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이번 시즌이 개막하기 전에 한 사이트(http://www.foulball.co.kr)에 각 팀의 키워드는 무엇이 될지 한번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상 전반기가 끝난 현재, 과연 그 키워드들이 얼마나 들어맞았는지 점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한번 적어봅니다.

8. 기아 타이거즈 ; 그린 몬스터

지난해 광주 구장의 홈런 팩터는 140으로 보조 구장을 포함한 12개 구장 가운데서 가장 높았다. 하지만 이번 시즌 현재까지 홈런 팩터는 98로 투수 친화적인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득점 팩터는 지난 해와 올해 모두 105로 차이가 없다는 점에 비춰볼 때, 확실히 그린 몬스터는 이 구장에서 벌어진 야구의 스타일을 바꾸어 놨다.

하지만 이 팀의 FIP는 3.58로 5위다. 넓어진 구장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한기주는 사실 못했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기대에는 확실히 못 미친다. 곽정철은 제대로 자신의 이름을 팬들에게 알리지 못했고, 장문석 역시 마무리로서 성공적인 모습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진우는 올해 역시 건강하게 한 시즌을 치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들이 바로 유리한 구장 효과를 상쇄하게 된 것이다. 윤석민만이 홀로 고군분투했을 뿐이다. 하지만 피로 누적에 관해선 윤석민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한기주가 어떤 모습으로 1군에 복귀할 수 있느냐, 장문석 선발과 그로 인해 생긴 마무리 공백을 윤석민이 어떤 모양새로 막아주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진우는 당연히 건강해야 하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다. 후반기엔 스캇과 조경환의 활약도 주목해 볼 만하다. 분명 이 구장을 홈으로 쓸 때 필요한 건 플라이볼을 날려줄 타자가 아니라 라인드라이브형 타자다. 두산과 기아는 똑같이 31개의 팀 홈런이지만 그 영양가가 달랐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시간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7. 현대 유니콘스 ; 대수비

홍원기의 영입으로 내야의 운영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채종국이 부상으로 경기에서 빠진 가운데 홍원기 효과는 사실 원하는 수준으로 얻어냈다. 뿐만 아니라 차화준의 성장은 대타로서 강병식의 기용을 원활하게 해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현대는 현재까지 .685의 DER에 머물러 있다. 한창 잘 나갈 때 투수력의 위력에 감춰져 있던 수비력 불안이 노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타격은 뛰어나지만 치고 나가지 못했다.  

이택근의 포지션 정착도 언급했었다. 현재 이택근은 주전 중견수로 자리잡으면서 .333/.395/.522의 타격 라인을 기록중이다. 타격은 1위지만 출루율이 타율에 비해 아쉬운 게 사실이다. 좀더 참을성만 갖춘다면 분명 좀더 위협적인 모양새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택근뿐 아니라 전체적인 타선은 원활하게 돌아가는 편이다. 결국 투수진이 초반처럼 크레이지 모드가 될 수 없다면, 수비를 어떤 식으로 끌고 가느냐가 후반기의 관건이 될 것이다. 현명한 코칭 스탭의 원활한 선수 기용을 기대해 본다.


6. LG 트윈스 ; 이름

물론 선택된 키워드는 '두산'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순철'이 좀더 적합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제 이순철은 이 팀의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양승호 체제로 초반 반짝 성적을 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팀은 꼴찌로 내려앉았고, 이 팀은 이제 리빌딩 모드다. 그것도 꽤 과감한 리빌딩에 접어 들었다. 이제 이 팀 라인업에는 낯선 이름이 등장하기 일쑤고, 이병규가 둘일 때도 있다.

결국 이전에는 이순철으로 대변되는 현재와의 싸움이었다면, 이제 이순철이라는 이름의 과거를 어떻게 단절하고 그가 남긴 유산(?)으로부터 새로운 미래를 창출해 내는 과정이 바로 이 팀의 키워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순철이 선수도 아니라고 평했던 우규민이 자신감을 되찾은 듯 연일 호투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팀의 변화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일 것이다. 김회권, 심수창의 이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결국 후반기에는 적어도 내년 시즌 개막전까지는 기존 '이름'에 대한 재정리와 새로운 '얼굴'에게 주어질 기회의 정도 구분이 어느 정도 완료되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러 팬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이별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순철이 남긴 흔적을 지우지 않는다면 이 팀의 리빌딩은 결코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5. 롯데 자이언츠 ; 호세

사실 호세 자체의 생산력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펠로우를 월등히 뛰어넘기에는 그의 나이가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286/.397/.510이라면 그런 생각은 어느 정도 기우였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마이로우 역시 낮은 타율이 문제긴 하지만 .231/.396/.457이라면, 지난해 라이언-펠로우 조합보다는 확실히 이 둘이 낫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터진 로또는 아니지만 터지긴 터진 셈이다.

