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이 이겼습니다. 보스턴이 뉴욕 양키스를 이겼습니다. 보스턴이 뉴욕 양키스를 이기고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결정전(ALCS)에 진출했습니다.
보스턴은 9일(현지시간)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ALDS·5전 3승제) 4차전에서 9회말 추격을 뿌리치고 4-3으로 승리했습니다.
이로써 보스턴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디비전시리즈를 마감하면서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2013년 이후 5년 만에 ALCS에 진출하게 됐습니다. 보스턴과 '디펜딩 챔피언' 휴스턴이 맞붙는 올해 ALCS는 13일 보스턴 안방 펜웨이파크에서 막을 올립니다.
또 보스턴은 이날 승리로 포스트시즌 맞대결에서 양키스와 2승 2패로 균형을 맞추게 됐습니다. 단, 포스트시즌 개별 경기 승률에서는 11승 12패로 아직 양키스에 뒤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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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는 승리 기댓값(WP) 그래프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이날 최고 승부처는 역시 보스턴이 4-1로 앞선 채 맞이한 9회말이었습니다. 보스턴 마무리 투수 크레이그 킴브럴(30)은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애런 저지(26)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줬고, 다음 타자 디디 그레고리우스(28)에게는 안타를 맞으면서 무사 1, 2루 위기에 몰렸습니다.
여기서 보스턴으로서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표기법에 따라 쓰면) 장칼로 스탠턴(29)이 헛스윙 삼진을 당하면서 1사 1, 2루가 됐습니다. 다음 타자 루크 보이트(27)는 다시 스트레이트 볼넷.
1사 만루에서 킴브럴이 던진 초구에 닐 워커(33)가 맞으면서 그대로 1사 만루에 4-2가 됐습니다. 다음 타자 게리 산체스(26)는 좌익수 쪽 워닝트랙까지 뜬공을 날려 보냈고, 이 공을 보스턴 좌익수 앤드루 베닌텐디(24)가 처리하는 사이 3루 주자 그레고리우스가 홈을 밟으면서 4-3.
지금은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맞는 순간에는 담장을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타구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끝내기 만루홈런입니다. 베닌텐디는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맞는 순간부터 발사각이 너무 높다고 생각했다. 평생 내가 수비한 타구 중에서 높이 뜬 걸로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넘어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글레이버 토레스(22)가 3루 쪽으로 땅볼을 때릴 때까지만 해도 결과를 알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보스턴 3루수 에두아르도 누녜스(31)가 던진 공이 토레스 발과 거의 동시에 1루수 스티프 피어스(35) 글러브에 들어갔습니다. 양키스에서는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고 결국 정심이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습니다.
October is for drama
— Sports Illustrated (@SInow) October 10, 2018
(via @MLB) pic.twitter.com/ngJVT3YU81
이 호수비로 킴브럴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한 이닝에 볼넷 두 개, 몸에 맞는 공, 안타를 모두 허용하고도 세이브를 기록한 선수가 됐습니다. 킴브럴은 1차전 때도 세이브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저지에게 홈런을 내주면서 불안감을 노출했습니다.
보스턴 관점에서 불안한 건 킴브럴이 포스트시즌에 갑자기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 전반기 때 1.77이던 평균자책점이 후반기에는 4.57까지 올랐거든요. 문제는 제구력. 전반기에는 9이닝당 볼넷이 3.54개였는데 후반기에는 6.23개로 80% 가까이 늘었습니다.
보스턴과 양키스가 밪붙은 이번 ALDS에서 제일 재미있는 경기를 꼽으라면 역시 8일 열린 3차전이었습니다. (역시 양키스는 이렇게 이겨야 제맛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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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에 보스턴 7번 타자 겸 2루수로 선발 출장한 브록 홀트(30)는 4회 첫 타석에서 단타, 두 번째 타석에서 3루타를 친 뒤 8회 2루타, 9회 홈런을 치면서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역사상 처음으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알렉스 코라 보스턴 감독(43)이 4차전 양키스 선발을 맡은 CC 서배시아(38)가 왼손 타자에게 강다하는 이유로 왼손 타자 홀트를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했다는 것. 대신 이언 킨슬러(36)를 선발 출장시켰고, 킨슬러는 3회 2루타로 팀에 두 번째 점수를 안기면서 자기 몫을 다했습니다.
코라 감독은 또 4차전 8회말에 '에이스' 크리스 세일(29)을 마운드에 올리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이 역시 성공이었습니다. 1차전에서 5와 3분의 1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던 세일은 삼자범퇴로 이닝을 지우면서 팀 승리를 도왔습니다.
That's our manager. ❤️ pic.twitter.com/F38M8bKj4q
— Boston Red Sox (@RedSox) October 10, 2018
코라 감독은 2011년 워싱턴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한 뒤 TV 해설위원을 지내다 지난해 휴스턴 벤치코치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휴스턴은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선발 자원을 롱릴리프로 투입하는 등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에 바탕을 둔 투수 운용으로 재미를 봤습니다. 코라 감독이 이날 5차전이 열린다면 선발로 나설 게 유력했던 세일을 8회 마운드에 올린 게 그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가을야구'는 불펜 싸움이고 불펜에서는 보스턴이 휴스턴에 밀리는 게 사실. 과연 코라 감독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지켜보는 것도 이번 ALCS에서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겁니다. 물론 ALDS 3차전처럼 불펜이 필요없는 야구가 제일 좋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