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위에 있는 사진 한 장에 정답이 대부분 들어있습니다. 공이 다르고, 그래서 라켓이 다릅니다. 경기장은 똑같은 곳을 쓰지만, 네트를 처리하는 방식은 둘이 서로 다릅니다.


정구는 재미있는 종목입니다. 많은 분들이 정구라는 종목 자체보다 정구와 테니스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하시는 일이 더 많거든요. 이런 궁금증을 품는 게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두 종목이 참 많이 닮았으니까요. 사실 정구는 테니스하고 아주 많이 닮은 동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구공은 정말 말랑하다

1980, 9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은 우리가 테니스공이라고 부르는 공을 정구공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테니스를 경식(硬式) 정구라고 부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경식은 "야구나 테니스 따위에서, 단단한 공을 사용하는 방식"(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합니다. 지금도 테니스와 구별하는 의미에서 정구를 '연식(軟式) 정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 정구 경기에 쓰는 공(사진)은 테니스공이 아니라 아주 가볍고(30g) 손으로 가볍게 눌러도 납작해질 정도로 말랑말랑한 고무공입니다. 이렇게 말랑하다 보니 라켓에 맞아 공이 찌그러지는 모양새까지 보입니다. 당연히 공이 어떻게 회전하는지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쓰면 의심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정말 보입니다!)


사실 19세기말 일본에서 정구를 시작한 제일 큰 이유가 테니스공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만들 수 있는 고무공을 라켓으로 주고 받다가 정구라는 (세부)종목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영어로 정구를 소프트 테니스(Soft Tennis)라고 부르는 건 이런 까닭입니다. 심지어 이제 일본에서도 '테큐(庭球)'보다 '소푸토 테니스(ソフトテニス)'라는 표현을 더 많이 씁니다.


공이 달라서 플레이 스타일이 제일 다른 건 역시 서브입니다. 정구는 바람에 날릴 만큼 공이 가볍기 때문에 머리 위에서 내리 꽂는 강서브를 넣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신 정구에서는 프로 레벨 테니스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언더핸드 서브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탁구에서 서브를 넣을 때처럼 공을 '깎는' 방식입니다. 아래 GIF를 자세히 보시면 바닥에 튄 다음 공이 휩니다.




정구에서는 라켓 한 면으로만 공을 친다

공이 다르면 이 공을 치는 라켓도 달라야겠죠? 일단 정구는 테니스와 달리 라켓 규격이 따로 없습니다. 이 때문에 규정에 따라 두 라켓을 비교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대신 실제로 선수들이 쓰는 라켓 사이즈를 재보면 정구 라켓이 테니스 라켓보다 작은 걸 알 수 있습니다(그래픽 참조). 


정구 라켓은 전체적으로 테니스 라켓을 80% 정도 축소한 형태입니다. 당연히 무게도 정구 라켓(170~270g)이 테니스 라켓(250~340g)보다 더 가볍습니다. 


김태주 대한정구협회 사무처장은 "배드민턴 라켓하고 비교하면 정구 라켓이 더 크고 무겁다. 정구 라켓은 테니스 라켓과 배드민턴 라켓 중간 정도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라켓 사용법도 차이가 납니다. 테니스는 라켓 양면을 모두 써서 공을 치지만 정구는 한면만 씁니다. 그립을 바꾸지 않은 채로 포어핸드와 백핸드를 모두 구사하는 것. 


이 때문에 테니스에 익숙한 분들은 정구 선수가 백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할 때 어색한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정구 선수 출신은 테니스를 칠 때도 똑같이 라켓을 한 면만 쓰는 일이 많다는 점입니다. 배운 게 도둑질인데 어디 가겠습니까.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정구를 잘 치면 테니스도 잘 칠까요? 그 반대는요?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정구 실업팀 감독은 "정구인은 테니스를 잘 치지만 테니스인은 정구를 못친다. 정구인은 테니스공 움직임을 이해하지만 테니스인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아직 테니스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질 기회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묶느냐 묶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경기장 규격은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냥 같은 코트에서 정구도 치고, 테니스도 치는 겁니다. 바닥도 아주 큰 차이는 없습니다. 정구도 클레이 코트하드 코트에서 모두 경기를 치릅니다. (인조)잔디에서 경기를 하는 일도 있습니다. 


대신 맨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네트 처리 방식이 다릅니다. 테니스 코트에는 높이 107㎝짜리 네트가 경기장을 가로 지르고 있습니다. 


테니스 경기 때는 네트 한가운데를 센터 스트랩(center strap)으로 묶고 앵커(anchor)에 고정해서 높이를 91㎝에 맞춥니다(그래픽 참조). 그러면 자연스럽게 네트 상단이 큰 V자 모양이 됩니다.


