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1994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계주 3000m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는 한국 대표팀. 왼쪽부터 김윤미, 전이경, 원혜경, 김소희. 김윤미는 당시 만 13세 83일로 여전히 겨울올림픽 최연소 금메달리스트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경주는 한국을 위한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은 이번 2018 평창 겨울올림픽까지 이 종목에 걸린 금메달 8개 중 6개를 따냈습니다.

 

한국 기준으로는 이번이 이 종목에 참가한 7개 올림픽에서 6번째 금메달입니다.

 

한국은 쇼트트랙이 처음 올림픽 공식 종목이 된 1992년 알베르빌 대회 때는 이 종목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결승선 통과 시점만 따지면 더 대단합니다.

 

한국은 이 종목에 첫 참가한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이후 7개 대회 연속으로 피니시라인을 제일 먼저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왜 6번째 금메달일까요?

 

2010년 밴쿠버 대회 때도 결승선을 제일 먼저 통과한 뒤 금메달을 확신했지만 석연찮은 판정으로 실격 처리당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 글 뒤에 다시 나옵니다.)

 

이 종목 금메달리스트를 보면 한국 여자 쇼트트랙 '에이스' 계보도 보입니다.

 

전이경(42·현 싱가포르 대표팀 감독·사진)은 1994년 이 종목 금메달에 이어 1000m 금메달까지 따내면서 여자 쇼트트랙 역사상 첫 번째 올림픽 2관왕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전이경은 1998년 나가노(長野) 대회 때도 같은 종목(계주, 1000m)에서 모두 따내면서 2연속 올림픽 2관왕으로 한국 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꿈을 이루면 다른 누군가의 꿈이 되는 법'.

 

전이경이 성공기를 쓴 뒤 수 많은 '전이경 키즈'가 스케이트를 신고 링크를 누볐습니다. 한국에서는 스피드스케이팅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시작은 쇼트트랙일 정도. 

 

전이경 키즈 중 가장 청출어람에 성공한 선수로는 진선유(30)를 꼽을 수 있습니다.

 

진선유는 2006년 토리노 대회 때 계주와 함께 1000m, 1500m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하며 여자 쇼트트랙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3관왕이 됐습니다.

 

진선유는 전이경 이후 두 번째로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에 성공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진선유와 함께 토리노에서 계주 금메달을 목에 건 변천사(31) 역시 전이경 키즈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별 한국 쇼트트랙 여자 계주 대표팀

밴쿠버 대회 때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계주를 포함해 그 어떤 종목에서도 금메달을 따지 못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당시 한국은 계주 결선을 1위로 끝마쳤지만 제임스 휴이시 심판(호주)은 김민정(33)이 선린린(30·중국)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진로를 방해했다고 판정했습니다.

 

이 판정이 얼마나 설득력이 떨어졌는지 한국 대신 금메달을 차지한 중국 대표팀조차 "한국이 왜 실격인지 모르겠지만 기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여자 계주 금메달을 놓친 뒤 허탈해 하는 한국 대표팀

밴쿠버 때 금메달을 놓쳤던 박승희(26)와 조해리(32)는 4년 후 소치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한을 풀었습니다.

 

박승희는 소치에서 1000m 금메달까지 차지하며 2관왕을 차지했습니다.

 

역시 소치 금메달 멤버였던 김아랑(23)과 심석희(20)는 평창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하며 올림픽 2회 연속 계주 금메달을 따낸 여자 쇼트트랙 선수가 됐습니다.

 

1500m 금메달리스트 최민정(20)은 (일단) 2관왕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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