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물론 기록에 대한 책임은 선수의 몫이다. 하지만 기록을 만드는 일이라면 심판의 역할을 무시하지 못한다. 특히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이 경기에 끼치는 영향은 얼핏 보기에도 상당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실제 기록 역시 이런 사실을 보여줄 수 있을까?

2006 시즌 정규 경기에서 단 1경기라도 주심을 맡아본 심판은 모두 21명이다. 이 가운데 추평호 심판(17이닝)을 제외한 20명이 390 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사실 강광회 심판(398.1이닝)을 제외하면 모두가 400이닝을 넘긴 기록이다. 강광회 심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추평호 씨에게 조금 돌아갔다고 생각하면, 기본적으로 심판들은 주심으로서 400이닝 정도를 소화한다고 보면 옳을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경기에 특정한 선수가 출전했기 때문에 생기는 표본의 오류는 사실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심판의 운영 시스템 자체도 이런 오류를 없애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따라서 특정 심판이 경기에 나섰을 때 기록에 차이가 나타난다면, 이는 해당 심판이 경기에 미친 영향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400이닝은 무려 22 경기에 해당하는 꽤 많은 표본이다.

그럼 어떤 심판이 가장 넓은 스트라이크 존을 자랑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한 가장 단순한 방법은 특정 심판이 주심으로 나섰을 때 삼진과 볼넷의 관계를 알아보는 것이다. 삼진을 가장 많이 선언한 심판은 최규순 씨다. 최 심판은 470.6이닝 동안 335개의 삼진을 선언했다.

비율로만 따지자면 조종규 씨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삼진 선언은 331회로 최규순 씨의 기록보다 4개 적지만, 이닝 수 역시 465.0으로 차이를 보인다. 그 결과 두 심판 모두 9이닝당 6.41개의 삼진을 선언해 동일한 결과를 보인다. 리그 전체 평균인 5.93과 비교해 볼 때, 두 경기당 하나 정도 삼진을 더 많이 잡아준 셈이다.

하지만 볼넷에 관해서라면 두 심판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최규순 심판은 9이닝당 2.77개의 볼넷 선언을 내린 데 비해, 조종규 심판의 기록은 3.50에 달한다. 9이닝당 0.73개의 차이는 꽤 크다. 그 결과 삼진/볼넷 비율을 알아보면 최규순 심판의 기록은 2.31이나 된다. 1.83의 조종규 심판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우리 리그에서 스트라이크 존이 가장 후한 심판은 최규순 씨라는 얘기다.

반대로 존이 가장 짠 심판은 누구일까? 삼진에 박하기로는 전일수 심판이 으뜸이다. 440.6이닝 동안 삼진은 겨우 264개. 9이닝당 비율로 따졌을 때 두 번째로 낮은 성적을 기록한 강광회 심판(5.60)보다도 0.21개나 적은 기록이다. 이 수치는 심판간 간격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다. 그만큼 스트라이크 선언에 있어 조심스러웠다는 뜻이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확실히 그랬다.

한편, 가장 볼넷을 많이 내준 심판은 이민호 씨다. 9이닝당 비율로 환산했을 때 기록은 3.94개. 그 뒤를 김풍기 심판(3.89)이 뒤따른다. 두 심판은 삼진 선언에 박하기도 마찬가지다. 이민호(5.69)와 김풍기(5.90) 두 심판의 기록은 모두 리그 평균에 비해서 떨어지는 수치다. 자연스레 삼진/볼넷 비율 역시 리그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다. 이민호 씨의 기록은 1.45, 김풍기 심판은 1.52에 머물렀다.

따라서 이를 기준으로 존이 짠 심판을 골라야 한다면 이민호 씨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잠시만 생각해 보자. 스트라이크 존이 짜다면 타자들에게 유리하고 그럼 투수들의 방어율 역시 올라가야 하는 게 아닐까? 김풍기 씨가 포수 뒤에 서 있는 경우 투수들은 4.11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이민호 씨의 경우 3.86으로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김풍기 심판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볼넷/삼진 비율의 차이보다 이쪽의 차이가 더 커보인다. 따라서 스트라이크 존의 짠돌이라면 김풍기 심판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허운 심판은 어땠을까? 기록으로 보면 허운 씨는 삼진(5.64)과 볼넷(3.22) 모두 그리 큰 특징을 보이는 유형은 아니다. 하지만 박용택-오승환 대결, 그리고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스트라이크 존에 관해서라면 가장 많은 비난에 시달리는 감독 가운데 한 명이다. 무엇이 허운 심판을 이토록 주목받게 만드는 걸까?

원인은 아주 단순하다. 허운 씨가 주심으로 나섰을 때 투수들의 방어율은 3.01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물론 리그에서 가장 낮은 기록이다. 하지만 박기택 심판의 기록 역시 3.05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박기택 씨에 대해서는 별다른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 뒤를 가장 일관적인 스트라이크 존을 가졌다는 평을 듣는 최수원 씨(3.14)가 뒤따른다.

결국 허운 씨만이 구설수에 가장 자주 오르는 건 스트라이크 존 자체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콜이 나온 시점 때문이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역시 결정적인 순간에 나온 결정적인 콜이 이런 판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얘기다. 한 두 가지 실수가 부각되면 계속해서 해당 심판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확실히 인생은 타이밍이고, 야구 역시 그렇다.

실제 공의 로케이션 하나 하나를 일일이 뜯어볼 수 있다면 우리는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에 관해 좀더 사실에 가까운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각 팀 배터리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사 방식이 무엇이든간에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선수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리라는 사실만큼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야구 규칙에 분명히 명시돼 있듯, 스트라이크 콜은 심판의 판정에 의해 이뤄진다. 만약 꾸준하기만 하다면 특정 로케이션을 특정 심판이 선호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좌우가 기형적으로 넓은 우리 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 고민해 보는 작업이 더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 아무리 심판의 재량이라 해도, 타자가 도저히 칠 수 없는 코스에 손이 올라가는 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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