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게릿 콜(28·휴스턴·사진)이 메이저리그 데뷔 첫 완봉승과 함께 한 경기 개인 최다 탈삼진 기록도 새로 썼습니다. 콜은 5일 메이저리그 인터리그 경기에서 애리조나를 상대로선발 등판해 이 안방 팀 타선을 9이닝 1피안타 1볼넷 16삼진으로 돌려세웠습니다. 그 전까지는 4월 15일 텍사스를 상대로 삼진 14개를 잡았던 게 개인 최다 기록이었습니다.



지난 스토브리그 때 피츠버그에서 휴스턴으로 팀을 옮긴 콜은 이로써 올 시즌 7경기에서 삼진을 총 77개 잡아내게 됐습니다. 엘리아스 스포츠 뷰로에 따르면 팀 이적 후 7경기에서 삼진 77개를 잡아낸 건 역대 최다 기록입니다. 콜 이전에는 지난 시즌 크리스 세일(29·시카고 화이트삭스 → 보스턴)이 기록한 73개가 최다 기록이었습니다.


지난해에만 메이저리그에서 261번 나온 완봉승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쓰는 건 주인공이 콜이기 때문. 콜은 최근 메이저리그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파인타르(송진) 소동' 주인공입니다. 아니, 사실 휴스턴 투수진 전체가 그렇습니다. 



발단은 트레버 바우어(27·클리블랜드·사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 올린 글이었습니다. 바우어는 역시 휴스턴 소속인 찰리 모튼(35)이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삼진 10개를 기록하자 휴스턴 투수진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로 글을 남겼습니다.



바우어가 주목한 건 분당 회전수(RPM). 휴스턴 투수들 속구 RPM이 유독 높은데 이게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는 휴스턴 투수진이 파인타르를 써서 RPM을 높인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러면서 "파인타르가 스테로이드보다 더 경기력을 끌어올린다"고 공격했습니다.



물론 휴스턴 선수단 생각은 다릅니다. 랜스 맥컬러스 주니어(25)는 바우어를 '디스'하는 트위트를 올렸고, A J 힌치 휴스턴 감독(44) 역시 '너나 잘하세요'라고 맞받아쳤습니다.




그렇다고 바우어가 아주 허튼 소리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올해 휴스턴 투수들 속수 RPM이 높은 건 사실이거든요. 스탯캐스트로 측정한 RPM을 확인할 수 있는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콜이 던지는 속구(포심 패스트볼)는 2015~2017년에는 일정한 범위를 유지했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릅니다.



모튼 역시 2015년 2054였던 속구 RPM을 올해 2237까지 끌어올렸습니다. 맥컬러스 주니어도 지난해 2291에서 올해 2449로 뛰었습니다. 댈러스 쿠첼(30)도 2142에서 2213으로 오르긴 올랐고, 원래 속구 RPM이 높은 저스틴 벌랜더(35)도 2532에서 2629로 올랐습니다. 휴스턴 선발 투수 5명 속구 RPM이 모두 오른 것.


스테로이드보다 효과가 좋은지는 따져봐야겠지만 RPM이 올라가면 속구 구위가 올라가는 것도 (당연히) 맞습니다.


▌2015, 2016 메이저리그 속구 RPM 구간별 타격 기록

 RPM  타율  장타력  헛스윙 비율  땅볼 비율
 2600 이상  .213  .348  27.5%  35.8%
 2300 이상  .253  .432  21.6%  35.8%
 2000~2299  .280  .473  17.1%  39.4%
 1999 미만  .309  .509  13.1%  47%


온갖 투구 이론을 섭렵하는 것으로 유명한 바우어는 "(파인타르가 투구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투구 측정 장비를 갖춘 실험실에서) 다양하게 테스트를 해봤다. 시속 70마일(약 112.7㎞) 수준에서 (파인타르처럼) 끈적이는 물체를 바르면 RPM이 300~400 정도 올라간다. 실제 경기 때처럼 빠르게 던지면 이렇게 많이 올라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200~300 RPM은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아예 그가 경기 중에 파인타르 효과를 증명하려 했다고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삼진 11개를 잡아낸 1일 경기 투구 기록을 찾아 보면 1회에만 유독 속구 RPM이 높게 나왔거든요. 이에 팬그래프스 같은 곳에서 바우어가 1회에만 파인타르를 바르고 마운드에 올랐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



야구공에 이물질을 바르면 투수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온다는 걸 옛날 사람들이라고 모르지 않았습니다. 야구 규칙에 "선수는 흙, 송진, 파라핀, 감초, 사포, 금강사포 등 이물질로 일부러 공을 변색시키거나 흠집을 내서는 안 된다"(3.02), "(투수는 다음과 같은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공에 이물질을 붙이는 것"(8.02) 같은 조항이 들어 있는 이유입니다.


그럼 바우어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는 차라리 "파인타르를 허용하자"고 주장합니다. 지금처럼 파인타르 사용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규칙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를 본다는 겁니다.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차라리 제한을 풀자는 얘기.



사실 이미 메이저리그 투수 가운데 90%가 공이 더 잘 '긁히도록' 불프로그(BullFrog) 같은 자외선 차단제(선크림)를 쓰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메이저리그 공인구는 한국 프로야구 공인구하고 비교해도 아주 미끄럽기로 유명합니다.) 또 선크림은 되고 타자는 이미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 파인타르가 금지라는 게 100% 자연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이번에도 역시 바우어가 아주 허튼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바우어가 정말 이 논란을 100% 순수한 의도로 시작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바우어와 콜이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 둘은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대(UCLA) 야구부에서 '원투펀치'를 맡았던 사이입니다. 


그때는 바우어가 에이스였고, 콜이 제2 선발이었습니다. 바우어는 UCLA뿐 아니라 당시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전체 에이스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바우어는 삼진 203개로 NCAA 기록을 새로 쓰면서 미국 최고 아마추어 야구 선수가 받는 '골든 스파이크 어워드'를 2011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해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전체 1순위는 바우어가 아니라 콜이었습니다. 전체 1번 픽을 가지고 있던 피츠버그에서 신체 조건이 더 좋은 콜(193㎝·102㎏)을 선택한 것. 바우어(185㎝·86㎏)는 2순위도 아니도 3순위가 되어서야 애리조나에서 부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 수 아래라고 여기던 상대가 잘 나갈 때 배 아픈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거꾸로 나도 잘났는데 더 잘난 체 하는 상대가 있을 때도 피곤했겠죠.


그래서 진짜 결론은 뭘까요? 휴스턴 코칭스태프는 정말 파인타르 없이도 속구 RPM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찾아낸 걸까요? 그리고 바우어는 왜 이 문제를 꺼낸 걸까요? 정말 공정한 승부를 원해서? 아니면 콜이 잘 나가는 게 싫어서? 어쩌면 대답은 시간만이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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