게다가 우산 효과로 인해 이대호가 부담을 덜 것이라는 예상은 이보다 더 적중했다. 아니, 기대이상이라는 것이 확실한 설명일 것이다. 16개의 홈런은 사직의 담벼락을 얘기할 필요도 없이 리그 1위 기록이며 .316/.396/.556은 흠잡을 데 없는 타격 기록이다. 그래서 글에 쓴 대로 염 前주장은 이미 지난해 3승을 넘어 4승을 기록한 채 전반기를 마치게 됐다. 클린업 트리오만 가지고 야구하는 게 문제긴 하지만, 확실히 클린업 트리오만은 리그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반기는 프로야구판 전체의 키워드가 '롯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손인호는 .213/.281/.222의 초라한 성적표를 내밀고 있지만 최근 5경기에서는 .615의 출루율을 기록하는 등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클린업트리오를 뒤에서 받쳐줄 기미를 보여주고 있다. 황성용의 등장 역시 클린업 트리오에게 많은 타점 기회를 제공해 줄 가능성이 높다. 6월의 몰락 대신 6월의 반등을 보여준 만큼, 후반기에도 계속 부산 갈매기가 울려퍼지길 기대해 본다.


4. 한화 이글스 ; '2'

류현진은 SK와 롯데, '2' 팀에 지명되지 못한 채 한화에 지명됐다. 그리고 현재까지의 결과는 한화의 초대박이다. 하지만 류현진 기용을 둘러싸고 김인식 감독은 한화와의 '2'번째 시즌에 지난 해와는 다른 평을 많이 들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뻥타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클리어와 데이비스, '2'명의 외국인 타자가 주도하는 모양새가 된 것 역시 팬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팀은 상당 기간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강한 면모를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지난 시즌 영입된 '2'명의 타자는 나쁘지 않다. 클리어의 '2'루 수비에 합격점을 주기는 어렵지만, '2'번 타자 역할(.333/.400/.491)은 나쁘지 않았다. 김민재 역시 겨우 '2'할에 턱걸이 하고 있는 수준의 타격 솜씨지만 수비에서는 브리또와 비견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넓은 수비 범위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작년에 미쳤던 '2'명의 타자들은 아쉬운 모양새를 보이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조원우의 출루율은 '2'할대(.294)에 머물러 있고, 김태균의 홈런은 '2'×'2'개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김태균이 문제였던 것이다.

최영필은 지난 해 포스트 시즌에 보여준 센세이션을 '2' 시즌 연속 이어가는 듯 했지만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구대성 역시 지난 '2'주간 세이브가 하나도 없다. 최영필의 공백을 안영명이 계속 잘 채워주느냐, 구대성이 대성불패의 위력을 다시 가동해주느냐 하는 점 역시 이 팀이 후반기에 구원 투수진에서 풀어야 할 '2'가지 과제일 것이다.

과연 현대/두산과 벌이고 있는 '2위' 다툼의 진정한 승자로 한화가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송진우 선수의 '2'백승은 언제쯤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 역시 한화 야구를 볼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다. 아울러 현대의 등번호 '2'번 김동수 선수와도 모든 오해를 깔끔히 풀었기를 바란다.  


