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혈전(血戰)이었다. 선동열과 김인식 감독 모두 배수의 진을 치고 경기에 임했고, 결국 양팀 마무리 투수들까지 총동원 되며 그야말로 물러날 수 없는 한 판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한화가 먼저 오승환을 무너뜨리며 승기를 잡았지만, 구대성 역시 박진만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래프가 보여주는 것처럼 경기는 삼성 쪽으로 일찍 기울었다. 양준혁의 땅볼 때 한화 1루수 김태균이 욕심을 내봤지만 박한이에게 선취점을 허용했고, 이 때 삼성의 WP는 이미 .665를 가리켰다. 여기서 한 두 점만 더 달아났다면 승부는 완전히 삼성 쪽으로 기우는 상황.
하지만 추가 실점 없이 1회말로 접어든 한화 타자들 역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WP .500을 향해 내려오는 그래프가 이런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끝끝내 결정타를 날리지 못한 채 잔루 만루로 1회말을 마쳐야했다. 1회가 끝났을 때 삼성의 WP는 .627이었다.
이후 양 팀 선발 투수들이 안정을 되찾는 듯 보이며 한 점 차 승부가 계속됐다. 그러다 5회초 삼성이 먼저 공격의 물꼬를 텄다. 박진만의 2루타는 .610이던 WP를 .724까지 끌어 올렸고, 김한수도 이에 뒤질새라 팀에 석점째를 안기는 2루타( WP. 825)를 터뜨렸다. 자칫 승부가 일찍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경기가 끝났다면 혈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2사 후이기는 했지만 데이비스가 볼넷으로 걸어나가며 4번 타자 김태균의 앞에 만루의 찬스가 다가온 것이다. 5회에 삐죽이 올라 있는 LI 그래프가 이러한 사실을 보여 준다. LI 3.23의 위기 상황, 선동열 감독은 선발 하리칼라를 내리고 권오준을 올린다.
결과는 3구 삼진! 비록 그래프에는 두드러지게 표현돼 있지 않지만 삼성의 WP값을 .084 높이는 삼진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날 김태균이 아니었다. 8회 선두 타자로 나온 김태균은 팀의 WP를 .066 끌어 올리는 솔로 홈런을 날렸다. 다급해진 선동열 감독은 이때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린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자. 권오준은 LI 3.23의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이 수치는 분명 5회까지 경기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뤄진 투수 교체였다. 오승환이 마운드에 올랐을 때는? LI 1.79였다. 오승환이 이범호에게 안타를 허용했을 때 이 수치는 오히려 2.46으로 높아졌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확실히 선동열 감독이 조급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오승환은 2아웃을 잡아 놓고도 심광호에게 동점 투런을 맞아 버렸다. LI가 다시 1.68로 낮아진 상황에서 말이다. WP .401짜리 초대형 홈런이었다. 홈런이 터지고 나서 한화의 WP는 .528, 이 경기에서 한화의 승률이 처음으로 .500을 넘는 순간이었다. 만약 이대로 경기가 끝났으면 오승환은 헤어나올 수 없는 충격의 수렁에 빠졌을 것이다.
경기 도중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김인식 감독에게는 몇 점 차이로 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한 점이라도 더 따내서 이긴다는 점이었다. 9회초 한화의 마운드는 구대성이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하듯 구대성은 무실점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오승환 역시 한 이닝을 더 마무리 한 뒤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그렇게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 들었다.
먼저 기회를 잡은 쪽은 한화였다. 11회말 공격에서 심광호가 선두 타자로 나서 안타를 때려낸 것이다. 김민재는 침착하게 희생번트. 이후 공교롭게도 한화는 세 타자가 연속해서 좌타자였다. 선동열 감독은 망설임 없이 권혁을 마운드에 세웠다. LI 3.46에서 이뤄진 적절한 교체였다.
고동진에게 다소 위험한 타구를 허용했지만 3루수 조동찬의 호수비, 그러나 심광호는 재빨리 3루를 차지했다. LI는 4.88로 다시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때 김수연이 침착함을 발휘하며 볼넷으로 걸어 나갔고, LI는 이 경기에서 가장 높은 5.27을 기록했다. 만약 좌완 불펜에 여유가 있다면 투수 교체를 검토해 봐도 좋을 상황. 하지만 권혁은 데이비스를 4구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데 성공했다. 다시 승부의 추가 삼성 쪽으로 넘어오는 순간이었다.
12회초는 조동찬의 선두 타자 안타로 삼성이 기분 좋게 출발했다. 다음 타자가 양준혁이라 부담이 됐던 것도 사실이지만, 선동열 감독은 정석대로 희생번트를 선택했다. 하지만 김창희의 잘 맞은 타구가 유격수 김민재의 글러브에 걸리며 2루 주자 조동찬은 런다운. 하지만 최대한 조동찬이 최대한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김창희 역시 2루까지 진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두 타자로 얻은 .578의 WP는 이미 .458까지 떨어진 후였다.
이때 오늘 경기의 영웅이 등장했다. 바로 박진만이 그 주인공. 이미 5타수 2안타를 치고 있던 박진만을 피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구대성 역시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절정의 타격감을 자랑하던 박진만의 방망이를 구대성 역시 피해가지 못했다.
다소 빗맞은 듯한 타구가 1-2루간을 정확히 꿰뚫은 것이다. 2사 후였기 때문에 김창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더욱이 홈송구가 이러지던 중에 2루까지 뛰어간 센스는 더더욱 칭찬할 만하다. 자신이 7회에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던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분위기가 삼성 쪽으로 넘어온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선동열 감독은 확실한 걸 원했다. 12회말 김태균을 상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다름 아닌 임창용. LI 3.53의 다급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임창용의 이름이 선뜻 떠오른 팬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임창용이 김태균 딱 한 타자만을 상대한 채 배턴을 배영수에게 넘겼다는 점이다. 결국 배영수는 2.74, 4.58의 다급한 LI 상황을 깔끔하게 마무리 하며 경기를 매조지었다. 어느 팀도 함부로 질 수 없었고, 결코 져서는 안 되는 경기에서 결국 삼성이 승리를 챙긴 것이다.
삼성은 오승환이 필승 카드가 아니라는 사실에 아연실색했지만 곧바로 임창용, 배영수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권혁 역시 필승조에 들어가기에 충분한 모습. 확실히 배영수의 깜짝 기용은 이번 시리즈 전체의 돌파구를 찾을 만한 선택이었다. 이제 오승환이 아니어도 그 뒤를 배영수가 받치게 된 것이다.
반면 한화는 구대성을 잃었다. 물론 누적된 피로와 많은 투구수는 부담이었겠지만, 구대성=불패라는 공식에 흠집이 간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것도 양 팀 감독 모두 총력전을 벌인 경기였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제 김인식 감독은 문동환에 좀더 믿음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만약 문동환마저 무너진다면 5차전에서 승부가 결정날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김인식 감독에게는 너무나 아쉬운 한판이었고, 지지 않겠다는 선동열 감독의 의지가 빛을 발한 게임이었다. 이 경기의 MVP는 바로 선동열이다. 완벽한 기용은 아니었지만, 실수를 만회하는 빠르고 정확한 길을 찾았다는 점에서 확실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