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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얼마 전 문을 연 하드볼(http://www.hardball.co.kr)이라는 사이트에 흥미로운 게시물이 올라왔다. '1990년대 최고의 선발 투수는?'이라는 글로 '90년대를 대표할 만한 선발 투수 8명을 선정한 후 이들의 기록을 비교해 보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정민철이 가장 훌륭한 선발 투수였다는 점이다. 정말 그럴까?

 

한번 하드볼에서 사용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보자. 그러니까 다른 식으로 검증을 해도 정민철이 과연 최고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알아보자는 얘기다. 이 블로그를 계속 읽어오신 분이라면 눈치 채셨겠지만 투수의 가장 큰 임무는 점수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특히 선발 투수라면 점수를 내주지 않으면서 많은 이닝을 소화할수록 더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점수를 적게 줄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은 올바르지 않다. 좀더 올바른 질문을 떠올려 보면 '어떻게 해야 투수 자신이 책임져야 할 점수를 구할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애써 고민할 필요는 없다. FIP, DIPS 등 이미 검증을 거친 수많은 메트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간단하게 가자. FIP는 계산이 손쉬울뿐더러 리그 수준까지 적절하게 고려할 수 있는 좋은 도구다.

 

하지만 FIP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분명 우리 리그도 득점 수준 차이가 존재했다. 그러니까 모두가 '90년대를 뛰었다고 해서 이를 모두 똑같이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해마다 차이를 두고 리그 평균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 활약을 펼쳤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그러러면 비율로 계산 결과가 나오는 FIP를 누적 수치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선택한 메트릭이 PRC(Pitching Runs Created)다. PRC를 가장 손쉽게 생각하자면 RC의 투수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기본적인 접근법은 간단하다. 평균 5.0점이 나는 리그가 있다고 치자. 그러면 경기당 평균 9점을 내는 타자와 매 경기를 1점으로 틀어막는 투수 가운데 누가 더 팀에 공헌하는 바가 클까? 정답은 '둘 모두 똑같다'이다. 왜냐하면 리그 평균에 비해 모두 4점의 이득을 팀에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런 전환이 바로 PRC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살펴볼 대상은 '90년대, 그러니까 '91년부터 '00 시즌까지 국내 무대에서 활약한 투수들이다. 사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리그에 투수 분업화가 완벽히 자리잡았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100경기 이상 등판하고 전체 경기 75% 이상을 선발로 나선 경우로 범위를 한정했다. 최고 투수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 선발 투수를 논하는 자리니까 말이다. 이 기준에 걸려 안타깝게 탈락한 선수는 LG 정삼흠이다. 그는 '90년대에 모두 193경기에 등판했는데 이 가운데 선발로 나선 건 142회로 74%였다. 그렇게도 크게 아쉬울 건 없다. 어차피 최고를 논하는 자리라면 정삼흠이 개입할 여지는 별로 없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선수를 간추리자 모두 16명이 남았다. 그리고 비교 목적으로 PRC를 RCAA 방식으로 정리했다. 각 투수가 활약한 시즌 차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91년과 '00년은 분명 득점 환경이 달랐다. 아래 표는 이렇게 정리된 PRCAA 상위 10걸이다.

하드볼과 마찬가지로 정민철이 1위다. 보통 10점이 추가로 나올 때마다 1승을 추가할 수 있다고 한다. 이글스는 정민철의 존재로 인해 '90년대 24승 가까이 더 거둘 수 있었다. 사실 정민철은 이 기간 동안 1500이닝 이상을 던지면서 방어율 3점 이하를 기록했다. 이 기록만으로도 정민철은 '90년대를 대표하는 투수라고 부를 만하다. 확실히 정민철은 다분히 과소평가된 면이 크다는 뜻이다. 더욱이 이런 기록을 타자에게 유리한 대전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거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2위 자리를 차지한 선수는 김상진이다. 물론 잠실구장 특성 역시 고려해야겠지만,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한 선수 가운데 김태원만이 9위에 올라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식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구장 효과를 반영하면 정민태와 김상진의 자리는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김상진과 정민태 모두 1위 정민철 또는 4위 조계현과 비교할 때는 일정 수준 이상 차이가 난다. 따라서 이 두 투수 역시 '90년대 최고 선발을 논할 때 세 손가락 안에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선수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다.

누적 기록을 연평균으로 바꿔 봐도 1위는 역시 정민철 차지다. 사실 '90년대에 8 시즌만 뛰고도 누적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2위는 현대 김수경. '98년에 데뷔해 '90년대에 세 시즌밖에 뛰지 않았지만 확실히 손꼽힐 만한 활약을 선보여줬다는 뜻이다. 역시나 그 뒤를 친숙한 이름 정민태와 김상진이 뒤따른다. 다시 한번 '90년대는 이 세 명이 최고였음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아마 표를 주의 깊게 관찰한 독자라면, 이대진이 빠져 있다는 사실에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이대진은 '90년대 등판한 211 경기 가운데 선발로 132번 마운드에 올랐다. 비율로 따졌을 때 63%로 위에서 이야기한 75%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그래도 굳이 이야기를 해 보자면 이 기간 동안 이대진의 누적 PRCAA는 109, 연평균 기록은 13.6이다. 누적 부문에서 8위, 평균에서 7위를 차지할 수 있는 기록이다. 분명 수준급이지만 '최고'라고 부르기에는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90년대 최고 투수는 하드볼 평가와 마찬가지로 정민철이었다. 그리고 그가 과소평가 받고 있다는 의견에도 역시 동의한다. 그 뒤를 거의 차이 없이 정민태와 김상진이 뒤따르고 있다. 누가 우위인지 가릴 것도 없이 둘 모두 '90년대 '2등' 선발 투수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나머지 선수들도 PRCAA와 어느 정도 같은 결과를 보인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록이 전부는 아니다. 롯데 팬에게는 주형광, 염종석, 윤학길 모두 자신을 울리고 웃긴 소중한 추억의 이름으로 생각할 것이며, 해태 팬에게 있어서도 조계현, 이강철, 이대진의 의미는 확실히 남다를 것이다. 유니콘스 팬으로서 사실 정민태가 정민철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들이기는 힘이 드는 게 사실. 하지만 자기 마음 속 최고와 객관적인 최고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숫자가 지닌 폭력성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까 순진한 최고의 희망을 철저하게 깨버린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94년 한국시리즈 1차전 김홍집이 여전히 내게는 최고 선발 투수니까 말이다.

 

2022년 8월 15일 'KBO 레전드 40인'에 정민철, 정민태가 들어간 기념으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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