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류현진이 또 혹사 논쟁이 휘말렸다. 사실 등판할 때마다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엔 정도가 좀 심했다.한기주와의 신인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청주 경기에서 무려 130개의 공을 던진 것이다. 130개의 투구수는 이번 시즌 선발 투수가 던진 것 가운데 가장 많은 투구수다.

토요일 경기까지 선발 투수들은 평균 89개의 공을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것과 비교하자면 130개의 투구수는 정말 엄청난 기록이다. 일반적으로 선발 투수의 한계 투구수를 100개라고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혹사 정도를 수치로 표현할 수는 없는 걸까?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바로 PAP다. PAP는 Pitcher Abuse Points의 약자다. 투수가 혹사된 정도를 수치로 환산한 점수다. 계산법은 아주 간단하다. 100개를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떠난 경우의 PAP는 0이다. 101개부터 110개까지는 투구 하나당 1점을 부여한다. 111개부터 120개까지는 2점이다. 이런 식으로 10개 단위로 150개까지 끊어서 계산한 다음, 그 이상은 무조건 6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토요일 류현진은 130개의 공을 던졌다. 101구부터 110구까지의 투구수 10개로 10점, 111구부터 120구까지의 10구로 20점, 121구부터 130구까지의 10구로 30점, 이렇게 모두 60점의 PAP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번 시즌 누적 PAP 상위 10걸을 구해보면 다음과 같다.


류현진만 유독 많은 점수가 기록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한 경기에서 많은 공을 던진 일이 많았다는 뜻이다. 14번의 선발 등판 가운데 류현진이 100개 이하로 공을 던진 적은 세 번뿐이다. 가장 적은 투구수라고 해봤자 89개나 된다. 경기당 평균 비율에 있어서도 16.6으로 높은 혹사도를 기록한 건 바로 그런 까닭이다.

물론 류현진이 좋은 경기 내용을 보여준 것이 가장 큰 까닭이다. 다승, 방어율, 탈삼진 등 소위 트리플 크라운 부문에서 모두 1위다. 게다가 최영필마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현재 류현진의 뒤를 받쳐줄 만한 투수도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구대성과의 연결 고리를 찾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그래서 얼핏 팀 사정상 류현진에게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건 있을 수도 있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류현진 역시 80개의 투구수를 기준으로 투구 내용에서 차이가 난다. 80개 미만의 공을 던진 경우 상대 타자들은 .194/.250/.259밖에 때리지 못한다. GPA로는 .177밖에 안 되는 기록이다. 하지만 80개 이상일 경우엔 .258/.310/.387이다. 물론 .236의 GPA 허용은 나쁜 기록은 아니지만, 25%나 기록이 나빠지는 건 문제다. 투구가 누적될수록 상대 타자들 역시 류현진의 공에 적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패턴을 보건대, 시간이 흘러 류현진의 몸에 피로가 쌓이면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될 걸로 보여서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류현진은 폼 자체에 큰 무리가 없는 편이다. 따라서 많은 투구수를 던져도 크게 탈이 날 것처럼 보이지 않기도 한다. 게다가 팔꿈치를 비틀어 슬라이더를 던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92 시즌 염종석의 경우보다는 부상의 위험이 덜할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체인지업을 연마해 팔의 무리를 줄이는 법 역시 터득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공을 던지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이상한 버릇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미 부상 경험을 안고 있는 어린 투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무리 괴물, 괴물하지만 이제 그는 겨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 투수일 뿐이다. 게다가 고교 시절 이미 수술을 겪기도 한 부상 전력을 안고 있다. 위력적인 구위기는 하지만, 그 역시 공을 많이 던질수록 기록이 떨어진다. 게다가 등판 간격마저 꽤 빡빡한 편이다. 19살 짜리의 어깨에 너무 많은 짐이 얹혀진 모양새다. 이런 선수에게 팀 사정상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가혹한 발언처럼 들린다.

지금의 센세이션은 가히 놀랄 정도다. 하지만 데뷔 시즌의 반짝 성적이 자신의 커리어 하이인 투수들을 야구팬들은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다. 그럴 때마다 혹사 이야기가 들려와 많은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는 한다.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등판 일정 조정, 그리고 엄격한 한계 투구수 제한 등으로 류현진의 어깨가 오랫동안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런 괴물은 정말이지 오래 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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