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은 압니다. 스타가 되는 법을 아는 선수는 따로 있습니다. 프로야구 kt 강백호(19·사진)도 그런 선수인지 모릅니다.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치는 것보다 확실하게 자기 이름을 확실하게 알리는 방법은 잘 없거든요.
강백호는 24일 광주에서 열린 올해 프로야구 개막전에 안방 팀 KIA를 상대로 좌익수 겸 7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습니다. 그가 데뷔 타석에 들어선 건 팀이 0-2로 끌려가던 3회초. 이 이닝에 선두타자로 나선 그는 KIA 선발 헥터(31)와 풀카운트 대결을 벌인 끝에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이 홈런은 2018 프로야구 1호 홈런이기도 했습니다.
야구팬은 또 압니다. 강백호에게 1호 홈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고척스카이돔 1호 홈런 주인공도 강백호입니다. 강백호는 서울고 1학년이던 2015년 11월 12일 이 구장에서 열린 제70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참가해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당시 상대 투수는 경기고 최하늘(19·현 롯데).
그렇다고 신인 타자가 개막전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게 강백호가 처음은 아닙니다. 같은 기록을 남긴 건 1998년 조경환(46·당시 롯데·사진)이 첫 번째.
'현대 피닉스'와 상무를 거쳐 만 26세에 프로야구에 데뷔한 조경환은 그해 4월 11일 대구 경기에서 2회초 삼성 선발 조계현(54·현 KIA 단장)으로부터 홈런을 뽑아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조경환은 이튿날 경기에서도 홈런을 때려내면서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데뷔 후 두 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조경환은 이해 정규시즌 개막에 앞서 열린 '슈퍼토너먼트' 대회 때도 신인 선수 자격으로 참가해 첫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이 대회는 딱 1998년 한 해에만 시범경기와 정규리그 사이에 열렸습니다. 이후 명맥이 끊겨 이 대회 성격을 규정하기가 모호하지만 당시 언론은 이때도 '데뷔 첫 타석 홈런'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단, 조경환은 고려대를 졸업한 대졸 선수. 반면 강백호는 지난해 신인 2차 지명회의(드래프트) 때 전체 1순위로 kt 유니폼을 입게 된 고졸 선수입니다. 자연스레 개막전 데뷔 타석에서 홈런을 친 고졸 선수는 강백호가 처음이 됩니다.
첫 타석이 아니더라도 개막전에서 홈런을 친 걸 따지면 강백호가 역대 세 번째입니다. 조경환에 앞서 OB(현 두산) 한대화(58·사진)도 1983년 4월 2일 잠실에서 열린 그해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MBC(현 LG) 선발 하기룡(63)을 상대로 4회 3점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한대화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때도 사실상 결승전이었던 일본전에서 결승 3점 홈런을 날렸습니다. 이제는 한화 팬을 제외하면 한대화라는 이름 앞에 '해결사'라는 별명을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당시에는 '3점 홈런의 사나이', '미스터 3점 홈런' 등으로 통했습니다. '라뱅 쓰리런' 원조라고 할까요?)
이렇게 통산 100홈런 이상을 기록한 한대화(163홈런), 조경환(131홈런) 이야기만 쓰면 데뷔전 홈런이 나쁠 게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데뷔 첫 타석만 따져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국 데뷔 타석에서 홈런을 기록한 외국인 타자 4명을 제외하면 강백호가 열두 번째입니다.
날짜 | 타자 | 구단 | 상대 | 비고 |
1984.04.10 | 이석규 | 롯데 | 삼미 | 1호 |
1992.08.23 | 윤찬 | LG | 쌍방울 | |
1998.04.11 | 조경환 | 롯데 | 삼성 | 개막전 |
2001.06.23 | 송원국 | 두산 | SK | 대타, 끝내기, 만루홈런 |
2002.04.16 | 허일상 | 롯데 | 현대 | |
2006.10.02 | 허준 | 현대 | 삼성 | 대타 |
2008.07.08 | 권영진 | SK | 삼성 | |
2012.09.14 | 황정립 | KIA | 롯데 | 대타 |
2013.03.30 | 조성호 | SK | LG | |
2016.07.13 | 김웅빈 | 넥센 | kt | |
2017.06.21 | 김태연 | 한화 | 넥센 | 초구 |
2018.03.24 | 강백호 | kt | KIA | 고졸 개막전 |
※외국인 타자 제외
냉정하게 말해 이 중에 '유명 선수'라고 부를 만한 선수는 조경환 한 명뿐입니다. 데뷔 타석 혹은 데뷔전에서 홈런을 친다는 것부터 '우연의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당연한 결과. 홈런 타자는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친 타자가 아니라 그 이후 은퇴하기까지 홈런을 많이 친 타자니까요.
거꾸로 이 목록에 스타가 조경환 한 명뿐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또 데뷔 첫 타석 홈런 같은 우연이 앞으로도 찾아오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뉴욕의 연인' 데릭 지터(44·전 뉴욕 양키스)는 통산 3000안타를 안방에서 홈런으로 장식했고, 생애 마지막 양키 스타디움 타석에서는 끝내기 안타를 때렸습니다. 이 역시 모두 우연일 뿐이라면 우연일 뿐이지만 그래서 지터는 지터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과연 우리는 10년 후 강백호를 어떤 선수로 평가하고 있을까요? 그 시작을 기록한다는 차원에서 이 포스트를 남겨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