때는 차우찬 또는 윌슨이 불펜에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키움이 초반에 무너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경기 중후반에 승부가 갈릴 수 있습니다.


5차전은 열릴 일이 없기를 바라며 생략.



마무리 투수는 무승부!

2019 시즌 34세이브로 SK 하재훈(36세이브)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린 LG 고우석. 동아일보DB


마무리 투수 개인 능력만 보면 LG가 앞서 있는 건 사실입니다. LG 마무리 고우석(21)은 상대 타자 26.8%를 삼진으로 잡아낸 투수입니다. 키움 마무리 오주원(34)의 삼진율은 18.4%. 승리 기댓값(WP·Win Probability)을 얼마나 끌어 올렸는지 알려주는 WPA(WP Added)를 살펴 봐도 고우석이 3.58로 오주원(1.33)에 크게 앞섰습니다.


단, 키움 불펜에는 마무리 투수 경험이 있는 김상수(31)와 조상우(25)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김상수는 올해 정규리그 때 LG 타자 29.6%를 삼진으로 잡아낸 투수고 조상우는… 조상우입니다. 조상우는 오른손 투수, 오주원은 왼손 투수라는 특징을 살려서 상대 타순에 따라 등판 타이밍을 조절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고우석이 가을야구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도 LG에 불안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고우석은 와일드카드 결정전 때도 9회에 마운드에 올라 첫 타자 박민우(26)는 잡아냈지만 이후 안타-볼넷-안타를 내주면서 만루위기를 자초하기도 했습니다. 또 9월 22일 두산전 때 8회말 마지막 타자였던 정진호(31)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19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삼진을 하나도 잡지 못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고우석은 원래 상대 타자 3.7명마다 삼진을 하나씩 잡는 투수입니다.


종합하자면 시즌 전체 성적을 놓고 보면 마무리 투수를 일대일로 비교하면 LG가 우위에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키움에는 마무리 투수로 기용할 수 있는 투수가 최소 3명 있다는 것 그리고 고우석이 최근 구위가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무리 투수는 어느 팀이 더 낫다고 결론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무승부!



수비력은 LG 승!

LG 외국인 투수 켈리가 호수비를 선보인 김민성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모습. 동아일보DB


수비는 키움보다 LG가 낫습니다. 범타처리율(DER)을 기준으로 하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LG는 정규시즌에 DER .699를 기록하면서 리그에서 세 번째로 좋은 성적을 거둔 반면 키움(.685)은 7위에 그쳤습니다. 일단 타구가 필드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는다면 LG가 더 수비를 잘하는 겁니다.


사실 키움은 지난 오프시즌 김민성(31)을 내보낸 뒤 여전히 붙박이 3루수를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사실 준PO는 물론 포스트시즌 기간 군 제대 후 합류한 김웅빈(23)이 3루수로 나선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또 2루수 김혜성(20)이 지난해 PO 5차전 때 얻은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왼손 타자가 즐비한 LG 타선을 생각하면 김혜성의 수비 실수 하나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LG도 고민이 없는 건 아닙니다. 외국인 선수 페게로(32)에게 1루수를 맡기기는 미덥지 못한 게 사실. 현실적으로 김현수(31)가 주전 1루수로 출전할 확률이 높습니다. 가뜩이나 가을야구에 약한 김현수(포스트시즌 통산 타율 .268)에게 수비 부담까지 안기는 건 방망이를 더욱 무겁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LG는 도루 저지에도 약점이 있는 팀. 올해 LG는 10개 구단 가운데 도루 저지율(25.3%)은 두 번째로 낮고, 도루 허용(121개)은 제일 많았습니다. 거꾸로 키움은 리그에서 도루 성공률(76.9%)은 제일 높고, 도루 성공(110개)은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준PO 때는 LG에서 견제 시도를 많이 할 확률이 높은데 여기서도 실수가 나올 수 있습니다.



키 플레이어는 누구?

박병호. 동아일보DB


키움은 당연히 박병호(33)입니다. 박병호 역시 가을야구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는 게 사실. 실제로 지난해까지 포트시즌 통산 OPS(출루율+장타력)가 .792로 정규리그 통산 기록(.979)보다 .187 낮은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한 방'이 있는 타자는 언제든 상대팀에 위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PO 5차전에서 보여준 것처럼 말입니다.


박병호가 208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팀이 7-9로 끌려가던 9회초 2사 2루에서 동점 홈런을 치는 모습. SBS 중계 캡처


또 왼손 타자가 많은 LG 타순을 고려하면 김혜성과 마찬가지로 수비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을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다른 내야수 송구가 어긋나더라도 잘 잡아줘야 하는 건 물론 본인도 수비 영역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박병호는 생각보다(?) 수비를 잘하는 선수라 믿습니다!


LG에서는 김민성을 꼽겠습니다. 지난해 넥센(현 키움) 주장이었던 김민성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LG로 옮긴 첫 시즌이었던 올해 키움을 상대로 .352/.386/.463을 쳤습니다. 김민성은 올 시즌 전체 OPS가 .694였는데 키움을 만나면 .849가 됐습니다. 손인호(44·통산 OPS .693)가 가르시아(44·통산 .849)로 바뀌는 차이입니다.


LG 주전 포수 유강남(27)도 요주의 대상입니다. 유강남은 올해 키움을 상대로 .350/.422/.500을 쳤습니다. 특히 정규리그 마지막 안방 경기 때 3점 홈런을 때려내면서 키움이 3위로 시즌을 마치도록 만든 치명타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상대 포수를 기분 좋게 하지 말라'는 건 오랜 야구 격언. 키움은 유강남을 흔들어야 승부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습니다.



What the crystal ball says


LG는 지금까지 5번 준 PO에 진출해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이 가운데 네 번은 4위로 준PO를 치렀는데도 그랬습니다. 개별 경기 승률도 .800(12승 3패)입니다. 거꾸로 키움은 네 번 준PO에 올라 딱 한 번밖에 PO행 티켓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가을야구에 제일 큰 영향을 끼치는 세 가지 '비밀 소스'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올해는 두 팀간 기본 전력 차이가 이런 요소를 모두 상쇄할 만큼 큽니다. 7경기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제 아무리 키엘라시코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결과를 그대로 예상합니다. 키움이 3승 1패로 PO행 티켓을 따낼 겁니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