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경기에 등판한 노아 송. 뉴욕타임스 제공


노아 송(22)은 대학 4학년이던 이번 시즌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1부 리그 경기에 총 14번 선발 등판해 11승 1패, 평균자책점 1.44를 기록했습니다. 


이 14경기 94이닝 동안 송은 시속 95마일(약 153㎞)이 넘는 빠른 공과 슬라이더, 커브를 섞어 던지며 삼진을 총 161개 잡았습니다. 9이닝 기준으로 환산하면 15.4개에 해당하는 기록.


그렇다고 볼넷이 많았던 것도 아닙니다. 송이 내준 볼넷은 31개가 전부. 삼진 대 볼넷 비율 5.19는 '끝판왕' 오승환(37·현 콜로라도)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남긴 기록(5.21)과 별 차이가 없는 수준입니다.


미국야구협회(USA Baseball)도 그가 야구를 얼마나 잘하는지 잘 압니다. 송은 미국 대학 최고 야구 선수가 받는 '골든 스파이크상' 올해 최종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상태. 그와 함께 앤드루 본(21·버클리캘리포니아대), 애들리 러치맨(21·오리건주립대·포수),  J J 블레데이(22·반더빌트대·외야수)가 이 상을 놓고 경쟁 중입니다. (결국 러치맨이 탔습니다.)


2019 골든 스파이크상 최종 후보 4인. 미국야구협회 홈페이지


3~5일(이하 현지시간) 열린 올해 메이저리그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때도 이들에 대한 관심이 쏟아진 게 당연한 일. 러치맨은 전체 1순위로 볼티모어, 본은 3순위로 시카고 화이트삭스, 블레데이는 4순위로 마이매이에서 각각 지명받았습니다.


그러면 송이 다섯 번째였을까요? 아닙니다. 보스턴에서 송을 선택했을 때는 이미 136명이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지명 통보를 받은 다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유망주가 드래프트에서 전체 137위에 그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문제는 유니폼 등에 있는 이름이 아니라 가슴에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송이 지난 4년을 보낸 곳은 미국 해군사관학교(USNA)였습니다. 송은 졸업 후 해군 소위로 임관해 의무 복무 기간을 채워야 합니다. 대학 선배이자 1987년 미국프로농구(NBA)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 데이비드 로빈슨(54)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USNA를 졸업한 야구 선수 그 누구도 올해 송보다 높은 순위로 메이저리그 팀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5월 24일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 있는 USNA에서 열린 졸업식 때 송과 부모님. ESPN 홈페이지


송은 1997년 5월 28일 한국계 아버지 빌 씨와 어머니 스테이시 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Song이 아니라 송(宋)씨인 것. 아버지는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대입니다.


캘리포니아주 포모나에서 나고 자란 송은 대학에 가서도 야구를 하고 싶었지만 NCAA 1부 리그 소속 학교 가운데 그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는 곳은 USNA밖에 없었습니다. 송은 장고(長考)에 들어갔습니다. 부모님은 그에게 "의무 복무 기간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졸업 후에는 확실한 일자리를 하나 보장받는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송은 이 조언을 받아들여 USNA에 입학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송은 ESPN 인터뷰에서 "USNA 진학 소식을 들은 야구부 친구들이 '드래프프트에는 나갈 수 있는 거야?' 'USNA에 가도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는 거야?'하고 묻기 바빴다"면서 "그럴 때마다 나는 'USNA에 간다는 건 이미 메이저리거가 되겠다는 꿈 같은 건 마음에서 내려놓는 일'이라고 설명하기 바빴다"고 말했습니다.


현재까지 USNA를 졸업하고 메이저리거가 된 건 니모 게인즈(1897~1979)와 미치 해리스(34) 두 명뿐입니다. 게인즈는 복무 기간 중 특별 휴가를 얻어 1921년 워싱턴 유니폼을 입고 4경기에 출전한 게 메이저리그 경력 전부고, 5년간 함정 장교로 복무한 해리스도 2015년 세인트루이스 구원 투수로 26경기를 소화한 뒤로 다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지 못했습니다. 탬파베이 투수 올리버 드레이크(32)도 USNA를 다니긴 했지만 2학년을 마치고 자퇴한 케이스.


5년 의무 복무를 끝내고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 USNA 졸업생 미치 해리스. 세인트루이스=AP뉴시스


송 역시 2학년을 마치고 메이저리그에서 지명을 받을 뻔했습니다. 송은 당시 유서 깊은 대학 여름 리그인 케이프 코드 리그에 초청 받아 뛰면서 메이저리그 팀으로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약금으로 100만 달러(약 11억8000만 원)를 줄 게 아니면 나를 지명하지 말라"고 스카우트를 설득하고 다녔습니다. 송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내가 USNA 졸업장에 부여한 가치가 그 정도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USNA는 3학년이 되기 전에는 자퇴를 선택한다고 해서 불이익이 따르는 건 아닙니다. 3학년으로 '진급'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3학년 첫 날 UNSA 생도는 '2-for-7' 서약지에 서명을 합니다. '2-for-7'은 앞으로 2년간 더 USNA에서 교육을 받고 그 뒤로 5년간 복무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서약 후 자퇴하면 그때까지 받은 경제적 혜택을 모두 물어내야 합니다. 단, 2년간 지상에서 근무한 뒤 예비역으로 전역(轉役)해 NBA 코트를 밟은 로빈슨 사례처럼 꼭 5년을 현역으로 채워야 하는 건 아닙니다.


송이 복무를 시작하는 건 11월 1일. 그 전까지는 보스턴 산하 싱글A 팀에서 프로야구 선수로 뛰어도 됩니다. 대신 미리 약속한 날짜가 되면 플로리다주 펜서콜라에 있는 미 해군 비행학교로 가서 항공 장교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송은 원래 구조 헬기 조종사를 꿈꿨지만 키(193㎝)가 너무 커서 조종사 교육 과정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송은 헬기에 탑승하지만 직접 조종은 하지 않는 특기 가운데 하나를 맡을 예정입니다. 그 뒤로 최소 2년간 해군 장교로 복무해야 합니다.



사실 한국에서 많은 선수가 현역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프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걸 보면 2년 동안 실전 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게 아주 극복 불가능한 미션은 아닙니다. 거꾸로 쉬운 일도 절대 아니지만 말입니다.


폴 코스타코풀로스 USNA 투수 코치는 "송은 먼저 장교로 성실하게 복무를 마쳐야 하고 그 다음에 프로 운동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두 가지 임무를 부여 받았다. 그가 어떤 해법을 찾아낼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며 "아주 특별한 사람만 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바로 그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시 누군가의 꿈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송은 과연 이 임무를 어떻게 마치고 어떤 꿈이 될 수 있을까요?



댓글, 0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