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제 인생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만화 두 개를 꼽으라면 (스누피가 주인공 행세를 하는) 피너츠하고 심슨 가족입니다. 괜히 페이스북 페이지 커버 사진에 피너츠 캐릭터가 등장하고 프로필 사진이 (심슨 가족에서 아빠인) 호머 심슨인 게 아닙니다. 


두 작품 모두 미국 만화인 만큼 스포츠가 아주 일상적으로 등장합니다. 커버 사진에서도 피너츠 각 캐릭터들이 서로 다른 종목에 열심이죠. 단 페이스북 레이아웃이 바뀌면서 도끼를 들고 있는 호머가 스포츠하고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였는데 이제는 괜찮습니다. 호머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거든요.


명예의 전당은 27일(이하 현지 시간) '호머 제이 심슨' 명판을 공개했습니다(아래 사진). 명판은 "형편 없는 안전 관리자가 도시를 뒤흔든 소프트볼 영웅이 됐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계속해 "이 우익수는 (호머가 극중에서 재직하고 있는) 스프링 필드 원자력 발전소 팀을 시(市) 챔피언전까지 이끌었으며 결국 자기 몸을 희생해 팀에 우승을 안겼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1992년 2월 20일 방송한 심슨 가족 52번째 에피소드 '타석에 선 호머(Homer at the Bat)'를 설명한 겁니다. 이 에피소드는 원자력 발전소 사장인 악역 몽고메리 번즈가 100만 달러를 걸고 이웃 마을 쉘비빌과 소프트볼 내기를 벌이는 내용입니다. 번즈 사장은 내기에서 이기려고 당시 메이저리그 올스타였던 대럴 스트로베리(55), 돈 매팅리(56·현 플로리다 감독), 마이크 소시아(59·현 LA 에인절스 감독), 로저 클레멘스(55), 스티브 색스(57), 아지 스미스(63), 웨이드 보그스(59), 켄 그리피 주니어(48), 호세 칸세코(53) 등 9명을 고용했습니다. 물론 이 선수들이 모두 목소리로 이 에피소드에 출연했습니다.


그러나 각자 사정이 생겨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상태가 됐고 오직 스트로베리(우익수)만이 정상적으로 경기 나섰습니다. 그 탓에 역시 우익수로 뛰던 호머는 경기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경기는 흐르고 흘러 43-43으로 9회말 2사 만루가 됐고, 쉘비빌에서 왼손 투수를 내자 번즈 사장은 왼손 타자인 스트로베리를 대신해 호머를 태타로 기용했습니다. 호머는 상대 투수가 던진 초구에 머리를 맞으면서 팀에 끝내기 승리를 선물했습니다.



이날 미국 뉴욕주 쿠퍼스타운 명예의 전당 박물관에서 열린 헌액식에는 보그스, 스미스, 색스(아래 사진 왼쪽부터)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습니다. 색스는 "사람들은 내게 (당대를 대표하는 강속구 투수였던) 놀란 라이언(70·현 텍사스 구단주)을 상대로 타격하는 게 어떤 느낌이었는지 묻지 않는다. 대신 심슨 가족에 출연했던 소감만 묻는다"고 말했습니다.



명판에는 또 호머가 "꼬끼리 걸음(Elephant Walk)" 춤으로 마이너리그 팀 응원을 이끌다 메이저리그 응원단까지 진출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정확하게는 아기 꼬리기 걸음(Baby Elephant Walk) 춤이었습니다. 이게 어떤 춤이었는지는 아래 '춤추는 호머(Dancin' Homer)' 에피소드 동영상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판 마지막에는 스프링타운(심슨 가족이 사는 동네) 연고 마이너리그 팀 아이소토프스(Isotopes·'동위원소'라는 뜻)가 앨버커키로 옮기려고 할 때 호머가 항의했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이건 2001년 3월 4일 방송했던 '배고프고 배고픈 호머(Hungry, Hungry Homer)'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내용. 재미있는 건 캐나다 캘거리에 있던 LA 다저스 산하 AAA팀이 2003년 앨버커키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정말 애칭을 아이소토프스로 정했다는 점입니다.


자, 이제 진실을 이야기할 차례. 호머가 정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된 건 아닙니다. '타석에 선 호모' 방송 25주년을 맞아 명예의 전당에서 심슨 가족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열면서 호머를 명예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만들어준 거죠. 제프 아이델슨 명예의 전당 회장은 "야구는 지난 두 세기 동안 문학, 영화, 언어, 예술, 음악 그리고 TV와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내셔널 패스트타임(National Pastime)'이라는 확고한 위치를 갖게 됐다. 심슨 가족은 이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라고 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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