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양상문 감독(57·사진 왼쪽)이 다시 프로야구 롯데 모자를 쓰게 됐습니다. 롯데는 19일 계약금 3억 원, 연봉 3억 원 등 총액 9억 원에 2년간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양 감독은 2010년 이후 8년 만에 다시 고향팀 롯데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롯데에서 양 감독 선임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처음 보낸 건 이날 오전 11시 반이었습니다. 그리고 4분 뒤 제목에 '(수정 부탁드립니다)'를 보도자료를 한 번 더 보냈습니다. 두 보도자료가 차이가 나는 대목은 발표 날짜. 처음에 보낸 보도자료에는 21일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보도자료를 다시 보내면서 19일로 바꿨습니다.


 

물론 보도자료를 내면서 숫자에 오타는 내는 건 일상다반사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게 재미있다고 생각한 건 양 감독이 단장을 맡고 있던 LG에서 롯데 첫 보도자료보다 17분 앞서 차명석 단장(49) 선임 소식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LG는 보도자료를 보내면서 "한편, 전임 양상문 단장은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사임 의사를 표명했고 18일 사임이 최종 결정 됐다"고 밝혔습니다.


LG 보도자료가 도착하고 나서 야구 취재 기자 사이에 '양 단장이 롯데 감독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정말 그렇게 되고 말았던 것. 그러자 롯데 감독 자리를 제안받고 LG 단장 자리를 내놓은 것이냐 아니면 반대냐는 이야기도 오갔습니다.


양 감독은 물론 LG 단장 사임이 먼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어제 LG 단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확정된 후 롯데 대표이사님께 연락을 받았다. 저녁에 만나 감독 자리를 제안 받았고 바로 결정했다. 모든 게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아, 롯데 프런트가 이렇게 일을 잘하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사실 21일이라는 날짜도 재미있습니다. 왜 하필 21일이라고 오타가 난 걸까요? 키보드를 아무리 쳐다 봐도 19를 21이라고 오타를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데 말입니다. 추측컨대 21일에 준플레이오프 이동일이라 이날 발표하기로 결재를 받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포스트시즌 기간 감독 등 코칭스태프 인선을 발표할 때는 이동일을 택하는 게 불문율이니까요. 그런데 LG에서 보도자료를 내면서 롯데도 서둘러 보도자료를 낸 모양새가 되고 말았습니다.


양 감독은 LG 감독석을 지키고 있던 2015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지금 당장 우리(LG)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해서 4등 하고 그런 게 목표가 아니라 진정으로 강한 팀을 만드는 게 목표"라면서 "저의 임기 동안 그렇게 안 되더라도 후임 감독이 무적 LG를 만들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천하무적 LG가 된다면 그것도 실패는 아니지 않나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적어도 제가 떠난 다음에 후임 감독이 보니, 선수들이 방전돼서 손을 쓸 수가 없더라, 이런 말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구단에서 기회를 줄 때는 단기적인 것, 장기적인 것 책임을 지라는 거니까, 눈앞만 생각하면 안 되지요"라고 덧붙였습니다.


LG는 이로부터 2년이 지난 지난해 그에게 단장 자리를 맡겼습니다. 단장이야 말로 양 감독이 이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위치였을 텐데 그는 1년 만에 다시 현장 복귀를 선택했습니다.


양 감독이 롯데에서 잘할지 못할지 선택하라면 '잘할 것'에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그런데 LG를 떠나는 방식이 옳았는지 아닌지 묻는다면 '아니다'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때로는 자리를 지키는 게 책임을 지는 일일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