3. SK 와이번스 ; Old & New

신승현은 자신의 브레이크 아웃 시즌이 플러크(fluke)가 아니었느냐는 판단을 내릴 정도로 전반기에는 큰 활약이 없었다. 김원형 선수 역시 확실히 지난 해의 모양새는 아니다. 선발에서 지난 해 이뤄졌던 신구 조화가 무너진 것이다. 불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조웅천, 위재영 역시 올해는 노쇠화 기미가 보이는 게 사실이다. 타선에서도 김재현은 장타율(.387)이 박재홍은 출루율(.354)이 문제다. 그러나 이들을 대신해 뚜렷한 새 얼굴이 등장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팀의 Old & New 문제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시즌 초반 공수 모두에서 쏠쏠한 활약을 보였던 시오타니는 결국 부상으로 짐을 쌌다. 그가 남긴 최종 성적은 .297/.350/.440으로 결코 나쁜 편은 아니었다. 시즌 초반 극도의 투고타저 속에서 나온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하자면 확실히 그렇다. 피커링 역시 .278/.382/.458로 낙제점을 줄 만한 성적이 결코 아니었지만 SK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타자로 채워졌던 외국인 선수 슬롯은 다시 선발 투수에게 돌아갔다. 이것이 이번 시즌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SK가 맞딱뜨린 Old & New다.

지난 해 최고 수준의 수비를 자랑했던 SK의 이번 시즌 현재 DER은 .699로 평균 이하에 머물고 있다. 평균 실점 역시 4.72점으로 최악이다. FIP 역시 3.97로 LG의 4.06에 이어 7위다. 결국 공격보다는 수비에서 문제가 생겼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선택이 바로 외국인 선발이었던 것이다. 현재까지 이 카드의 효과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위로는 기아가 아래로는 롯데가 버티고 있는 상황이 그리 만만찮아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팀의 New Face들이 어떤 바람을 불러 일으킬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 두산 베어스 ; 모른다.

역시나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졌다. 이종욱은 두산 팬들에게도 "쟤 누구야?"일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이번 시즌 처음으로 두산에 합류한 선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종욱은 20개의 도루로 리그 1위를 달리며 팀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장타력이 떨어지는 팀의 약점을 어느 정도 상쇄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번 시즌이 개막되지 너까지만 해도 모를 일이었다.

고영민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고영민의 경우 완전히 낯선 이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면서 안쌤을 1루로 보내고 주전 자리를 꿰찰거라고 예상했던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희생번트에도 1루에서 3루까지 내달리는 그의 빠른 발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가 그렇게 빠를지 정말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최준석은 더 하다. 팀 하나 바꿨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타자가 되어 버렸다. 그것도 너무 단시간 내에 말이다. 그래서 이런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과연 그는 정말 최준석인가? 아니면 최준석의 탈을 쓴 김동주인가? 이 즈음에서 하나 물을 수밖에 없다. 김동주마저 돌아오면 이 팀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글쎄 모른다고 섣불리 말할 수만은 없는 질문인 것 같다. 하지만 그대로 이 팀은 정말 너무도 미스테리 투성이인 팀이다.


1. 삼성 라이온즈 ; 양준혁

양준혁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다. 지난해 GPA .266의 초라한(?) 모습에서 .319/.459/.511의 모습으로 완전 부활을 선언한 것이다. (GPA .344) 아울러 팀 역시 2위권 팀들을 여유 있게 제치고 1위로 치고 나왔다. 양준혁의 3할과 삼성의 우승이라는 어울리지 않던 조합이 올해는 최초로 이뤄질 기미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번 시즌 현재까지 리그 최고의 선수는 양준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최근 들어 확실히 살아낸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시즌 초반만 해도 삼성의 타선은 말이 아니었다. 조동찬은 안타를 단 한 개도 때려내지 못했고, 심정수는 결국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김한수도 결코 예년 같지 않았다. 이런 여건 속에서 파란 피가 흐르는 양준혁은 홀로 고군분투를 계속했다. 연일 리그의 각종 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물론이다. 최근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무시할 수 있는 방망이는 아니다.

물론 삼성은 이제 예전처럼 강한 타력으로 대변되는 이미지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진하다 부진하다 해도 .245의 팀 GPA는 현대(.255)에 이어 리그 2위 기록이다. 현대가 갈수록 하향세인 데 비해 삼성의 타격은 점점 살아나고 있다는 점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막강한 기존의 KO 펀치에 방망이까지 가세한다면 이 팀을 위협할 만한 견제 세력이 섣불리 등장하기는 어려워 보이기까지 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힘들 때 팀의 버팀목 역할을 해준 양준혁 덕분이었다. 과연 시즌이 끝난 후에 그의 손에 생애 최초의 MVP 트로피가 들려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궁극적으로 삼성이 2연패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과 궤를 같이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확실히 전반기 삼성은 양신의 삼성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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