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프로야구가 개막한 지 한 달이 흘렀다. 관중들은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찾아 목청껏 소리쳤고, 선수들 역시 그라운드에서 있는 힘껏 뛰었다. 그리고 이 한 달이라는 시간은 꽤 믿을 만한 양(量)의 표본을 남겼다. 한번 2007년 4월의 프로야구를 숫자로 되짚어 보자.
- 타자들에게 유리하도록 몇 가지 조정을 거쳤음에도 투고타저는 여전하다. 4월달 리그 타자들의 평균 타격 라인은 .251/.331/.351밖에 되지 않았다. GPA로 환산했을 때 .237에 해당되는 기록이다. 지난해 4월 평균(.229)보다 나아진 수치이기는 하지만 재작년 .259의 기록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 장원삼은 0.28의 방어율로 4월을 마감했다. 지난 시즌 4월 방어율은 1.27마저 훌쩍 뛰어 넘는 수치. 피홈런은 단 한 개도 없었으며, K/9 8.44, K/BB 2.31로 모두 안정적이다. FIP 2.01 역시 장원삼이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점을 지지해주고 있다. 물론 현재와 같은 0점대 방어율이 유지되리라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확실히 4월 최고의 투수는 장원삼이었다.
타격에 있어서는 이대호, 양준혁, 크루즈의 3파전 양상이다. 개막과 동시에 이대호(GPA .402)가 먼저 파괴력을 과시하며 부상했지만, 양준혁(.336) 또한 녹슬지 않는 기량을 과시하며 홈런 1위(7개)로 4월을 마감했다. 한화의 새 외국인 선수 크루즈(.367)는 타격에 있어 데이비스의 공백을 느끼지 않는 활약을 펼쳐줬고, 김동주(.343) 역시 다시 두산의 든든한 4번 타자로 돌아왔다. 타율(.418) 출루율(.530)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숭용(.365)의 불방망이 역시 4월을 뜨겁게 달궜다.
- SK는 지난해 4월과 마찬가지로 .667의 승률로 1위를 차지했다. 피타고라스 승률 역시 .593으로 굳건히 1위다. 경기당 평균 4.05점의 실점은 결코 적은 편이 못 되지만, 리그 평균(3.95점)보다 1점이나 높은 득점력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그래프 1> 각 구단별 득점 - 실점 분포
'00 시즌 이후 4월달에 1위를 차지한 팀 가운데 단 한 팀을 제외하고 모두 한국 시리즈 정상 등극에 성공했다. 그 한 팀이 바로 지난 시즌의 SK 와이번스였다. 올해는 어떤 역사를 써나갈지 지켜보는 것 역시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 또 하나 흥미로운 기록을 보여주는 팀은 바로 KIA 타이거즈다. KIA는 경기당 3.43점밖에 뽑아내지 못하는 빈곤한 공격력으로 시즌을 꾸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실점 역시 3.71점으로 가장 적다. 그 근간에 자리잡은 것은 .750의 기록으로 압도적인 1위를 보이고 있는 DER의 힘이 컸다. 반면 투수력은 정확히 리그 평균 수준밖에 못 된다.
<그래프 2> 각 구단별 FIP - DER 분포
서튼(GPA .320)은 제 몫을 해주고 있지만, 이재주(.277)는 최근 부진의 늪에 빠졌다. 장성호(.237)와 이용규(.179)는 깊은 침묵에 잠겼고, 이종범(.155) 역시 예전의 괴물을 떠올리기 쉽지 않은 모양새다. 홍세완(.270)이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답이 안 나오는 타선이다. 달리 말해, 최희섭의 복귀에 있어 최적의 호기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표 1> 구단별 실제 승률과 피타고라스 승률(PW%)
- 피타고라스 승률과 실제 승률간의 차이가 가장 큰 팀은 두산이다. 그리고 승률 .477은 전체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러니까 두산이 계속해서 8위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특히 이대수의 영입을 통화 내야 수비 강화에 나섰다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두산은 4월내 .698의 DER로 리그에서 최하위에 머물렀다. 손시헌의 공백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지난 시즌 두산의 DER은 .713으로 전체 3위였다. 덕분에 2.91의 FIP로 1위를 차지하고도 평균 이하인 4.00 실점에 그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이대수의 영입은 김경문 감독이 두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한 올바른 조취라고 할 만하다. 물론 팬들의 생각이 이와 똑같을지 의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 롯데의 공격 패턴 역시 다소 신비하긴 마찬가지다. 출루율 .349는 SK(.351)에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이다. 평균 득점 역시 4.62점으로 2위. 하지만 파워(ISO)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현대(.084)와 함께 공동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역시나 호세의 영향이 크다.