이렇게 네트 가운데를 묶는 건 어차피 중력 때문에 네트가 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저기 높이가 서로 다른 곳이 생길 터. 테니스는 차라리 가운데를 묶어서 네트 전체 모양을 잡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정구는 대신 아예 네트 전체를 팽팽하게 하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정구에서는 네트 끝에서 끝까지가 모두 높이 107㎝입니다. (위에 있는 언더서브 GIF를 다시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이 때문에 테니스였다면 네트 가운데로 넘어갔을 공이 정구에서는 네트에 걸리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테니스에서는 드라이브나 슬라이스처럼 '직선형 공격'이 대세지만 정구에서는 공 궤적을 바꾸는 스트로크를 어렵지 않게 보실 수 있습니다. 테니스 코트에서 하는 탁구라고 생각하시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정구에는 러브가 없다?


물론 정구인 여러분은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지만 정구에서 점수를 표시할 때 테니스처럼 러브-15-30-40-게임 순서가 그냥 0~4점이라고 합니다. 또 테니스에서는 6게임을 따면 1세트를 따고, 2세트 또는 3세트를 먼저 따야 승리하지만 정구는 단식은 4게임, 복식은 5게임만 먼저 따면 승부가 끝납니다. 테니스로 치면 1세트도 끝나기 전에 승부를 결정하는 것.


이렇게 승부가 빨리 끝나기 때문에 한 정구인은 "한국 사람들 급한 성미에는 정구가 더 잘 맞는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또 테니스 경기는 심판이 관중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할 만큼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정구 코트는 아주 시끄럽습니다. 



이 동영상을 찍을 때 소음 측정 어플리케이션(앱)으로 측정해 보니 110 dB(데시벨)이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비행기 소음 수준입니다. 그만큼 지켜보는 관중도 흥도 납니다. 정구협회 김 사무처장은 "전국체육대회 때 테니스 보러 왔다가 정구장을 못 떠나는 관중이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아, 정구에도 물론 듀스와 타이브레이크 규정이 있습니다. 3-3이 되면 테니스와 마찬가지로 한 팀(선수)이 두 점을 연속해 딸 때까지 듀스를 진행합니다. 게임 스코어 3-3으로 마지막 게임을 맞이했을 때는 기본적으로 7점을 먼저 따는 쪽이 승리하지만 6-6이 되었을 때는 다시 듀스 모드가 됩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때 주목해야 할 선수는?

흔히들 정구를 '숨은 효자 종목'이라고 부릅니다. 실제 결과도 그렇습니다. 한국 대표팀은 안방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아경기(아시안 게임) 때 정구에 걸린 금메달 7개를 모두 싹쓸이했습니다.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는 남녀 복식 경기가 각각 사라지면서 금메달이 5개로 줄었습니다.) 


인천 대회 때 김범준(29·문경시청·사진)은 남자복식, 혼합복식, 남자 단체전에서 3관왕에 올랐습니다. 한국 선수가 아시아경기에서 이 종목 3관왕을 차지한 건 2002 부산 대회 때 유영동(44·현 여자 대표팀 감독) 이후 김범준이 처음이었습니다.


김범준은 당시 같은 실업팀 소속이던 대표팀 에이스 김동훈(29·현 순천시청)과 복식 호흡을 맞췄지만 이번에는 달성군청에서 문경시청으로 팀을 옮긴 대구가톨릭대 동기 전지헌(30)과 짝을 이룹니다. 김동훈은 30대 후반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김기성(36·창녕군청)과 짝을 이루게 됐습니다. 위에서 복식 경기가 사라졌다고 해놓고 짝을 설명하는 건 단체전에는 복식 경기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2015년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 김진웅(28·수원시청)도 대표팀 일원입니다.


여자 대표팀 에이스는 김지연(24·대구은행·사진)입니다. 이번 대회 여자 대표팀 5명 가운데 아시아경기 출전 경험이 있는 건 김지연 한 명뿐이거든요. 김지연은 4년 전 인천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여자 대표팀 유 감독은 "나머지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지연이가 잘 이끌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클럽 위주로 활동하던 일본도 합숙 훈련을 하면서 전력을 끌어올린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똘똘 뭉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지연은 김범준과 호흡을 맞춰 혼합복식에도 출전합니다. 


김영혜(22·NH농협은행)가 김지연의 제일 든든한 조력자이자 제일 큰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궁이 그런 것처럼 정구도 국내 선수끼리 경쟁이 치열합니다. 김영혜는 "대표팀에서 함께 훈련하면서 서로 장단점을 파악했기에 (단식에서) 맞붙게 되면 명승부를 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선수 이외에도 문혜경(21), 백설(21·이상 NH농협은행), 유예슬(24·대구은행)이 팔렘방에서 아시아경기 금메달에 도전합니다. 문혜경 역시 고교(경북관광고) 재학 시절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유망주 출신입니다. 문혜경은 이번 아시아경기 때 김기성과 혼합복식에 출전합니다.


정구는 올림픽 종목이 아니라 아시아경기가 아니면 주목받을 기회가 잘 없는 게 사실. 그러니 이번 아시아경기 때도, 한국 정구여, 흥(興)해라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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