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역시 세상이 '나'를 바꾸는 눈을 바꾸는 데는 실력보다 좋은 게 없습니다. 그리고 타자에게는 눈썰미도 실력입니다. '빅뱅' 박병호(31·미네소타·사진) 이야기입니다. 


박병호는 13일 미국 플로리다 주 포트마이어스 센추리 링크 스포츠 컴플렉스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서 볼티모어를 상대로 6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장해 2타수 1안타 1볼넷 1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장타는 없었지만 밀어쳐서 안타를 때리는 게 성공했고, 볼넷을 얻어내면서 '멀티 출루'에 성공했습니다.


사실 박병호가 이 경기에 나섰다는 것부터 성공입니다. 미네소타는 이날 '더블 스쿼드'로 경기를 치렀습니다. 주전급 선수들은 안방에서 열린 이 볼티모어전에 참가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리컴 파크로 가서 피츠버그와 방문 경기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현재 마이너리거 신분인 박병호가 볼티모어전에 선발 (지명타자가 아니라) 1루수로 필드에 나선 겁니다. 이 경기는 박병호가 올 시범경기 들어 처음으로 3경기 연속 선발 출장한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미네소타에서 박병호를 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입니다.


역시 성적이 뒷받침 됐기에 나온 일. 이날 경기까지 박병호는 타율 .409(22타수 9안타), 3홈런, 6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OPS(출루율+장타력)는 1.39. 홈런도 팀내 1위고, 타율과 OPS 모두 25타석 이상 들어선 미네소타 타자 중 제일 높습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건 볼넷-삼진 비율(B/KK). 박병호는 이날 현재 볼넷 4개, 삼진 6개로 (B/KK 0.67)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시범경기 때는 1볼넷 17삼진(0.06)이었고, 정규 시즌에서도 21볼넷 80삼진(0.26)에 그쳤습니다.


B/KK는 보통 타자 선구안을 평가하는 기본 지표로 씁니다. 선구안이 좋은 타자일수록 볼넷은 많이 얻어내고 삼진은 적게 당할 테니까요. 또 선구안이 좋을수록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 공에 방망이를 휘두를 비율도 올라갈 겁니다. 폴 몰리터 미네소타 감독도 "박병호가 (올해 시범경기 들어) 스트라이크를 때릴 줄 알게 됐다. 스트라이크 존을 지난해보다 넓게 보는 것 같지는 않은데 타석에서 차분하다. 자기 스윙에 대한 믿음도 느껴진다"고 평가했습니다.


선구안은 빠른 공 대처 능력에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박병호는 지난해 상대 투수가 93마일 이상 빠른 공을 던졌을 때 타율이 0.105(57타수 6안타)에 그쳤습니다. 올해 시범 경기에서는 빠른 공을 받아쳐 담장 너머로 날려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네소타 타격 인스트럭터를 맡기도 했던 조 바브라 벤치 코치는 "지난해 박병호는 약간 겁을 먹었던 것 같다. 메이저리거 투수들이 던지는 공이 한국에서 보든 것보다 빠르다는 걸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라며 "올해는 타석에서 편안한 모습이다. 어떤 경우에도 불안하거나 지나치게 흥분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지난해 박병호가 빠른 공(속구)에 대처하지 못한 이유가 오히려 빠른 체인지업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박병호는 지난해 바깥쪽 낮은 코스에서 몸쪽 높은 코스로 등고선이 올라오는 스윙 분포를 보였는데 이러면 '효과 속도' 인식에 문제가 생기거든요.


 

게다가 바깥쪽 낮은 공이 땅볼로 이어지면서 타율을 깎아 먹었습니다. 박병호는 (적어도 메이저리그에서는) 땅볼을 때리면 안 되는 타자입니다. 이 야구 통계 사이트 '비욘드 더 박스 스코어(Beyond The Box Score)' 포스트를 보면 박병호(오른쪽 아래 붉은 동그라미)는 뜬공을 날렸을 때하고 땅볼를 날렸을 때 타구 속도가 시속 17.3마일(약 27.8㎞)가 났습니다. 타구 속도가 빠를수록 당연히 좋은 타구(그래서 안타)가 나올 확률이 올라갑니다.



요컨대 저는 올해 박병호가 다시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메이저리그로 돌아가 자리를 잡으려면 역시 선구안을 끌어올리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도 일단 제대로 맞추기만 하면 메이저리그 투수들 공도 좋은 타구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확인시켜 줬으니 말입니다. 


포지션 경쟁자인 케니 바르가스(27)가 컨디션 난조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박병호에게는 긍정적인 일단 신호. 바르가스는 시범 경기에서 13타수 1안타(타율 .077)에 그쳤고, 푸에트토리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합류한 뒤에도 안타를 하나도 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올해 박병호 눈에는 어떤 팀 유니폼이 더 많이 비치게 될까요? 미네소타? 아니면 산하 AAA팀 로체스터?


※ 오늘 기사가 단신으로 바뀐 기념으로 살을 좀 붙여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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