지난 시즌 4월 호세는 GPA .292를 쳤다. 비록 '01 시즌에 보여줬던 .400에는 모자란 수준이었지만 충분히 준수하다는 평가는 내릴 수 있던 성적이었다. 하지만 .234의 기록은 확실히 롯데 팬들이 호세에게 기대하는 수치가 못 된다. 롯데는 피타고리안 승률 2위 팀, 이 성적으로 치고 올라가기 위해서는 호세의 각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그래프 3> 구단별 출루율 - ISO 분포
- LG의 공격 패턴 역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LG는 .526의 승률로 공동 2위를 내달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475밖에 안 되는 피타고라스 승률은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타자들이 출루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팀 타율 .255는 전체 3위의 준수한 기록이다. 하지만 볼넷 하나를 얻어내는 데 13.5 타석씩 걸린다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리그 평균은 10.7 타석당 하나다. 작년에도 이 팀 타자들은 14.3 타석당 볼넷 하나로 리그에서 가장 나쁜 수준에 머물렀다.
야구에서 공격은 덕아웃에 빨리 들어가면 갈수록 나쁜 결과를 낳는다. 그 점에 있어 LG 타자들은 올해도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는 얘기. 잠실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파워(ISO .106)는 나쁜 편이 아니다. 참을성을 기르는 것, LG가 김재박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숙달해야 할 일이다.
작년엔 SK, 재작년엔 롯데, 2004년 한화, 2003년 기아, 2002년 다시 한화, 2001년엔 SK 등이 바로 불운의 주인공이었다. 올해 역시 같은 패턴이 반복될까? 그렇다면 그 팀은 어떤 팀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역사가 씌어질까?
이번 시즌은 팀간 전력이 평준화돼 여느 해보다 더욱 흥미진진한 4월이었다. 그리고 남은 프로야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 기록에 관해
GPA는 Gross Production Average의 약자로 (출루율×1.8+장타율)÷4로 계산된다. OPS가 출루율과 장타율을 1:1로 더함으로써 생기는 장타율의 과대평가를 막기위한 메트릭. 무엇보다 타율과 유사한 범위의 값을 통해 직관적인 판단이 가능한 게 장점이다.
FIP는 Fielding Independent Pitching의 약자로 전체 실점 가운데 투수가 책임져야 할 점수를 보여주는 메트릭이다. 보로스 맥라켄이 주장한 DIPS(Defense Independent Pitching Stat.)의 수학적 원리만을 뽑아 Tango Tiger로 알려진 세이버메트리션이 창안해 냈다. 공식은 FIP = ( 13 × 홈런 + 3 × 사사구 - 2 × 삼진 ) ÷ 이닝 + 보정용 상수
DER은 Defense Efficiency Ratio의 약자로 인플레이된 타구(Balls In Play) 가운데 몇 %가 아웃으로 처리됐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상대 타자가 10개의 공을 때려 그라운드 안에 공이 머물고 있을 때 이 가운데 3개만 안타로 연결됐다면 나머지 7개의 타구, 즉 70%의 타구가 아웃으로 처리된 것이다. 이 경우의 DER은 .700이다. 공식은 DER = ( 상대 타자 - 안타 - 삼진 - 사사구 - 에러로 인한 출루 허용) ÷ ( 상대 타자 -홈런 -삼진 -사사구 )
ISO는 ISOlated Power의 약자로 장타율에서 타율을 뺀 값이다. 이는 장타율에 타율이 개입된 점을 고려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3타수 3안타를 모두 단타로 기록한 선수는 타율과 장타율이 모두 1.000이다. 실제 장타는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이 경우 ISO는 .000으로 해당 선수에게 장타 능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피타고라스 승률은 팀의 득점과 실점을 바탕으로 계산된 팀의 예측 승률이다. 일반적으로 득점^2/(득점^2+실점^2)의 공식을 사용해 계산된다. 여기서는 지수에 2대신 X=0.45+1.5×log10((득점+실점)/경기)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