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현대 유니콘스 코칭 스탭은 최근 몇 년간 마무리 투수 문제로 고민할 일이 없었다. '조라이더' 조용준 선수가 뒷문을 확실히 책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부상과 재활로 '06 시즌 전반기 출장이 불투명해지자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 '황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리그 최고 수준의 '믿을 맨'으로 활약했던 황두성을 마무리로 돌렸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선택된 선수가 바로 잠수함 투수 박준수다.

다른 팀 팬들에겐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박준수 선수, 그러나 현대 팬들은 짐짓 여유 있게 '예정된 이변'이라 표현하고는 한다. 실제로 그의 지난 시즌 후반기 투구를 직접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평가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미 4강과 4약이 갈려 4약 팀들에 대한 관심이 주춤했던 그때, 박준수는 조용히 자신의 실력을 야구팬들에게 어필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싱커를 주무기로 하지 않는 사이드암 박준수, 도대체 그는 언제부터 이렇게 위력적인 구위를 선보이게 된 것일까?

KBO나 각종 포털 사이트를 뒤지면 다음과 같은 박준수 선수의 기록을 찾을 수 있다.



42이닝 투구에 방어율 3.86, 무심히 지나갈 만한 기록이다. ‘04 시즌에는 더 심했다. 겨우 1군 무대에서 겨우 1 2/3이닝밖에 투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1군 기록을 통째로 찾아봐도 사정은 다를 게 없다. 총 9 2/3이닝 투구에 7자책점(방어율 6.52), 삼진 8, 볼넷 6, 피홈런 2, 이것이 그의 1군 기록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 해 걸러 한 해씩 마운드에 오른 지 어느 덧 7년째 하지만 그의 '05 시즌 시작도 그리 순조롭지 많은 않았다.

지난 해 6월까지 그는 1군 무대에서 9 1/3이닝을 던지면서 무려 12점이나 실점했다. 그 가운데 자책점은 11점, 방어율은 10.61이나 됐다. 두 개의 홈런을 얻어맞았는데 공교롭게도 두 방 모두 만루홈런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투수에게는 결코 칭찬이 아닌 '만루홈런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아무도 모르게 유니콘스의 2군 훈련장이 있는 원당으로 향했다.

그 후 두 달이 지나서야 그는 다시 1군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이미 소속팀 현대의 '가을야구行'이 실패로 끝난 8월 18일이 일이었다. 그는 곧바로 그 경기에서 자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4이닝 동안 볼넷과 단타 하나만을 허용하며 무실점으로 LG 타선을 꽁꽁 틀어 묶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의 새로운 역사가 씌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시즌이 끝날 때까지 그는 32 2/3이닝을 던지면서 삼진을 무려 38개나 솎아냈다. K/9로 환산할 때 10.47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기록이었다. 이 기간 동안 볼넷은 겨우 6개밖에 내주지 않는 뛰어난 제구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K/BB 6.33) 출루 허용률 또한 .417에서 .242로 급격하게 낮아졌다. 그 결과 후반기 WHIP은 0.95밖에 되지 않았다.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투수가 되어 다시 1군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이미 그는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조용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팀 성적, 그리고 비인기 구단에서 뛴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은 언제든 튀어 나오게 마련이다. 팀의 위기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박준수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주어진 최고의 기회임을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2일) 경기에서 또 하나의 세이브를 추가하며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황두성의 부상으로 인해 비교적 갑작스럽게 마운드에 오른 데다, 지석훈의 수비 실책이 겹치며 다소 불안한 모양새를 보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투구를 계속했기에 경기를 끝낸 유한준의 호수비가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

자신의 구위 그리고 팀 동료의 수비력에 대한 믿음이야 말로 마무리 투수가 진정 갖춰야할 자세다. 게다가 자신이 지켜내지 못한 선발승에 대한 미안함까지 갖추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 모두를 갖추고 있는 선수가 바로 박준수다. 그래서 박준수 '잠수함'의 순항은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랜 투병과 재활을 딛고 수원 구장의 수호신으로 떠오른 그의 멋진 활약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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